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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보여주는 '반쪽짜리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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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보여주는 '반쪽짜리 현실'

[인권오름] 인권활동가의 눈으로 본 '커맨더 인 치프'

최근 한국방송에서 미국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의 방영을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이나 백악관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그간 여러 차례 제작돼 왔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미 대통령'을 어떻게 다뤘는지 그 자체로 관심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커맨더 인 치프'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가정했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미국에서는 방영 첫 회부터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시작 당시에는 차기 대권 주자로 부각되는 힐러리 클린턴의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활동가 강성준 씨에게는 이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로만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결단을 내릴 때마다 내세우는 명분이 다름 아닌 '인권'이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대통령의 모습이 '미국은 인권선진국'이라는 환상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드라마 속에서 대통령은 미국 수사요원이 살해되자 "마약이 국경을 넘어 미국 청소년의 건강을 위협한다"며 남미의 코카인 농장을 공습하겠다고 선언하고. 처형될 위기에 놓인 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공습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외견상으로는 현실과 꽤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강 씨는 "이 드라마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외국 정치에 개입해 온 역사에서 '인권'은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돼 온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진짜 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미의 '마약재배 농장'들이 실은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압력으로 생존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택한 자구책이라거나 관타나모 수용소와 같이 '테러 용의자'란 혐의로 수많은 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미국의 '또 다른 현실'을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 실린 강성준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최고사령관'이 휘두르는 '인권'이라는 칼날
▲ '커맨더 인 치프'의 포스터.

매주 일요일 밤 한국방송(KBS)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가 화제다. 지난해 9월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첫 방영된 이 드라마의 주인공 매켄지 앨런은 검사와 하원의원을 거쳐 대학 총장을 지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브리지스의 여성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한 선거 전략으로 함께 대선에 출마해 여성 부통령으로 당선된다. 공화당과 민주당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인 앨런은 브리지스 대통령이 뇌종양 수술 후 사망하는 바람에 대통령 직을 인수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이다.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첫 방영될 때 1700만 명이 봤고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치했다고 한다. 아마 한 번도 여성이 대통령을 한 적 없는 미국에서 여성이 대통령으로 '활약'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재미는 "어떻게 여성이 자유세계의 수장이 될 수 있느냐"며 음모를 꾸미는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 네이선 탬플턴과 주변의 음모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역할을 해내는 앨런 대통령 사이의 갈등에서 나온다.

'인권'을 위해 전쟁을 선택하다?

그런데 인권활동가로서 특히 이 드라마에 눈길이 가는 것은, 주인공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인권'을 들먹거리는 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마약을 만들고 거래하는 남미의 한 나라로 설정된 '산 파스쿠알'에서 마약 수사를 하던 미국 요원 9명이 살해되자 앨런 대통령은 이 나라의 코카인 농장 전체를 단계적으로 공습하겠다고 선언한다. '마약이 국경을 넘어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논리로 말이다. 농업의 대부분이 코카인 농장인 산 파스쿠알의 국민들은 코카인 농장을 보전하기 위해 수도로 몰려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산체스 장군을 끌어내리는 이른바 '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하게 된다. 이미 국경을 넘어 공습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 전투기는 그제서야 귀환한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선물 받는 사람의 뜻과는 무관하게 강제로 안겨졌다.

또다른 에피소드에서 곧 처형될 운명에 처한 한 나이지리아 여성을 구출하는 사건도 비슷하다. '성적인 부정'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 이 여성을 구출하기 위해 앨런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정부에 무조건 석방을 요구한다. '내정간섭'이라며 호기롭게 항의하던 주미 나이지리아 대사는 미군의 나이지리아 공습계획을 '브리핑' 받고는 얼굴이 사색이 된다. 결국 이 여성은 석방되어 미군에게 인계된다. 백악관 대변인은 "여성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을 중시하는 한 사람으로 행한 일"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아직 한국에서 방영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후반부에서 앨런 대통령은 북한 영해에서 침몰한 미국의 핵잠수함을 인양하기 위해 평양에 대한 핵공격 위협까지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앨런 대통령은 보편적 인권을 위해서라면 '내정간섭'은 물론 군사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침 드라마의 제목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최고사령관'이다. 이렇게만 보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 미국 대통령만큼 적극적인 '인권옹호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산물이 합법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코카인 농장이 파괴되면 나라 전체의 경제가 괴멸한다며 반대하는 보좌진의 의견처럼 '군사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뿐 인권을 증진시키지는 못한다. 드라마에서는 실제로 공습이 실행됐다면 다치고 죽어나갔을 나이지리아와 '산 파스쿠알'의 주민들의 삶은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남미의 '마약재배 농장'들이 실은 미국 농산물에 대한 시장 개방으로 생존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택한 자구책이라는 점도 드라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인권은 일국의 관할권을 넘어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하는 강대국의 '개입'은 거의 대부분 제국주의 세력의 이익에 복무했을 뿐 오히려 해당국 인민들의 인권상황을 후퇴시켜 온 것이 현실정치의 역사가 아니었나. 인권이란 종종 권력을 소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정통성의 외관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미국대통령은 인권대통령?
▲ 관타나모 수용소 ⓒ www.globalsecurity.org

이 드라마는 한편으로 미국의 인권현실을 왜곡해 '인권선진국'이라는 환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엘런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주변의 예측과는 반대로 러시아의 언론탄압을 '용기있게' 지적한다. 또다른 에피소드에서는 국경 근처에서 '테러예비범'이 잡혀 그가 속한 '테러단체'에서 미국의 명절인 할로윈데이에 초등학교를 겨냥한다는 테러정보가 입수되자, 앨런 대통령은 테러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테러범'을 '적 전투원'으로 규정해 '고문'하자는 법무부장관과 이를 반대하는 안보담당 보좌관 사이에서 갈등하다 "고문방지협약은 그것을 만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어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이 자신의 뜻에 반해 고문을 실행한 사실을 알고는 장관을 해임한다.

하지만 드라마 밖 미국은 이미 알려진 관타나모 수용소에 더해 이른바 '테러용의자'를 재판없이 구금할 수 있는 비밀수용소를 세계 곳곳에 두고 있다는 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관타나모 수용자들을 정식 군사재판 대신 군사위원회에서 처벌하는 미국 정부의 행위에 대해 미 연방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후 관타나모가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곳에는 200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새 건물이 이달말 완공된다고 한다.

드라마가 아무리 미국의 대통령을 '인권선진국'의 상징으로 만들더라도, 지난 6월 10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의문사한 수감자 3명의 존재를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의 '인권적' 정책을 자랑스러워 할 미국인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내가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씁쓸함이 남는 또 하나의 큰 이유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20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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