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에게서 1억3000만 원대의 현금과 고급 카펫을 받고 동료 법관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와 거액의 현금을 받은 전직 검사, 현직 경찰 총경이 동시에 구속되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직에 몸담았던 전직 고법 부장판사와 검사를 구속수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비리에 연루된 다른 법조인 등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 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8일 김 씨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고 민ㆍ형사 재판에 개입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조관행(50)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또 김 씨로부터 사건 무마 대가로 1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광(42) 전 검사와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민오기(51) 총경도 각각 뇌물수수와 특가법상의 뇌물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이상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조 전 부장판사와 관련해 "고도의 청렴,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 법관이 동료 법관의 재판에 청탁하는 명목으로 거액을 받는 등 사안이 중대하고 참고인들과 부적절하게 접촉하면서 금품을 제공하는 등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데다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있어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김 전 검사는 직무 관련 범행으로 김홍수가 다른 검사의 재수사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민 총경은 수사 실무책임자로서 김홍수 청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가 그의 요청으로 수사를 중단하는 등 두 사람 모두 사안이 중대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 전 검사의 경우 도주 우려가 있고, 민 총경은 증거 인멸과 진술 번복 우려가 있어 피의자들의 연령과 경력, 지위 등을 고려해도 구속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부장판사는 2001년 1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4차례에 걸쳐 민ㆍ형사, 행정, 민사 본안 사건에 재판 당사자의 의뢰를 받은 브로커 김 씨의 청탁을 받고 재판에 힘을 써주는 대가로 현금 4000만 원과 7000만 원 상당의 가구, 카펫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2001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2차례에 걸쳐 김 씨 등으로부터 전별금, 휴가비, 용돈 명목으로 22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김 씨는 검찰 수사에서 조 전 부장판사에게 전별금, 용돈 등 명목으로 현금만 1억6000여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대가성이 인정되는 6200만 원만 범죄 사실에 포함시켰다.
김 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면서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2차례에 걸쳐 피내사자 신분인 브로커 김 씨로부터 모두 1000만 원을 받고 김 씨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 총경은 지난해 1월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으로 근무할 때 김 씨가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을 고발한 사건에 착수하면서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부장판사는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현금 수수와 재판 청탁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1000만 원 상당의 가구는 선물로 받았다고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검사는 혐의 사실을 모두 시인해 10여 분만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쳤고, 민 총경은 수사 때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가 법원에서 기존의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은 브로커 김 씨가 서울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점을 감안해 조 전 부장판사 등 3명을 성동구치소에 수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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