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소수민족의 자결권 보장, 말만으로는 안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소수민족의 자결권 보장, 말만으로는 안된다"

[아시아 인권 투어] <8> 웨스트 파푸아 : 피로 물든 모닝스타

냉전 후 분출되는 분리독립 요구

단일 민족국가는 신화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민족국가는 다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침탈과 점령, 강제 위에 세워졌고 침략자의 인위적인 줄긋기로 국경이 형성되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양분한 냉전 체제 하에서 이러한 인위성은 미국과 소련 두 강국의 경쟁 구도 속에서 잠시 억제될 수 있었다. 양 진영 모두에서 인위적 정권들은 그 민주성이나 전통성과 상관없이 냉전 구도를 따르고 추종하기만 하면 각각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내부의 도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강제점령으로 합병된 많은 지역에서 민족국가의 정체성과 정당성에 대한 도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리적 자결권을 둘러싼 분쟁은 단순히 문화적·종족적·언어적, 또는 종교적 정체성이나 차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빌미로 마구잡이 줄긋기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식민지에서의 약탈 이익이 냉전기에는 국가안보와 이념의 이름으로 조작되고 9.11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조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조작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 권력은 부당한 점령과 약탈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차이'를 내세워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억압과 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결권에 대한 요구는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해 다원적 정치·자치, 그리고 분리·독립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온갖 불법적 무력 탄압이 수반되고 있다. 1990년대에만 400만 명 이상이 자결권 분쟁을 둘러싸고 인종청소와 같은 집단 학살과 잔혹한 고문 등으로 죽어 나가야 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만 현재 10여 곳에서 분리적 자결권을 둘러싼 무력 분쟁으로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됐고 일상화된 잔혹한 폭력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카슈미르, 필리핀의 민다나오, 중국의 티벳, 스리랑카의 타밀, 태국의 남부 소수민족 등 아시아 곳곳에서 탄압과 차별,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결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 아체, 웨스트 파푸아로 이어지는 자결권 주장에 대해서 군경에 의한 초토화 작전으로 악명이 높다. 동티모르는 1999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기까지 24년 동안 대규모 학살과 탄압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죽어 나갔다. 이들 학살을 자행한 인도네시아 군부는 동티모르에서의 탄압 경험을 바탕으로 아체에서는 훨씬 더 잔인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경제적 착취와 총을 앞세운 인권 탄압을 하고 있으며 이젠 웨스트 파푸아 지역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강대국의 협잡으로 유린되는 자결권
▲ 아시아에서만 현재 10여 곳이 자결권을 둘러싼 무력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특히 동티모르, 아체, 웨스트 파푸아로 이어지는 자결권 주장에 대해 군경에 의한 초토화 작전으로 악명이 높다. ⓒ EPA

웨스트 파푸아는 18세기부터 2차대전 때까지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다가 1952년 유엔헌장 73조에 따라 탈식민지화 과정을 거쳐 1961년에 국기를 '모닝 스타'로 정하고 의회를 창설했다. 그러나 막대한 천연자원(금 매장량 세계 1위, 구리 매장량 3위)을 보유하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는 인도네시아, 미국, 네덜란드 등 열강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놓이게 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의 지원으로 1963년 인도네시아에 의해 강점된 뒤 6년 후엔 결국 합병됐다.

유엔은 뉴욕협정이라는 결의안을 통해 웨스트 파푸아를 유엔임시행정기구(UNTEA) 아래 두고 1969년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다수가 인도네시아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했고 이에 따라 유엔은 '결의안 2504'를 채택하고 웨스트 파푸아를 인도네시아의 합법적인 영토로 인정하게 됐다. 당시 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웨스트 파푸아인의 80-90%가 독립을 원한다고 보고한 바 있는데 국민투표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웨스트 파푸아의 광산에 커다란 이권을 노린 미국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작에 의한 것으로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선발한 1022명의 웨스트 파푸아인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되고 무력을 동원한 정부군의 협박 속에서 투표가 이루어진 결과다.

이와 같이 웨스트 파푸아는 자결권을 제대로 행사할 겨를도 없이 인도네시아에 합병됐다. 이로 인해 미국은 웨스트 파푸아의 총생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산에 대해 이권을 획득하게 됐고 인도네시아 군부는 미국의 광산회사를 보호해주는 대가로 매년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당한 합병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에 대해서 집단학살을 비롯한 잔혹한 탄압으로 맞서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이주 정책으로 인한 인도네시아 이주민과 웨스트 파푸아 원주민 간의 민간 유혈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웨스트 파푸아 인구의 10%에 이르는 10만 여 명이 이 과정에서 살해됐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뜨거워지자 2001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특별자치법을 제정했으나 이는 오히려 웨스트 파푸아를 분열시키고 인도네시아 군경을 증가시키는 빌미가 됐다. 정부군과 자유파푸아운동(OPM)과 같은 분리독립세력의 교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정부군과 경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원주민들에 대해 불법 처형, 체포, 고문, 강간을 일삼는 등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오히려 족쇄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가운데, 웨스트 파푸아 주민들은 구리와 황금, 천연가스, 원목 등 막대한 천연자원이 넘쳐나는데도 자연자원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송두리째 미국 광산회사에 빼앗기고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정부의 차별적 정책 속에서 상권의 대부분을 인도네시아 이주민에게 내주고 교육과 의료에서도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쓰나미가 휩쓸어 버린 아체에서 위수령을 거둔 후 더욱 많은 군사를 웨스트 파푸아로 집결시키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에서 무력 충돌이 있어야만 광산회사 보호의 명목으로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아체에서 반인륜적 군사작전을 지휘한 군경이 이젠 웨스트 파푸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등에 업고 보다 세련된 군사작전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확대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자결권 논의
▲ 시위를 벌이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인들을 힘으로 억누르는 인도네시아 군부. 국제법상 보장된 자결권이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PA

민족국가가 등장하면서 소수그룹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국제관계의 규범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지속적인 의제가 돼 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거버넌스 구조(협의체제)'를 형성하고 세계평화와 인권수호를 그 규범으로 삼게 됐지만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반대로 자결권의 기준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거대한 원주민 그룹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정부들도 자결권의 해석을 확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유엔헌장은 자결권을 포함하고 있지만 특정집단에게 주어진 집단적 권리라기보다는 그 의미를 국가와 개인에게 한정하고 있다. 대표적 인권협약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CPR)'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ESCR)' 역시 제1조 1항에서 "모든 사람은 자결권을 갖고 있으며 그 효력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개발을 자유롭게 추구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초기의 자결권은 민족국가의 안정화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기준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자결권에 대한 해석은 국제사회의 거버넌스의 변화와 함께 점점 확대되고 있다. 즉 집단적 권리의 개념으로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인권을 보다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 조건으로서 해석되면서 분리적 자결권이 합법화되고 있다. 유엔총회는 그 초기에는 결의안들을 통해 자결권은 독립투쟁을 하고 있는 식민지배 또는 신탁통치 하의 사람들에게만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어느 한편에 의한 일방적인 민족 분리나 영토 분할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에 새로운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일방에 의한 민족 분리나 영토 분할의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열게 됐다. 즉 "권리의 평등과 민중 자결의 원칙을 준수하고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차별 없이 영토 내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정부를 갖고 있는 국가"가 아닌 경우 민중의 자결에 의한 합법적 분리가 논의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98년에 이르러서는 캐나다의 대법원이 퀘벡주의 분리에 대한 판결에서 대규모 기본권 침해를 받고 있는 민중은 그들의 주권국가를 세울 권리를 갖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리고 유럽인권재판소도 상당기간 지속적이고 극악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나 정부에 자신들을 전혀 대표할 수 없는 민중들에게 자결권을 행사토록 하는 것이 새로운 합의로 보인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국제인권제도가 설립될 당시에는 자결의 원칙은 식민 지배 하의 사람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됐으나 점차 그 적용 범위가 제도적으로 인권을 침해 당하거나 정부에 대해서 자신들을 대표할 수 없는 집단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인도네시아의 식민지이면서 식민정부에 자신들을 대표할 수도 없고 또한 비민주적이고 착취적인 식민정부에 의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규모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웨스트 파푸아 원주민은 자결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국제법적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의 자결권은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조작 속에서 희생되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의 현실이 잘 설명하는 바와 같이 자결권은 다른 모든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전제로서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될 기본적 권리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문화와 전통 그리고 자원과 자산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길 희망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자결권 실현을 통해 그 평화를 이루고자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분리 독립이나 자치 등 자결권 실현을 통한 파푸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 문제에 대해서 국제법은 이미 현재의 인도네시아 정부의 주권에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국제사회는 평화를 수호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의무 이행을 위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