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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갈등 속 KBS·EBS의 진짜 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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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선갈등 속 KBS·EBS의 진짜 위기는?"

[공영방송 위기 진단 1] 흔들리는 공영방송, 극복 방안은?

KBS와 EBS의 이사 및 사장 임명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양 방송사의 부적격 인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노동조합, 이사회, 방송위원회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대부분 언론들은 이 사태에 대해 피상적인 갈등 양상만을 보도할 뿐, 그 원인에 대해선 정작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꽤나 '정치적'인 목적의식에 충실하게 여론몰이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두 공영방송의 인사를 둘러싼 '힘 겨루기'는 현재 이들 방송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왜곡이 가능한 인사 시스템에서부터 시장원리에 매몰돼 공영방송의 최우선 가치인 공익성은 정작 외면당하는 추세에 이르기까지 안팎의 인식 부재로 인한 '공영방송의 위기'가 보다 밑바탕에 깔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이같은 '공영방송의 위기'는 방송통신융합과 방송시장 개방이라는 방송환경의 변화와도 직결된 문제다.

<프레시안>은 최근 양 방송사 사장 인선 과정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노조, 시민단체, 학계 등 각계 전문가들에게 현 공영방송의 위기와 이에 대한 해법을 몇 차례로 나누어 들어보고자 한다. 연재에 앞서 현재 상황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KBS·EBS, 인사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방송계 갈등

9월은 방송계에 있어 '다사다난'한 달이었다.

EBS의 경우 구관서 씨가 사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던 9월 초부터 노조의 반대가 거셌다. 이들은 "EBS가 교육부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나선 때가 엊그제인데 교육부 관료 출신이 다시 사장이 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구 씨가 방송위원회에 의해 사장으로 임명되자 EBS 노조는 지난달 19일 이후 출근저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EBS 팀장 41명 전원이 사장 임명에 반대의사를 밝히며 보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 사장 임명자가 주재하는 회의 및 일체의 대면 보고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복종 의사를 밝혔고 현재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또 딸의 임용특혜 의혹과 아들의 위장전입 사실 시인, 박사 학위 취득 과정과 논문 중복에 대한 의혹 등 구관서 사장의 자질문제가 거론되면서 노조는 더욱 거세게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KBS 사장에 대한 갈등은 보다 오래 된 문제다. 3기 방송위원회 구성이 지연지면서 덩달아 KBS 이사회 구성과 차기 사장 공모도 늦어졌고 이런 가운데 정연주 전 사장은 지난 6월 30일 임기가 끝난 후 지난달 26일 사장 공모마감일까지 직무를 대리해 왔다. 정 전 사장의 재임기간 동안에도 끊임없는 대립각을 세웠던 KBS 노조는 이를 두고 "권력에 눈이 멀어 자리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며 비난했다.

또 이사회가 구성된 뒤에는 이사회와 노조의 갈등이 이어졌다. KBS 노조는 "KBS 이사회의 인적 구성 상 이사회가 정치적으로 독립해 사장을 제청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며 노조가 참여하는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사회가 이를 거부하자 "정연주 사장의 연임을 위한 들러리 사추위는 있을수 없다"며 지난달 총파업을 단행하기 직전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KBS에서는 그밖에도 민언련 공동대표 출신의 신태섭 이사의 논문 표절 논란도 벌어졌다. 노조는 신 이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며 신 이사는 "KBS 정연주 사장 연임저지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키 위한 파렴치한 정치적 표적공격"이라며 맞서고 있다.

정치와 '너무 가까운' 공영방송의 인사과정
▲ 지난 28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공영방송 위기 해결을 위한 언론학자, 문화연구자 30인 선언 기자회견'에는 KBS와 EBS 취재팀이 나왔다. ⓒ프레시안

언뜻 보기에 이들 갈등은 노조-방송위, 또는 노조-이사회 간의 단순 대결구도로 인식되지만 원인을 짚어보면 EBS 조는 교육부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KBS 노조는 정연주 사장 자체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두 사태가 가진 공통적인 원인을 꼽자면 그 속에 과도하게 '정치'가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언론학자 등 30명은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가가 인사 문제로 시달리는 것은 방송위원 구성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온 과도한 정치권의 개입과 이에 따른 방송계의 과잉 정치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EBS와 KBS 모두 사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에 방송위원회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EBS의 경우 사장과 이사회를 방송위원회가 임명하며, KBS의 경우는 방송위원회가 이사회를 구성한 뒤 그 이사회가 다시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둘 다 방송위원회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청와대와 국회의 추천을 받아 구성되는 방송위원회 자체가 정치와 깊이 연관돼 있다. 방송법 21조에 따르면 방송위원장을 포함한 방송위원 9명 중 3명은 국회의장이 원내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해 추천하고, 3명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추천 의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하도록 돼 있다. 추천 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5월 꾸려졌어야 할 3기 방송위원회의 출범은 당시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간 극단 대립과 지방선거 등으로 3달 가까이 늦어졌다. 또 논의 과정 상에서는 정당 간 추천비율을 놓고 여야간 '자기 사람 심기'를 위한 자리차지 다툼이 반복됐다.

정연주 전 사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촉각이 곤두서 있는 것 또한 갈등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들은 정 전 사장에 대해 "저조한 경영실적을 비롯해 특히 탄핵방송, 그리고 이른바 개혁프로그램에서 이념 편향성이 심하다"며 연임에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지난 9월 KBS 사장 공모에 정연주 전 사장이 재응모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럴 줄 몰랐냐'라며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안에서부터 허물어지는 공익성의 위기

이처럼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고 있는 공영방송의 인사과정으로 인해 공영방송이 정작 챙겨야 할 '공익성'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위기는 정치적 외압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은 '공영방송의 내부'에서 공익성을 담보할 명분이 없어지고 있다며 KBS 및 EBS의 프로그램 제작 경향과 개편논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KBS는 지난 2001년부터 운영해오던 <독립영화관>을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조만간 폐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열린채널>이 KBS 프로그램 중 대표적인 시민참여 프로그램으로 인식돼 있지만 정작 이를 운영하는 KBS가 사전검열과 수정요구 등 독단적인 자세로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KBS 정책기획센터의 권오훈 PD는 지난달 28일 <참세상> 주관으로 열린 '공영방송 KBS를 위한 독립미디어 진영의 자문자답' 좌담회에서 "지금 KBS 공공성의 위기는 외부와의 소통의 문제인 듯 하다"며 "<열린채널>이나 <독립영화관> 등에 대해서 외부에서 문제점을 제기해도 정작 내부에서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익성이 '확실'한 입시교육과 영어교육 방송에만 매달리려고 하는 EBS의 전반적인 행로도 공영방송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또 여느 상업방송과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일부 EBS PD들의 경향에 대해서도 '시청률을 염두에 둔 자기만족적 제작'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시장과 경쟁의 원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공영방송의 위치에 있는 KBS와 EBS가 오히려 시청률과 수익성 경쟁구도에 동참해 '공익성 창출'이라는 본래의 가치를 내부에서부터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시장 개방은 다가오는데…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 '방송통신융합 규제기구' 출범이 예상되는 가운데 방송과 통신의 결합은 '유료 방송시장'을 더욱 넓힐 것으로 보인다. 이미 통신업계를 비롯한 업체들이 넓어진 방송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콘텐츠 확보 등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또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한미 FTA에서도 방송 시장의 개방이 점쳐진다. 한국 측 협상단은 방송 개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측은 방송과 통신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국산 프로그램 쿼터제의 완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변화는 이전까지 방송을 과점해 왔던 공영방송들의 입지를 점점 더 좁힐 가능성이 높다. 수백 개의 상업방송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공영방송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현재 공영방송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앞으로 '공익성 창출'이라는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게 만든다. 내부적으로 '공익성'에 대한 공감대를 찾아보기 힘들며 외부적으로는 사장 등의 인선과정에서 끊임없는 잡음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안팎으로 공익성에 대해 고민할 여유없이 다가오는 변화를 맞고 있는 이 같은 현실은 공영방송에 대한 위기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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