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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7.4공동성명 '알맹이'는 버리고 '껍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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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7.4공동성명 '알맹이'는 버리고 '껍데기'만

[기자의 눈]차라리 솔직하게 햇볕정책을 때려라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지난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그해 5월 2일부터 나흘간 평양을 방문해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곧이어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5월29일부터 나흘간 서울을 방문해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해 7월 탄생한 것이 7.4 남북공동성명이다. 박정희 정권과 김일성 정권의 상호 정치적 목적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비판론도 있으나, 이는 사반세기만에 나온 최초의 남북합의문으로 평가된다.

꼭 30년 뒤인 지난 2002년 5월, 박근혜 전 대표는 나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과 1시간 단독 면담, 2시간의 만찬을 같이했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등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선친들이 합의한 "7.4 공동성명의 결실을 맺고 평화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약속도 했다.

인도적 쌀 지원을 '퍼주기'로 비난하고 금강산 관광 사업에도 부정적이었던 박 전 대표는 이 때부터 갑자기 '대북 평화정책'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또한 박 전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방북을 회상하며 "햇볕정책, 평화번영 정책도 지난 30여년 간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대북 포용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밝혀 왔다. 그 덕에 한 때 박 전 대표가 대북 특사로 제격이라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7.4 공동성명을 들춰보니…

이같은 전사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표가 18일 호남을 방문해 "시대적 형편과 경제력의 차이만 있었지 대북 포용정책은 특정 정권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7.4 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매 정권마다 추진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경제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에 많은 지원을 해 왔고 이를 햇볕정책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평가한 대목은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이날 쏟아낸 다른 발언들은 자신의 대북관을 2002년 방북 이전 상황으로 확실히 되돌렸다.

그는 무력 충돌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관련해 "PSI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참여를 요청할 때 우리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도 "상대가 선의의 행동을 해 올 때는 그에 부응하는 이익을 주고 핵무장을 할 경우 혹독한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해야 한다"며 잠정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한반도 평화의 바이블로 칭송하는 7.4 남북공동성명에는 이런 발언을 담아낼 공간이 전혀 없어 보인다.

공동성명은 "쌍방(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공동성명에는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돼 있다.

대북관과 정치적 목적의 모순

아마도 박 전 대표는 북한이 핵실험으로 이러한 7.4 공동성명 합의를 먼저 깬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도 북한의 핵실험이 정당화될 수 없는 만큼 생뚱맞은 판단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는 이날 7.4 남북공동성명과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포용정책의 정신과 기조는 줄곧 찬성해 왔다"고 'DJ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피해가는 한편, "북핵 문제가 터진 것은 지금이고 '북핵에도 일리가 있다'며 이를 방조하고 조장한 것은 현 정부"라고 노무현 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두말 할 것 없이 박 전 대표의 대북관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불일치에서 발생했다. 집권을 하기 위해선 호남을 잡아야 하고, 호남을 잡기 위해선 DJ를 건드려선 안되고, DJ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햇볕정책을 비판해선 안 되는 모순의 회로에 갇혀버렸다는 얘기다. 그 대신 자신의 '확고한 안보관'은 '만만한'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때리는 것으로 충당하려는 계산이 역력했다.

정치적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박 전 대표의 이런 모순된 태도는 아마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후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자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으로 만나 그 의미를 되새김질 한 7.4 공동성명을 명시적으로 휴지통에 넣는 일도 없을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자주적, 평화적 통일, 민족대단결로 압축되는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은 이미 용도 폐기한 채, 그 껍데기만 취해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려는 박 전 대표의 행보는 한 꺼풀만 들춰봐도 금방 의도가 드러날 만큼 얄팍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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