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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활동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전 청구성심병원 노조위원장 이정미 씨 별세

"70년대에나 있었던 '똥물사건'과 '식칼테러'를 겪은 사람, 보통 사람들이 인생을 열 번쯤 살면서 겪을 만한 고통을 젊은 시절 한꺼번에 다 겪은 사람. 그리나 그 고통에 결코 굴복하지 않은 사람."

하종강 한울노동정책소장은 지난 19일 새벽 위암으로 별세한 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위원장 이정미 씨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향년 39세인 이 씨의 영결식은 22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진행됐다.
▲ 이정미 전 청구성심병원 노조 위원장ⓒ프레시안

이 씨는 보건의료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던 2001년 4월 위암이 발병해 위절제 수술을 받았으며 2005년 말 병세가 악화됐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시기에 이정미 씨는 대표적인 장기투쟁 사업장이던 청구성심병원 노조를 이끌었다. 당시 청구성심병원은 사측이 고용한 용역깡패가 조합원 총회에 투입돼 술이 취한 상태에서 식칼을 휘두르고 똥물을 투척하는 등 '테러'를 자행했다.

그 뒤 청구성심병원 노조는 2003년 '사측의 탄압으로 인한 노동자의 정신질환 발병'을 최초로 산재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정미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최경숙 씨는 "이정미 동지는 암투병중에도 단 한번도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암치료를 하면서도 음성성모병원, 방지거병원, 빈센트병원 등 어려운 투쟁의 현장에 달려갔다"고 말했다.

하종강 소장이 전해주는 일화는 각별하다.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이정미 씨는 '몸도 불편한데 계속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거냐'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무 할 말이 없다. 그냥…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다. 몸이 아플 때도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윤창훈 씨와 아들 동민·동현 군이 있다. 장례식은 22일 서울대병원에서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장으로 치러졌다.
청구성심병원은 1998년 IMF 구제금융시기에 노사간 갈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유명세'를 탔다.

이 병원은 당시 검찰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노사정위원회 산하 부당노동행위 특별위원회의 중재를 받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도 노사갈등은 끊이지 않고 계속돼 왔다.

청구성심병원 노조는 1998년 임금체불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와중에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조합원 총회장에 난입해 술이 취한 상태에서 식칼을 휘두르며 총회장의 불을 끄고 똥물을 투척하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이 병원은 위장 폐업과 조합원 10인에 대한 부당해고 등의 이유로 1998년 한 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13건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되는 바람에 부당해고 노동자 전원을 복직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복직 이후에도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 등이 지속됐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일상적 차별, 감시와 협박, 폭력, 왕따 등에 대한 '노동자 집단산재 인정 투쟁'을 전개해, 우리나라 최초로 사측의 탄압에 의한 노동자들의 정신질환 발병을 산재로 인정받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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