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에서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본부장으로 일한 뒤 몇몇 당직권유 등을 물리치고 한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이 최근의 여권 상황을 총체적으로 진단하면서 현재의 경색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제언이 담긴 기고문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김 의원이 보내온 원고 전문은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어서 이와 함께 보내온 요약본을 우선 소개한다. 당초 원고의 전문은 기사 아래에 덧붙인 '전문 보기' 링크를 클릭해서 볼 수 있다.
"두 달이 넘게 장고에 들어갔었다"고 스스로 밝힌 김 의원은 "4.15 총선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우리당은 돌이켜 보면 결국 반(反)지역주의연합, (청와대)거수기 정당에 불과했지 본질적으로 우리가 소망했던 새로운 체질의 정당이 아니었다"고 먼저 스스로의 책임을 물었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을 재선에나 연연하는 비속한 정치인들로 폄하하고, 바깥에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걱정과 비판은 전체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오만함으로는 올바른 당청관계도, 참여정부의 성공도 애초에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원은 "좌파신자유주의 정부 식을 벗어난 '통합과 중도 개혁세력의 미래 좌표'가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대논쟁을 펼쳐보자"며 "정당 모델은 '부시 이전의 미국 민주당'을 전범으로 삼되 국가발전전략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한 한국식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어떤 세력통합도 '반한나라당 연합전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며 "혹시 대선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역사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장고' 기간 동안 일부 동료의원들, '중도개혁' 성향의 몇몇 교수들과 의견을 모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 역시 그런 집단적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한 교수의 귀띔이다.
우리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권이고 당내 대권주자들도 뚜렷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김 의원의 도발적 문제제기가 당 안팎에서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지가 일단 관심사다.
이번 문제제기가 일회성에 그칠지 아니면 김 의원의 제안대로 우리당 내의 건설적 논쟁의 시발점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편집자>
1. 대한민국은 일본식 1.5당 체제로 가는가?
열린우리당과 진보개혁세력의 정처 없는 표류에 대한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이었던 지방선거와 7.26재보선 이후, 우리당을 포함한 대한민국 중도진영과 중도개혁세력이 내년의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정치에도 일본에서처럼 보수 자민당 1당 지배체제가 고착화되고, 다른 정당들은 반영구적 소수정당으로 전락하는 1.5당 체제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는 무엇이었기에, 우리당을 이토록 고사 직전의 위기로까지 몰아세우고 있는 것일까?
2. 열린우리당의 오류 : 반지역주의 연합, 거수기 여당에 불과
집권당에게는 절제의 정치가 요구됨에도 마치 혁명을 하는 것처럼 정치를 했다. 특히 실물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은 고통 받고 희망을 잃은 대중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앞서야 했지만 이 점에서 당과 정부는 무능했다. 또한 우리당은 현실적 토대 구축단계가 무시된 채 기간당원제 도입과 당과 원내의 분리라는 과도한 정당실험의 오류를 겪었다.
가장 중요한 오류는 세계화시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입장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도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어떤 의미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당은 청와대와 정부에 수동적으로 끌려갔고, 핵심적인 경제-사회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했다. 요컨대 우리당은 '반지역주의 연합'에 불과했지 우리가 소망했던 새로운 체질의 정당은 아니었던 것이다.
3. 노무현 대통령의 오류 : 참여 없는 참여정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영속적 정당의 개척에는 대통령과 당 사이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 필수적이나 대통령은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의 의제와 화두를 당에 강요하고 관철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충정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대연정 제안에서 보듯 대통령의 준비되지 않은 정치적 행보와 언행은 큰 문제였다. 비교적 일관된 논리적 기조 하에 제시하고 있는 대통령의 국가발전 전략인 '통합(대연정론)과 개방(한미FTA)'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지지자들, 나아가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에 대한 설명과 동의 과정을 제대로 조직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정책을 추진해가는 독선적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4. 좌파적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인가?-새로운 비전의 부재
우리당을 포함한 기존의 개혁세력은 추상적 당위론의 설파에는 능했지만, 발전잠재력의 훼손 요인에 대해서, 즉 새로운 성장동력, 시장과 규제, 복지모델, 기업과 노조, 북한의 개혁개방과 주민인권문제 등 구체적인 각론에는 약하거나 비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중위권 국가의 집권세력 혹은 정권수임세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경제의 잠재력과 대외경쟁력 제고에 대한 비전설계와 실행이며, 동시에 양극화로 고달파진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개선시킬 해답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식의 좌파 논리에 경도된 시대착오적 수구정당의 낙인을 모면할 수 없고, 재집권의 길은 요원해질 것이다.
5. 통합과 중도개혁의 미래좌표 : 세계화 속의 제3의 길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동될 중도개혁세력의 바람직한 대통합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국가발전전략과 정당모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는 일이 급선무다. 정당의 이념모델 및 조직모델과 관련, 미국 민주당이 지향점으로 삼을 가치가 있다.
그것은 공화당보다는 진보적이면서 소수 좌파로부터 끊임없이 배격당하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중도개혁세력의 정당이다. 그것은 충성스런 뿌리당원들이 존재하면서 공직후보 선출에서 국민의 참여를 혁명적으로 받아들인 미국 정당개혁의 선도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발전전략 면에서는 미국 모델을 따를 필요는 없으며, 세계화와 시장주의의 큰 원칙을 적극 수용하되, 다양한 선진모델들을 참고해 우리만의 국가발전 및 사회통합 전략을 세울 일이다.
나아가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은 북한문제이고 통일문제인데, 북한문제를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어 가는 국가전략이 우리의 미래비전에 필수적이며, 경제문제와 더불어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외교전략의 양대 축일 수밖에 없다.
6.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릴레이 대논쟁을 전개하자.
현재의 위기에 대한 해법과 개혁세력 및 국가의 진로에 대한 연구회를 조직하고, 적어도 올해 연말까지는 충실한 연구와 토론을 바탕으로 각자의, 각 그룹의 의견들을 제출하고 릴레이 논쟁을 전개하자.
이는 우리당 정치인들만의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중도개혁세력의 부활을 소망하는 모든 국민들의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나의 제언에 대해 정치권 내에서부터, 그리고 이 땅의 숱한 개혁적 지식인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제기와 활발한 토론이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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