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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ㆍ장하준도 '낡은 종속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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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정우ㆍ장하준도 '낡은 종속이론가'?"

<기자의 눈>'FTA 태극전사'를 응원할 수 없는 이유

"19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은 한국경제에 너무나 큰 충격을 줬다.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의 피해가 컸다. 외투를 준비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을 맞은 것이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6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가피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 수석은 불과 나흘 뒤인 10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한미 FTA 태극전사들을 성원합시다 : 폐쇄적 민족주의와 낡은 종속이론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는 글에선 "한국이 UR협상을 가장 잘 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나흘 전 자신이 쓴 글을 의식해서인지 "당시 정부가 UR협상을 완벽하게 했다는 게 아니다. 농업의 경우 충격이 컸고 사후대책도 미흡했다"고 한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수석이 <청와대브리핑>에 연재하고 있는 한미 FTA 관련 이 기획시리즈 제목은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합시다"이다.
  
  한미 FTA 반대가 무책임한 반대?
  
  이 수석이 이처럼 과거의 UR 협상에 대해 다소 상반된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미 FTA에 대한 최근의 반대 목소리를 "반대를 위한 반대, 대안 없는 반대"로 몰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미 FTA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개방반대론자들에게 묻겠다"며 "UR협상대표단을 매국노라고 여기는 국민들이 지금도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미 FTA 반대 입장을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낡은 종속이론"으로 치부했다. 그는 "이는 현실안주에는 적합한 명분일지 모르지만 국가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며 "정부가 UR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UR을 거부했다면 한국이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겠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과연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의견이 이 수석의 주장대로 일부 무책임한 개방반대론자들의 선동에 선량한 국민들이 넘어간 결과일가?
  
  그렇다면 지난 6일 171명의 경제학자가 "한미 FTA 추진은 현 정부 최대의 국정실패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 정부 전반기에 경제 정책 브레인의 한 축이었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또 노 대통령이 한때 극찬했던 책인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장하준 캠프리지대 교수도 서명했다. 청와대는 이정우 전 실장과 장하준 교수도 "폐쇄적인 민족주의자 또는 낡은 종속이론가"로 보고 있는가?
  
  한미 FTA. 손해 나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이 수석은 또 "구한말의 개항은 철저히 '타의'에 의해 진행됐고, 이는 곧 국권상실로 이어졌다"며 "'제2의 개항'이라던 UR은 '자의 반, 타의 반'이뤄졌지만 한미 FTA는 완전히 '자의'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한미 FTA 협상이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 굴종하는 FTA협상은 없다"며 "손해 나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FTA 협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 스크린쿼터의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의 예외 마련,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가격정책 도입 중단 등 소위 '4대 통상현안'과 관련해 미국 측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손해 나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정부의 말을 농민들과 영화인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수석은 "20여 년 동안의 과거 통상협상이 모두 FTA 준비였다"면서 "한국은 미국과 FTA를 자주적으로 추진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는 또 "협상준비는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부족하다"면서 "그렇다고 졸속이라고 비하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일본마저 미국과 FTA에 대해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 수석은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중앙> 공론조사 결과 "FTA 반대론이 더 구체적"
  
  이 수석뿐 아니라 대다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을 한미 FTA 반대론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념이 사실과 논리에 우선하게 되면 토론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FTA 반대론자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10일 보도한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약한' 사실과 논리를 앞세우는 건 오히려 FTA 찬성론자들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국제정책대학원과 <중앙일보>는 최근 수도권 대학.대학원생 178명을 대상으로 FTA와 관련해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즉 1차 설문조사를 한 뒤 FTA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얻게 한 상태에서 같은 설문 내용으로 2차 조사를 한 것이다.
  
  그러자 1차 조사에서 응답자의 65.7%(117명)가 한미 FTA 체결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으나, 전문가의 찬반 토론회를 본 뒤 이 응답은 41%(73명)로 줄었다. FTA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학생들(44명)은 입장 변경 이유에 대해 "찬성론은 원론적이었지만 반대론은 구체적이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FTA 반대는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무엇보다 정부는 FTA 반대론자의 대다수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생존' 때문에 FTA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백만 수석은 UR 협상에 대해 "농업의 경우 충격이 컸고 사후대책이 미흡했다"고 '아쉬움' 정도로 치부했지만 농민들에겐 이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였다. '쌀시장 개방'이 한미 간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얘기되고 있는 한미 FTA의 경우에도 이는 농민들에겐 절박한 문제다. 한미 FTA가 농업뿐 아니라 의료, 문화, 각종 서비스업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제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따라서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한미 FTA 반대 주장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한다. FTA 반대 주장에 대해 '폐쇄적 민족주의'니 '낡은 종속이론'이니 하며 매도할 일이 아니다. FTA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관련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단계에선 국민들이 월드컵 경기에서 태극전사를 응원하듯 한미 FTA 협상단을 성원할 수 없다. 월드컵과 달리 FTA는 국민경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수석 역시 지난 6일 "'축구 전쟁'의 경우 게임에서 지더라도 기분이 좀 나쁠 뿐이지만 '무역 전쟁'에서 지면 국민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고 지적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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