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이 '중도개혁세력의 위기'라는 김영춘 의원의 고민을 이었다. 민 의원은 24일 <프레시안>에 보내온 기고문을 통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재앙"이라고 했다. 정권 상실이라는 의미를 넘어 "중도개혁세력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상실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일본식 1.5당 체제가 고착화 될 수 있다는 김영춘 의원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민 의원은 당내 좌우파의 '개혁 근본주의' 및 '정체성에 대한 무감각'을 극복하고 "당의 새로운 중심이 준결사체로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과거의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구도 창출을 위해 중도개혁세력의 전위대가 시급히 우리당 내에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 의원은 또한 "광범위한 지적, 문화적 네트워크 구축, 진보개혁 언론진영 및 시민단체 등과의 관계 복원"을 주문했다.
그 목표는 "정체성의 재확립과 국가발전 전략 제시"로 압축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 논쟁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된 논쟁의 공허함을 뛰어넘어야 한다. 복지국가에 대한 중장기 계획과 단기적 경제대책은 현시점에서 윤활하게 맞물려야 한다. 민 의원의 선언적 문제제기가 파급력을 얻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민 의원은 이를 "단기간에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지켜 볼 일이다. <편집자>
1. 열린우리당은 중도개혁정당이다.
열린우리당이나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 국민회의는 모두 중도개혁정당이다. 일관되게 중도개혁정당이며,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표방이 흔들리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스탠더드에 편입되는 과정, 영ㆍ미식 신자유주의에 따라 경제체질을 개혁하고 효율성을 제고하는 짐을 지난 10년 가까이 떠맡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건설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게 되었다. 경기와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 하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건설이라는 작업은 자연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당은 중산층 복원을 위한 능력 있는 정당, 서민대중을 위한 개혁적 정당으로 비쳐지기 보다는 비정규직과 한계자영업, 실업의 문제에 둔감하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정당으로 비쳐졌다.
당과 정부는 이중과제의 마땅한 해결방안이나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적시에 제대로 수립하고 있지 못한 가운데 당의 주류문화가 바뀌었다. 젊어지고 다양해졌다. 이 또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자 중도개혁정당이라는 근본적 지향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게 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개혁 근본주의에 빠졌다. 주로 국가보안법 폐지 등 정치적 개혁에 관한 것이다. 이영희 선생이 "폐지해야 하지만 의석이 겨우 절반을 넘을까 말까 한데 무리수를 쓸 수가 있나. 시간과 대세를 살펴가면서, 여유 있게 너그럽게 힘을 운영해야지"라고 말했고, 임혁백 교수가 "4대 개혁과제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강력한 반대세력과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을 묶음으로써 반대세력을 묶어주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 것처럼 정치 사회개혁의 과잉은 열린우리당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실용으로, 서민경제에 관한 것은 보조품으로 매도되거나 치부되었다.
다양함은 당의 가능성이자 한계다. 다양함은 다양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 하지만 중심은 없었다. 정체성 논쟁을 하자는 당내 좌우파의 문제제기는 빈번했으나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를 뛰어넘고 있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를 이해하고 정작 이에 맞는 정체성의 재확립과 국가발전전략을 제시하는 새로운 중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의 중심은 대단히 중요하다. 당내 우파는 종종 한나라당 및 보수 세력과의 긴장된 경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과 책무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 우리당은 종종 계급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전통적 좌파의 공격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우리를 지지해 달라고 말할 무기를 잃게 된다.
당내 좌파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과도한 연민에 빠져 있거나, 20년 전의 시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를 넘어서는 시대적 요구를 못 읽어내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집권세력으로서의 무게감과 기대감을 잃게 한다.
당내의 좌파와 우파의 존재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중심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들을 견인하고 통합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중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중심세력이 건설되고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보수우파는 상대적으로 그런 부담에서 면제되어 있다. 뉴라이트가 거의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력과 네오콘 세력의 이념적, 전략적 복사물을 수입해 한나라당에 강요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변화에 둔감하다. 변화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력한 지지기반과 보수 세력의 응집력을 갖고 있다.
진보좌파는 앤서니 기든스가 노동의 미래, 제3의 길에서 지적했듯이 좌파 권위주의라는 한계에 빠져 있다. 좌파 노선을 고집하는 것 자체가 영원히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좌파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이상 민주노동당이 계급정당의 한계를 벗어나 대중정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이런 한계는 우리에게는 기회요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고 더욱 절박하다. 과거에는 통일 대 반통일,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이라는 거대담론과 전선만으로 우리에게 정통성과 도덕적 우월성이 부여되었다. 우리의 지지 세력은 끊임없이 충원되었고 국민들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시대의 과제와 도전은 매우 복잡해졌다. 한두 명의 뛰어난 개인이 담론을 만들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결국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집단이 뭉치고 토론을 통해 동질성을 확보해나가고 방향을 정립해야한다.
2. 2007년은 위기다.
일본식 1.5당 체제가 될 수 있다는 김영춘 의원의 우려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했어도 양김은 그 직후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강력한 지역기반과 카리스마가 있었고, 민주화라는 미완의 시대적 과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다. 2007년의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거의 재앙이다. 그 직후 치러지는 2008년 총선에서 중도개혁세력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상실될 수도 있다. 우리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2004년 탄핵총선에서 보여주듯 보수 세력은 경계심을 갖고 집결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정치적 재앙과 같은 결과는 쉽게 오지 않는다. 반면 우리에게는 지역도 계층도 없다. 양김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없다.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과 정체성과 국가전략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국가전략의 수립과 정체성의 정립을 위한 시간은 충분치 않다. 당을 대선 국면에서 이끌고 갈 인물도 없다시피 하다. 기존의 인물들은 재탄생해야 한다. 새로운 인물은 당에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망설이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으로 확정된다면 성장, 개발이 한 쪽의 국가목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만약 박근혜 전대표가 된다면 선진화를 기치로 내걸겠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흐름으로 인상지어질 것이다. 각각의 한계와 장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복지국가의 모델과 비전을 제시하는 장기재정계획 비전 2030의 당정청 설명회에서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 있고 좌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당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복지국가에 관한 중장기계획은 대항마가 될 수 있다. 낙오자 없는 세계화, 지속가능한 세계화, 사회통합적 시장경제, 사회국가를 향한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요구는 당장의 일자리창출에 더 집중되어있다. 단기적 전략과 중장기 전략이 결합하지 않고서는 대중의 소구가 약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당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우선 중심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광범위한 지적, 문화적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담론을 공동생산하고 지지해줄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제설정을 공유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진보개혁 언론진영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과의 결합을 확산시킬 수 있는 정책연합, 즉 이익단체, 기층단체, 시민단체와의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처럼 울타리를 재정비하고, 강한 함대를 만들면 새로운 연대가 가능해진다.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연장에서 민주세력의 연대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과거에 묶이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구도에 맞는 새로운 연대여야 한다. 이런 과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의 새로운 중심이 준결사체로까지 발전해야 한다. 최근 당내에 퍼져 있는 위기의식은 준결사체의 결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당내의 이런 저런 의원 모임들이 보다 빠른 속도로 중심세력의 형성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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