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때 이래 쭉 양당정치가 제대로 돼 왔는데 선거 때 표 얻었던 약속을 다 뒤집고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데 갈라선 건 이번(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주도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처음이다. (…) 정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했다. (…) 분당에 오늘 여당의 비극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 이같이 비판적인 평가를 공개적으로 개진함으로써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이대로 가다간 오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일각에서 두 세력을 포함한 반(反)한나라당 연합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옴으로써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정치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로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는 심정은 양면적이다. 우선 2003년 분당을 비판한 김 전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노무현 세력이 대선 승리 후 얼마 되지 않아 분당을 한 논리는 분명히 취약했다.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이념적 색채에서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한나라당과 같은 냉전세력 내지 냉전적 보수세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세력도 아닌, 자유주의 세력 내지 개혁세력이다. 따라서 정책노선의 차이로 분당을 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당개혁과 관련해 민주당이 낡은 3김 정치, 즉 정당민주주의와의 거리가 먼 밀실정당, 사당에 불과하고 지역주의에 기초한 지역정당이라는 점이다. 또 노무현정부의 출범과 함께 3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한국정치는 1인 보스가 아니라 당원과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근대적 대중정당, 탈(脫)지역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으로 부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개인적으로 지적한 바 있듯이("손호철의 정치논평: 개혁신당의 빛과 그림자", [한국일보], 2003년 5월 19일자) 분당은 잘못된 것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DJ 아래서 사당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근대적 대중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그 덕으로 노무현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또 국회의원 후보 선출 등에 있어서 국민참여형 상향식 경선제를 이미 명문화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당규만 잘 지킨다면 민주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사실 분당을 주도했던 친노(親盧) 계열들은 2003년 5월 친노 계열인 개혁당의 유시민 후보를 일산에서 보궐선거에 출마시켜 금배지를 달아주기 위해 밑으로부터 경선을 요구하는 민주당 지구당 관계자들과 당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실에서 개혁당과의 연합공천을 결정해 유 후보를 밀었다(손호철 "유시민 실험의 그림자", [한겨레], 2003년 5월 3일 자). 이는 정당민주화가 분당의 진짜 이유가 아니라 핑계에 불과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는 것은 지역주의다. 물론 민주당은 호남의 지지에 기반한 지역주의 정당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호남의 90%대의 지역투표였다. 그리고 오랜 뿌리를 가진 지역주의가 분당을 한다고 해결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영남권 인사들이 자신들의 지역기반 때문에 호남당이라는 민주당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DJ가 이번 회견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집토끼 놔두고 산토끼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정당개혁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정권만 바뀌면 정당이 생기고 사라지는 풍토를 끝내는 것, 다시 말해 정당이 제도화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은 반쪽 이야기에 불과하다. 김 전 대통령이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같은 2003년의 분열은 김 전 대통령이 그 씨를 뿌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2003년 분열은 김 전 대통령이 행한 두 번의 역사적 분열과 분당, 즉 1987년의 분열과 1995년의 분열의 연장선에 있으며 김 전 대통령의 분열을 보고 배운 결과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사실 다른 것은 몰라도, 분열과 분당에 관한 한, DJ는 이야기할 자격이 별로 없다.
"자유당 때 이래 쭉 양당정치가 제대로 돼 왔는데 선거 때 표 얻었던 약속을 다 뒤집고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데 갈라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니, 세상에 이런 아전인수 격의 한국현대정당사 해석이 어디 있는가?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데 갈라선 건 2003년 분열이 처음"이라니, 그러면 1987년 국민들이 피를 흘려 획득한 직선제 개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과 함께 개인적인 권력욕에 눈이 멀어 분열을 해 광주학살의 또 다른 주범인 노태우 일당에게 권력을 내 준 것은 국민들이 납득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는 이야기인가?
주목할 것은 그 역사적 폐해와 중요성에서 노무현의 2003년 분열은 DJ의 1987년 분열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2003년 분열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의 한 분파는 탄핵 덕으로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5.16 이후 처음으로 자유주의 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분열의 폐해라는 것이 탄핵의 거품이 빠지면서 호남 등이 이탈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대로 가다간 정권을 빼앗기는 것 정도다. 그러나 1987년 분열은 그 폐해가 백배는 넘는다.
우선 양김의 분열로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군사독재정권이 5년 더 연장됐다. 둘째, 그 이후 양김은 서로 손을 잡아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독재와 손을 잡고 다른 한 김을 죽이는 쪽으로 나감으로써(YS의 3당통합, DJ의 DJP연대) JP와 같은 군사독재의 퇴물이 계속 한국정치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만들었다.
셋째, 지역주의가 전면화됐다. 물론 지역주의의 뿌리는 분명히 박정희, 전두환이 심었다. 그러나 최소한 1987년 이전에는 지역정당 체제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87년 양김의 분열 후 지역정당 체제가 전면화된 것이다. 꼭 점수를 매기라면 지역주의의 70%는 박정희, 김종필, 전두환 등 군사독재의 책임이고 30%는 양김의 책임이다.
사실 1987년까지만 해도 광주와 경남 부산은 동지였지 적이 아니었다. 즉 대구 경북과 달리 경남 부산은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광주가 아니라 같은 영남인 부산과 마산의 부마항쟁이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에 지역주의는 없었다. 그러나 1987년 양김의 분열 후 승리한 것은 다시 대구 경북이지만, 부산은 호남을, 호남은 부산을 미워하게 됐다. 만 지역의 만 지역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밖에 양김의 분열로 생겨난 민주화진영 전체의 분열과 증오, 그리고 국민들의 허무주의화 등 그 폐해를 열거하자면 상당한 지면이 필요하다.
1995년 분당은 또 어떠한가? 1990년 YS가 3당 통합이라는 야합에 응하자 이기택, 노무현 등 YS의 본거지인 부산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민주야당 정치인들이 3당 통합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들은 DJ에 합류해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만들었다. DJ는 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리고 이기택 씨가 민주당을 이끌었는데 1995년 지자체선거 승리에 기초해 DJ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것이다.
당시 DJ가 급박하게 정계에 복귀해야 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지역주의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텃밭인 전라남도 도지사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자신이 미는 후보가 패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또 부산시장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선두를 달림으로써 '민주당 부산시장'이 생겨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럴 경우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민주당내의 비(非)호남세력의 힘이 강해질 것이 우려된 것이다. 그러자 DJ는 지역등권론을 내세움으로써 선거판을 지역주의 대결로 몰고 가면서 JP와 손을 잡는 역(逆)지역연합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선거가 지역주의 문제로 발전하면서 호남은 다시 DJ의 손안으로 돌아왔고 노무현은 부산시장에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를 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 DJ가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분당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정치에 복귀한 것이다. 그리고 현역의원 등에 대한 줄 세우기 등을 통해 민주당을 고사시켜 나갔다. 그러자 이에 반대해 생겨난 것이 통합야당을 추구하는 '통추'다. 노 대통령, 얼마 전 국회의장을 지낸 김원기 의원, 고(故) 제정구 의원, 유인태, 이부영, 원혜영, 박석무 등 정치권의 '양심세력'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현 정권의 핵심세력들이다.
사실 DJ의 정략적인 분당에 분노하며 통합민주 야당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들이 DJ가 비판한 2003년 분당을 주도했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DJ의 1995년 분당 덕으로 거리로 내몰려 하로동선이라는 고기집을 하며 울분을 토해야 했던 노대통령과 통추 사람들이 2003년 분당을 비판한 김 전 대통령의 비판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물론 1987년 분열의 폐해가 너무도 엄청나기에 그에 비하면 1995년 분당의 폐해는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1987년 분당은 YS도 책임이 있는 공동책임이라면 1995년 분당은 DJ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단독범죄'라는 점에서 그 책임은 더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2003년 열린우리당의 분당을 1987년 양김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세력의 분열에서 비롯된, 보다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 역시 자신의 업보에 대해 보다 겸손한 자세에서 자기반성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논평을 해야 설득력이 있고 한국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얼떨결에 터져 나온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반(反)한나라당 통합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발언이 반한나라당 통합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단지 이대로 가다간 필패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통합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것이 한국정치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2003년의 분당은 득보다 실이 더 큰,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루비콘강을 건넌 지 오래다. 그리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을 하지 않을 경우 오는 대선에서 질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당이 통합한다는 것은 2003년 분당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지지 않기 위해 통합을 한다는 것은 타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과 같이 지난 두 정권을 만들어낸 자유주의 세력이 처해 있는 문제의 핵심은 정치공학적 사고에 의해 '어떻게 통합을 이뤄 지지표를 극대화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자유주의 세력 집권 8년 반 만에 사상 최악의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지지기반이 돼야 할 서민층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민주화냐"며 박정희 향수에 빠지고,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의 대상이 되도록 만든 정책적 실패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하면서 대안적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