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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이버 마초'를 고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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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이버 마초'를 고발한 이유

<기고>"사이버 성폭력이 '그까짓 일'이라고?"

지난 3월 KT문화재단이 중앙대에 의뢰해 서울 등 6대 광역도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등 사이버 폭력을 경험했다는 청소년이 87.9%에 달하는 등 사이버 폭력이 심각한 수준인 것 으로 드러났다. 또 사이버 명예훼손.성폭력 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상담건수 8406건 중 성폭력 상담은 889건으로 2004년(322건) 보다 2.5배 이상 늘어나는 등 사이버 성폭력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이버 성폭력이 새로운 공론 형성의 장인 사이버 공간에서 인종, 나이, 성별, 육체에 의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버 성폭력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 등을 유발해 심각한 상처를 줌으로써 사이버 공간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ㆍ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게다가 익명성이 보장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고도 폭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해자들에게 사이버 성폭력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일종의 감정적 '배설'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군의 여성 누리꾼들이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자정 무렵 여성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WWW.miclub.com)에 여성의 항문이 노출된 사진 등과 함께 여성을 비하하는 글 80여 개를 올린 '김항문(kimhangmoon)'이라는 아이디의 한 누리꾼을 여성 누리꾼 120여 명이 직접 형사고발하고 나선 것. 또 이들을 포함해 500여 명의 여성 누리꾼들이 마이클럽 등에서 사이버 성폭력 추방 운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번 집단 고발에 동참한 마이클럽 회원 '꾸야'(닉네임) 씨가 <프레시안>에 사이버 성폭력의 문제점과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를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프레시안>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이버 성폭력을 포함해 사이버 폭력과 관련된 기사를 집중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인터넷은 불특정 다수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며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악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정신적ㆍ물질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성폭력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사이버 성폭력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별과 연령을 떠나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포르노나 음담패설을 접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 남성들은 그런 왜곡된 성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인터넷 공간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런 성 문화에 접촉되기를 원치 않는 여성들에게 마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듯 강제 유포하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사이버 성폭력을 둘러싼 두 가지 오해

이런 상황에 대하여 자칫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첫째, 사이버 성폭력의 가해자들을 단순히 변태나 정신병자, 혹은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자행되고 있는 사이버 성폭력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은 매우 지능적이고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 공간에서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치밀한 목표 의식을 갖고 사이버 성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사이버 성폭력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한 특정 사이트를 겨냥해 지저분한 성적 농담이나 여성의 신체를 학대하는 사진을 유포하고 있다. 또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에 주목한다. 이들 대부분은 여성들이 사이버 성폭력에서 느끼는 공포와 좌절감을 즐기며, 이를 통해 남성으로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여성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는 새로운 형태의 '마초이즘'(Machoism)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이버 성폭력은 단순한 변태 행위가 아니고 자신들의 마초이즘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의 자아에 큰 손상을 입히는 공격적이고 지능적인 범죄 행위다.

둘째, 사이버 성폭력은 직접적인 신체상의 상해를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과소평가되고 있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의 하소연에도 "그까짓 것을 가지고 뭘 그리 예민하게 나오느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컴퓨터 끄고 나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해자들이 오히려 더욱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 계속되는 사이버 성폭력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해자인 사이버 마초들은 인터넷에서 마음껏 활개 치며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을 수 있는 반면, 피해자인 여성들의 고통은 무시당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들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사이버 공간이 결국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는 엄연한 성차별이며 여성 소외를 통한 남근 중심적 사이버 공간의 형성을 부추기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사이버 성폭력은 단순히 싫으면 피하고 볼 문제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네티즌들이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다.

성폭력 저지르고 자긍심을 느낀다고?

나는 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일부 남성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와 익명으로 무차별한 성적 비하 발언을 쏟아놓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소위 명문 여대라는 것을 졸업한 꼴통 페미니스트들(사이버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이런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은 콧대만 높고 돈 가진 남자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데 그런 너희들을 혐오한다', '여대생들은 모두 걸레' 등의 내용이었다. 워낙 그런 글을 많이 접하다보니 언제가부터는 그냥 비웃으며 지나치게 됐다. '남자들은 원래 저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심각성을 못 느꼈다는 것이다.

사이버 마초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개인을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이메일 주소를 수집해 역겨운 포르노 사진을 보내거나, '너와 섹스하고 싶은데 비싸게 굴지 말고 한번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학생으로서 처음 겪은 사이버 성폭력의 충격과 비참함이란 굉장히 컸지만, 한편으론 너무 부끄러워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최근 마이클럽에서 일어나 '김항문 사건' 직전에도 '네 항문에 박아보고 싶다'는 쪽지를 받은 일도 있었다. 당시에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쪽지를 삭제하는 일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만큼 사이버 성폭력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매우 소극적이었고, 그런 일을 당하는 상황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미성숙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김항문 사건'을 겪으면서 다수의 여성을 향한 사이버 마초들의 치졸하고 더러운 행위에 분노했을 뿐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마초이즘의 분출구로써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해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그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남성들과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고 놀라웠다.

여성가족부에 반대한다는 '남성가족부' 사이트 게시판 등을 보면 김항문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남성들은 이번 테러에 대해 매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김항문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라고 감격해 마지않는 20대 초반의 남성들을 보며 이번 사태가 한시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그들의 사이버 성폭력이 1차 목표인 마이클럽 회원들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그토록 혐오한다는 여성 전체를 모욕하고 폭력을 자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하나의 의식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이번 사태는 여성 전체를 향한 무차별적 성폭력이다. 마이클럽에는 10대 청소년, 미혼 여성, 임신한 여성, 아이의 어머니, 고령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어 그 모습은 사이버 공간상에 구축된 커뮤니티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축소된 여성 공동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그들이 처음 택한 대상은 마이클럽이라는 특정 사이트였지만, 더 깊게 보면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향한 사이버 테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버 성폭력 해결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

그럼에도 사이버 마초들은 말한다. 고작 포르노 사진 몇 장에, 성희롱적 발언에 그렇게까지 분노하느냐고.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당신의 가족에게 그 사진, 그 끔찍한 발언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냐고. 내 가족이 봐서는 안 될 것, 내 가족이 상처 입으면 안 될 일은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장난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상처였으며, 앞으로 내 가족, 내 친구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비겁하고 소심하게 눈감고 넘어가던 일에 나서게 된 것이다.

집단 고소장에 이름 한 줄 보탠 것으로 이번 사태에 앞장서 행동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이번 사태를 포함한 모든 사이버 성폭력의 근절을 원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힘 닿는 한 할 것이다. 우선 사이버 성폭력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고,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또 이런 과정이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짓밟거나 유린하는 사회가 아닌, 어우러지는 사회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대다수의 선량한 네티즌들을 지키기 위한 일에 동참한 마이클럽 회원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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