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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레이드 센터>, 위대한 실패로 남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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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레이드 센터>, 위대한 실패로 남을 듯

[이슈 인 시네마] 미리보는 올리버 스톤 영화

9.11 테러의 참혹한 비극인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붕괴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려 화제를 모아 온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영화사상 '위대한 실패'의 작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를 반영하듯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얼마 전 미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3위에 머무르는 등 기대만큼의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 영화는 오는 10월 중순쯤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오는 15일 올리버 스톤 감독이 직접 내한한다. . 미국적 가치에 경도돼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9.11 테러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 올리버 스톤 감독이 당초 표방하기에는 이 영화를 정치성을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었다고 했지만 실제 영화는 다분히 '미국적 가치'에 경도돼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프레시안무비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비행기가 충돌하는 모습 등을 건물에 비춰지는 실루엣으로 처리하거나 혹은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나 표정 등으로 처리함으로써 테러사태의 원인이나 그에 따른 정치적 해석을 극히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려 애쓴다. 대신 영화는 빌딩이 붕괴하기 직전, 사람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한 두 평범한 경찰관, 존 맥라클란과 윌 히메노의 얘기를 다룬다. 건물더미에 깔려 매몰된 채 죽음 직전에 이른 두 경찰관과 그들의 생존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올리버 스톤은 이 사건의 비극을 그리려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엄청난 재앙 앞에서 용감하고 애국적인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내세우기보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평범한 두 남자의 얘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상투적인 할리우드식 영웅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지나친 '정치적 강박증'으로 그 이상 한발짝 더 나아가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은 오리혀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 장애요소가 된다는 점을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역설하고 있다. . 희생의 '본질'에 초점을 맞췄어야 가장 큰 문제는 테러의 비극을 그린다는 명목으로 희생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건물의 붕괴로 희생된 수천명의 미국 시민들 그리고 경찰관들과 소방관들, 무엇보다 이들의 가족들이 겪은 아픔은 두말 할 나위없이 비극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희생'이란 개념을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9.11 테러의 본질은, 대상이 된 미국과 미국민만이 아니라 그 테러를 자행한 아랍권 테러리스트들, 또 이 사건을 목격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희생자라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프레시안무비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영화는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정치학'을, 비록 선의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미국인들만이 절대적 희생자임을 강조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플래툰>과 <살바도르>를 만들었던 올리버 스톤의 '정치적 올바름'의 태도가 커다란 재앙과 비극 앞에서 다소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도 애국주의 앞에서 자신의 예리한 정치의식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레이션은 그 같은 느낌을 극명하게 대변한다. 존 맥라클란 역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9.11 테러는 인간의 악한 측면과 선한 측면을 동시에 보여줬다. 우리는 (재앙 앞에서 서로를 위해 단결하고 희생했던) 선한 측면을 기억해야 한다." 올리버 스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인간의 악한 측면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 및 아랍권을 가리키는 말인가. 아니면 그 같은 테러를 가능케 했던 미국의 패권주의까지를 가리키는 말인가. 9.11의 비극 앞에서 빛을 발했던 휴머니즘의 정신을 강조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이 절대적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오류일 수 있다. 최선의 의도가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올리버 스톤의 직접적인 답변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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