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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제라도 '국내협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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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제라도 '국내협상'에 나서야 한다

[한미FTA 뜯어보기 69][기자의 눈] 경제지식-협상능력-영어실력 모두 '부적격'

20일 언론문화재단 포럼에서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개방으로 손해를 볼 사람들의 반대가 우려돼 협상내용, 특히 우리 측의 양허안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숨겨온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의 말은 우리 정부가 이미 개방하기로 마음먹은 업종별 리스트가 공개되면 지금까지 한미 FTA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 대열에 참여할 것이고 반대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민의 몇 퍼센트가 찬성을 하느니, 기업인의 몇 퍼센트가 찬성을 하느니 하며, 국민의 지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원동력인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워 온 국민의 지지가 허상이라는 것, 정부가 숨기고 있는 개방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면 국민의 지지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정부 스스로도 알고 있음을 김종훈 대표는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한미 FTA를 체결하기 위해 개방계획의 세부안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이런 식으로 자기 국민을 상대로 기만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누구나 익히 알다시피 미국 정부는 신속협상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의원들과 각 산업체 대표들에게 한미 FTA에서 이것은 이렇게 요구할 것이고 이것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미주알 고주알 설명해주고 의원들과 이해집단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챙겼다. 심지어는 협상 상대방인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자기네 의회에 불러 의원들 앞에 앉혀놓고 "4대 통상현안을 시의적절하게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하게까지 만들었다. 이해당사자들에게 '당신은 알 필요도 없고, 알면 반대할 것이니 알아서도 안 돼!'하는 우리 정부와는 매우 다른 태도다.

애초에 안이하게 생각하고 국민들 모르게 한미 FTA를 신속하게 체결하려고 했던 정부가 예상 외에 반대여론이 높아지니 이제는 양허안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말뿐이지 실제로 공개를 할지는 미지수다. 일반인에게는 고사하고 업계의 지도자들에게도 공개할 것 같지 않다.

협상단의 시간표에 따르면 8 월 15 일 이전에 한미 양국 정부는 상품, 농산물, 섬유에 대한 관세 양허안을 일괄 교환하기로 돼 있다. 이는 곧 우리 정부가 관세 양허안 속에 국내 관련 업계의 의견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기간에 정부가 우리 측 양허안을 공개하고, 업계에서 그것을 검토해 의견을 내고, 협상단과 업계가 협상을 해 합의를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시간표를 지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 정부는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업계의 의견을 수렴했고, 자기들 관세 인하계획에 대한 업계와 의회의 동의를 받아두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계획은 협정이 체결된 다음에야 업종별 관세양허 계획의 내용을 발표하려는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일하는 산업분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고 항의하는 기업인들에게 정부는 "이미 끝난 일이니 다른 업종을 찾아보거나 경쟁력을 강화해서 살 길을 찾으라"고 답변할 심산인 것이다. 이런 협정 추진이 비민주적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지금 이 협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정부는 지금 당장 우리측 관세양허안을 공개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전자정부의 인터넷으로 공개하든 국정브리핑에 올리든, 그건 아무래도 좋다. 국민들을 어린애 취급하면서 '너희는 내용을 알려고 하지 말고, 정부가 하는 일이니 무조건 옳다고 믿고 지지하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요즘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도 아이의 의견을 물어본다. 양허안을 공개하지 않고 공청회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형식적이고 행사 위주의 공청회가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부 관료들이 해당 업계 대표들과 마주 앉아 열띤 '국내 협상'부터 벌여야 한다. 대통령이 구성을 지시했다고 하는 국내팀도 국정홍보처의 선전작업을 강화할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런 국내 협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미 FTA에 반대하고 있고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국민들은 내용도 모르는 채 한미 FTA 를 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부에서는 반대자들을 맹목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지지자들이 더 맹목이다. 지지자들은 우리 측의 관세양허안을 보지도 않고서 지지하고 있지만, 반대자들은 최소한 무엇이 개방대상이 될 줄은 알고 있으면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이 체결되어도 국민의 절반은 불만일 것이고, 결렬되어도 국민의 절반이 불만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국회에서 알아서 하시오 하고 떠넘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한미 FTA에 전념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대로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협상팀과 추진론자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지금부터라도 협상계획을 다시 합의해나가야 한다.

지금의 협상대표단은 협상능력에서 이미 부적격으로 판정이 났다. 지금의 협상대표단은 아주 중요한 협상카드인 스크린쿼터도 그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협상이 깨질까봐 자발적으로 양보했다고 한다. 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WOULD BE ADDRESSED'가 '검토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소위 4대 선결과제를 협상 개시 이전에 처리해 달라는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답변했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단정적인 표현을 최대한 회피하는 외교가에서는 'WOULD BE ADDRESSED'라고 일국의 통상장관이 말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혹은 '처리될 것이다'라는 뜻이라고 이해한다. 만약 '고려할 것이다'라는 의사를 전달할 생각이면 'WOULD BE CONSIDERED'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 협상단은 또 한미 FTA가 체결되어 미국 상품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세가 낮아지면 국내 소비자가격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관세가 낮아지면 우리나라 재정적자 폭이 늘어나거나 국내 경쟁산업이 도태되어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처럼 지금의 우리 협상단은 경제지식도 협상의 원칙도 모르고, 영어 실력도 부족하다는 것이 가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우리 협상단은 미국과 맞짱 뜰 실력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방을 확대할 것이냐,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장치를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시장을 확대할 것이냐 하는 원칙론을 가지고 다투거나,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을 놓고 편을 갈라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자'니 '시대에 뒤떨어진 자립경제론자'니 하고 서로 삿대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미 FTA는 이미 시작한 협상이니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어야 한다. 지금 반대하고 있는 국민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협상을 추진해 체결하든가, 아니면 지금 찬성하고 있는 국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협상이 중단되거나 부결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 협상이 모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의 홍보를 순진하게 믿고 찬성하는 쪽은 이렇게 좋은 기회가 반대론자들 때문에 깨질까봐 불안해 하고, 반대하는 쪽은 나라를 망치는 협정이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졸속으로 체결될까봐 불안해 한다. 양쪽 모두 대한민국 정부에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투표를 하고, 이 나라의 틀 안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고 안심하게 살 권리를 갖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전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민의 절반 혹은 그 이상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도록 진행되어서는 안 되고, 꼭 그렇게 진행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지금처럼 국민이 반반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하게 된 것은 정부가 이 협상을 추진하는 방식이 미숙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국과만 협상하고 국민과는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용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음모적으로 협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 FTA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사안이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현 정부가 업적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과오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해 온 방식으로 협상을 계속해 나간다면 결국에 가서 협정이 체결되든,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든 정부는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비난과 비판을 받게 돼 있다. 정부는 지금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자포자기가 되어 어차피 국민의 절반은 반대하게 돼 있는 일이니 소신과 신념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다행스럽게도 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이 아직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협상의 내용과 과정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도 시도해보는 국내 협상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이런 작업은 한두 번의 공청회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지고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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