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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노현정의 결혼에 집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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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노현정의 결혼에 집착했을까?

[기자의 눈] 2006년 한국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원하나

28일 전국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그 전날인 27일에 있었던 노현정 KBS 아나운서와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 정대선 씨의 결혼식을 보도했다. '아이 셋 낳고 싶어요', '너무 행복해요'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사실 언론이 이 결혼에 신경을 쓴 것은 결혼식 당일만이 아니었다. 지난 8일 노현정 씨가 결혼 계획을 최초로 공개한 뒤 인터넷에는 이에 대해 100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둘은 어떻게 만났고, 프러포즈는 언제 했는지 등의 '기본 정보'부터 노현정 씨에 대한 뜨거운 취재경쟁, 커플의 출산과 인생 계획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각종 신문과 전파를 탔다.

언론과 독자의 합작품, '2006년판 신데렐라'
▲ 지난 27일 열렸던 노현정-정대선 씨의 결혼식은 28일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모든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 연합뉴스

노현정 씨의 결혼 발표 이후 마치 한 편의 신데렐라 소설을 다루듯 호들갑을 떤 신문과 방송들은 일부 네티즌들의 '한심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 독자들의 반응은 비난이 아닌 '환호'였고, 결혼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정보에 목말라했다. '노현정', '노현정 결혼'이라는 검색어는 8월 내내 포털 사이트들의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결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한때 '임신설'이 유포될 정도로 사생활에 대한 다소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렇듯 노현정 씨의 결혼에 언론과 독자 모두 집착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인기있는 아나운서였고, 만난 지 2달 만에 프러포즈를 받았고, 결혼식을 3주 전에 전격 공개했고, 상대는 누구나 아는 재벌가의 아들이었기 때문일까?

양극화와 함께 발달하는 '가십 저널리즘'

재벌-아나운서 간 결혼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성주 아나운서가 1996년 애경그룹 회장의 막내 아들 채승석 씨와 결혼할 때나 황현정 아나운서가 2001년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과 결혼할 때, 역시 이들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나 노현정 아나운서의 경우는 스포츠신문 등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매체를 넘어 거의 모든 매체가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전 경우들보다 월등히 '우세'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전규찬 교수는 "이번 노현정 씨의 결혼에 나타난 세간의 관심과 언론의 양상은 한국에서 가십에 대한 관심이 '가십 저널리즘(Gossip journalism)'이라는 본격적인 형태로 발달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영국 왕실 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는 가십기사가 영국의 타블로이드판 신문부터 주요 일간지의 한 면을 차지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그 같은 대중적 관심이 재벌,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들에 대한 가십 기사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전규찬 교수는 "이런 현상은 한국이 양극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점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과 서민 사이에 넘을 수 없을 만큼 두꺼운 벽이 형성된 사회에서는 가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난의 대상이었던 '그들'의 배타적 행동과 사치가 이제는 오히려 가십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흥미거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파라치로 대표되는 영국의 가십 문화가 영국인들에게 마냥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한편의 연속 드라마처럼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듯이, 한국 사회 내의 '계급의 차이' 또한 점점 넘어서기 힘들어지면서 서민들의 욕구와 불만이 오히려 가십의 소비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미디어 평론가인 변정수 씨는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그는 "살기 '팍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갖는 기대치와 부딪히는 현실의 괴리감은 점점 더 커져가고 그 갭(gap)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며 "노현정 씨의 결혼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사생활에 대한 인신 공격과 같은 왜곡된 반응들도 그런 폭력 중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이름을 걸고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사생활이 대리만족을 통해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감을 해소하려는 대중 심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 인터넷의 발달로 연예 산업과 거대한 공모 구조 형성

그렇다면 노현정 씨의 집과 직장에서 새벽부터 기다렸다는 언론의 눈물어린 노력은 가십을 원하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가상한 태도로 봐야 하는 것일까?

변정수 씨는 "한마디로 언론도 연예 기사가 '장사가 되니까' 쓰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전에는 구멍가게 수준이던 연예 사업이 인터넷의 발달이라는 산업의 구조 변화로 인해 방송-신문-인터넷이라는 언론 산업 전체의 공모 구조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터넷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매체와 독자 사이의 활발한 소통이다. 가십을 원하는 대중 심리에 맞춰 언론은 재벌 귀족를 비롯해 연예·스포츠 스타들과 같은 '신(新) 문화 상류계급'의 아우라를 재빠르게 생산해낸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활발한 양상을 보이는 이런 상호 교류 속에서 소위 '가십의 주류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결혼식이 있던 날 노현정 씨는 "마냥 행복해서 지금 '감정 컨트롤'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은 이 '팔리는 문장'을 놓치지 않고 보도했다. 이런 언론의 행태는 '저 말은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가상의 현실을 찾아 헤매는 대다수 한국 서민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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