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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 '무더기 계약해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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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 '무더기 계약해지' 왜?

경찰 문서로 하루 아침에 '실업자' 된 세콤 영업직들

정규직 영업사원으로 7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한 후 다시 개인사업자 등록을 통한 영업전문직으로 3년.

김대성 씨(35)는 이렇게 10년을 삼성그룹 계열사 (주)에스원에서 일해 왔다. 김 씨가 하는 일은 새로 만들어지는 매장이나 각종 건물을 찾아다니며 무인경비기기 '세콤'의 설치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다.

7살, 9살의 두 딸의 아빠인 김 씨에게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가 날아온 것은 지난 8월 9일이었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영업전문직의 숫자에 대해 김 씨는 수수료 지급 등을 위해 개개인에게 붙는 일련번호를 근거로 1700여 명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에스원 홍보팀의 배홍건 과장은 "서류상으로 등록돼 있더라도 실질적인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이번 계약해지 대상은 560명이었다"고 설명한다.

회사측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500여 명이 하루 아침에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니다. 이들은 왜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해야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날아 온 계약해지 통보
▲ 삼성 에스원에서 10여 년 동안 무인경비기기 세콤을 판매해 온 김대성 씨. ⓒ프레시안

김 씨를 비롯한 에스원의 영업전문직들이 일방적으로 회사로부터 '계약해지 신청서' 작성을 요구받은 것은 지난 7월 서울남대문경찰서가 보낸 '기계경비업 관련 질의회시' 문서 한 장 때문이었다.

경쟁업체보다 다소 늦은 2003년부터 위탁계약 형식을 통한 영업딜러를 고용해 온 삼성 에스원은 갑작스런 계약 해지의 이유에 대해 개개인에게 보낸 문서를 통해 "영업전문직 계약이 법률상 문제가 있음을 서울남대문경찰서를 통해 통보 받아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제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 공문이 도착하는 즉시 계약이 종료됨을 통보한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관할 경찰서는 '익명의 개인'으로부터 "기계경비영업이 경비업법에 저촉되지 않느냐"는 질의를 받고 "기계경비시스템을 설치하도록 권유·주선하는 딜러 업무는 기계경비업무의 일부에 해당하며 기계경비업무의 일부를 떼어내 하도급하는 것은 경비업법상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관련 업체들에게 전달했다.

영업부터 설치, 관리까지를 모두 한 회사에 위탁할 수는 있지만 영업만 따로 계약을 통해 위탁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이 통보를 받은 삼성 에스원은 당시 계약이 체결돼 있던 영업전문직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 에스원 홍보팀의 배홍건 과장은 "관할 경찰서에서 계속 영업전문직을 사용하면 회사와 개인 모두가 처벌받을 수 있다고 통보해 와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에스원은 정직원을 통한 계약과 영업전문직을 통한 계약이 약 80:20의 비율을 차지한다. 배 과장은 "회사도 이번 건으로 다소 손해가 예상된다"며 "그러나 에스원뿐 아니라 동종업체들 모두 경찰서의 공문을 받았고 이에 영업전문직에 대한 계약해지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확인 결과 KT텔레캅 관계자는 "우리 역시 이같은 통보를 받고 담당부서를 만들어 영업전문직을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삼성 에스원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찰의 법 해석 그대로 수용한 에스원, 납득하기 힘들다"
▲ 에스원의 영업전문직 500여 명(노동자 주장 1700여 명)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프레시안

회사측은 "위법이라니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해명했지만 이번에 계약해지된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이 지난 8월 31일 만든 조직인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의 주장은 좀 다르다. 법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연대의 자문을 받은 남송법률사무소의 김용환 변호사는 지난 8월 29일 에스원에 보낸 이의제기 문건을 통해 "서울남대문경찰서의 해석은 경비업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인경비기계의 판매는 기계경비업무의 본연의 활동이 아니므로 경비업법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무더기 계약해지' 사건의 원인은 관련법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에스원 홍보팀 관계자 역시 인정하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20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에스원이 이같은 형태의 영업전문직을 사용하기 시작한 2003년에는 왜 관련법령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당시에는 다른 경쟁업체에서 이미 그런 형태의 직원을 사용하고 있었고 법문에 명확히 불법이라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여서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는 "계약해지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반발하며 9월 4일부터 에스원 본사 앞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택 앞, 삼성 본관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현재 불명예스러운 계약해지 통보에 대한 해명과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부터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

영업딜러 사용이 경비업법상 저촉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애초부터 이같은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를 통해 영업활동을 벌여 왔던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에스원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은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같이 개개인이 사업자로 활동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해고가 쉽고, 인력비와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절감 등을 위해 회사의 정식 직원이 아닌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들은 사실상 소속된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계약관계가 노사간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하지 못하고 '노동자연대'와 같은 형식의 조직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 노동문제 전문가는 "경찰의 해석의 법적 근거나 정당성, 삼성에스원의 대책 없는 해고를 논하기에 앞서 애초부터 특수고용노동자를 통해 영업활동을 벌인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이 전문가는 "저비용을 들여 이윤을 남기고 문제가 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대한 규제와 열악한 처우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이번 삼성 에스원 사태는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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