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반도는 논쟁에 빠져 있다. 강우석 감독의 신작 <한반도> 얘기다. 물론 실제 한반도도 그렇다. 영화 <한반도>나 실제 한반도나 일본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의 도발과 간섭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현실이 영화를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한반도>는 영화 자체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요즘 세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어쨌든 영화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말말말을 보거나 듣고 있으면 마치 좌파와 우파 후보가 끊임없이 엎치락 뒷치락을 했던 멕시코의 대선 같은 느낌을 준다. 지난 6월 26일 첫 언론시사 직후 <한반도>는 평단과 저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양상이었다. 이 영화를 두고 우파 민족주의 영화라는 평가에서부터 극단적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영화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평론가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우석 감독을 몰아 세웠다. 심지어 어떤 저널에서는 강우석 감독이 차기 문화관광부 장관 자리를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다라든가 현 정권의 요청에 따라 '친노 성향'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일부 저널은 비판의 도를 넘어 인신공격성 비난으로까지 이어지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 <한반도>의 운명은 다소 비관적이었다. 영화는 종종 입소문으로 '먹고 산다'. 그런데 그 입소문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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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프레시안무비 |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가 평론가들과 기자들의 손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서울극장을 시작으로 용산 CGV 전관을 빌려 대규모 일반시사회를 거치면서 <한반도>는 새롭게 부각되는 모습이었다. 영화 <한반도>가 내세우는 정치적 아젠다가 일반관객들은 '수용할만한 것' '공감의 폭이 넓은 것' 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시사회에서 <한반도>는 냉탕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반시사회에서 <한반도>는 열탕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것이 이길 것인가 뜨거운 것이 이길 것인가. 평단이 이길 것인가, 대중이 이길 것인가. <한반도>의 개봉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그때문이다.
.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평단과 대중의 대립각이 이처럼 뚜렷하게 세워지고 있다는 건 영화라고 하는 것, 혹은 영화가 해야 할 기능, 더 나아가 영화가 할 수 있는 것 등등 궁극적으로 영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때론 지식인의 산물이고 지식인의 향유물일 수 있다. 반대로 영화는 종종 부정형의 대중 모두가 균질하게 향유할 수 있는 대상이 돼야 한다. 영화는 또 종종 그 양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고 무엇보다 그 기준이 적용되는 현실의 상황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 영화를 원하는가, 어떠한 지적 기준을 갖고 있는 영화를 원하는가.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 <한반도>에 대한 가장 '적합한' 평가 작업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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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프레시안무비 |
영화 <한반도>에 대한 저널 평가 가운데에서 가장 균형있는 평가는 언론시사 직후 발행된 한겨레 신문 6월 27일자 기사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한반도>의 흥미로운 점은 일견 단순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일본이나 미국 등 외세를 바라보는 지배층 내부의 양분된 시각을 비교적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라면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입을 빌어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양면적 시각은 한국사회의 양면성과 분열성을 보여주는 풍부한 함의가 있다"며 "영화의 전반적 어조에 반하는 결말 장면 등 몇몇 혼란스러운 영화적 흐름은 강우석 감독이 대중을 읽는 것에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한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썼다.
. 영화에 대한 부적절한 오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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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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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과 그의 영화가 초기에 처한 곤경은 이 영화가 우파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특정한 이데올로기 보다는 우리의 분열된 내부에 더 치중해 있다. 안성기씨가 맡은 대통령과 문성근씨가 맡은 국무총리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갈등을 거듭한다. 만약 이 영화가 무조건적인 반일의 민족감정만을 앞세웠다면 문성근씨의 마지막 대사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일 수 있다. 영화에서 국무총리는 사표를 만류하는 대통령에게 "나는 이번 일로 나라의 운명이 30년 후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일갈한다. 국무총리는 비열하긴 해도 흔히 얘기하는 '악의 축'의 중심인물로 그려지진 않았다. 극 결말 부분에서 카메라로 스크린 전체를 잡고 화면 양쪽으로 갈라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건 우리 내부의 양분된 이데올로기, 국가 운명을 바라보는 갈라진 시선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일본과의 한판 승부를 소재로 내세우긴 해도 진짜 주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외부를 그린 것이 아니라 내부를 그린 것이며 단순한 우파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복잡해진 실제 현실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두고 우파 민족주의 영화라는 비판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 안성기씨가 맡은 극중 대통령이 현실의 대통령과 지나치게 닮았다는 부분 역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논란 중의 하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논란이라는 것이 영화적이거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고 '닮았다'는 것 그 자체에서 빚어진다는 데에 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마타도어의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극중 인물은 얼마든지 현실의 인물을 닮을 수 있다. 현실의 인물이 너무나 싫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이 따라서 싫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영화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얘기를 간소화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싫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싫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잘못된 것처럼 논리를 호도해서는 안된다. 그건 마치 대통령이 싫다고 대통령이 해내는 모든 정책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이치다. 그렇다면 현 부시 대통령 치하에서 만들어지는 <웨스트 윙>같은 시리즈 드라마는 만들어져는 안되는 것이다. <웨스트 윙>에서는 여전히 민주당 출신의 바틀렛이 대통령이다. 영화 <한반도>가 우파 민족주의로 비난받고 있으면서도 그 비난이 우파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저널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고, 또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한반도>는 초기 저널의 비평과는 상당히 다른 궤도를 가지고 일반관객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영화가 개봉 이후 관객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그때문이다. 평단이 이기느냐, 대중이 이기느냐. 그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입장에 서서 서로를 차분하게 되돌아 봐야 할 역지사지의 태도들이다. 평단과 저널은 대중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는지 대중은 대중대로 좀더 발전적인 세상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양쪽 모두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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