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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가족이 난데없이 경찰에 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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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가족이 난데없이 경찰에 끌려가"

[인권오름] 네팔, 여전히 묘연한 체포 실종자 4천여명 행방

네팔은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 웅장한 자연풍경에 가려진 폭압적인 통치와 빈곤, 불평등의 현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네팔에서는 경제적 평등과 입헌군주제의 철폐를 요구하는 마오주의자들과 정부군의 충돌이 1996년부터 10년간 진행돼 왔다.

갸넨드라 현 네팔 국왕은 2002년 5월 공산반군들의 반란을 진압할 명분으로 6개월간의 비상사태 연장을 희망한 자신의 요구를 하원이 거부하자 의회 해산을 선포했다.

지난해 2월 1일 갸넨드라 국왕은 반군의 무장투쟁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 했다는 이유로 내각마저 해산하고 향후 3년간 자신이 직접 국정을 관장하겠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주요 정부기관에는 군인들이 배치되었고 언론에 대해서는 사전검열 조치가 취해졌다.

갸넨드라 국왕의 이런 조치는 현 국왕의 퇴진과 사실상 왕정과 다름없는 입헌군주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세력의 투쟁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1월 19일 네팔의 7개 야당으로 구성된 국민행동협력위원회(CPMCC)는 "독재를 중단하라", "우리는 민주화를 원한다"며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전국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또 네팔 노동조합총연맹(GEFONT)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정부는 야당 지도자와 노동조합 활동가 등 107명을 연행하고 전화 등 외부로의 통신망을 차단했다. 정부는 국왕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1월 20일 카트만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지도자와 학생들을 연행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무리수는 국왕 퇴진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더욱 자극했다.

결국 갸넨드라 국왕이 손을 들었다. 올해 4월 25일 갸넨드라 국왕은 2002년에 해산된 하원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왕의 이날 발표는 네팔 국민들의 총궐기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야권이 주도하는 총파업이 시작한 지 19일 째, 정부의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지 5일 만의 발표였다. 이날 발표가 나오기 직전 반정부 시위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서자 국왕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명령해 최소 14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국왕이 굴복하면서 복원된 네팔 의회는 4월 28일 9개항으로 구성된 선언을 통해 국왕의 군 통수권과 면책특권, 왕위 계승자 지명권을 박탈하는 등 국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의회가 9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직접 통제하게 되고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남으로써, 지난 200여 년 동안 지속된 왕정이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와 무력 분쟁을 벌여 오다 이번 국민적 민주화운동을 통해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마오주의 반군세력도 이 선언을 환영했다.

하지만 평범한 네팔 국민이 느끼는 인권상황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갸넨드라 국왕이 폭정을 휘두르는 동안 국가기관에 강제로 끌려간 이들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6일에는 강제실종 희생자들이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실종자의 소재를 알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하며 실종자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네팔 노동조합총연맹 활동가 만주 타파 씨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기고한 글이다. 이 글에서 만주 타파 씨는 수천 명이 불법 체포돼 행방조차 알 수 없는 네팔의 비참한 인권 현실을 고발하는 한편 네팔 정부가 실종자들의 행방을 찾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편집자〉

보주푸르는 2년 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카트만두(네팔의 수도)로 떠났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기는커녕 탄코트 검문소에서 보안경찰에게 체포됐다. 가족들은 아직도 그의 생사 여부조차 모르고, 경찰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가족들이 그를 찾기 위해 사방 병영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사라지는 사람들
▲ 지난 6월 6일 열린 실종자 가족들의 집회. 피켓에는 "우리는 아이들을 원한다"고 쓰여 있다. ⓒ프레시안

친구 두루가 비스타, 카지 비스타와 함께 카트만두로 떠났던 보주푸르는 카트만두로 가는 길에 마오이스트라는 혐의로 보안경찰에게 체포됐다. 두 명의 친구들은 석방되었으나, 보주푸르만 석방되지 못했다. 두루가 비스타는 구속된 후 경찰들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몇 번이나 까무라쳤어요. 그들은 정말 너무나 잔혹했고, 가족들과 만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들이 보주푸르에게 마오이스트 조직에 가입했다고 자백하도록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보주푸르의 아버지는 아들의 상황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지난 해 네팔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갔으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를 돕지 못했다. "여러 차례 검문소에 가서 아들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은 매번 체포 사실조차 부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정부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생계를 책임져 왔던 아들의 실종으로 가족들은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냥 어떻게 됐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보주푸르처럼 페마누루 세르파 역시 지난해 8월부터 행방불명 상태다. 그의 형 파상도지에 따르면 평범한 시민이었던 세르파는 카트만두 다파시에 있는 친척집에서 한밤중에 경찰청에서 온 사람들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당시 55살의 세르파는 인도 군인이었다. 형 파상도지는 "경찰청과 관계기관을 수 차례 찾아가 봤지만, 모두들 세르파의 체포사실을 부인하더군요. 우리는 지금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지 못합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경찰을 압박하기 위해 인권단체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실종자 4천여 명, 군당국은 오리발
▲ 지난해 9월 25일 카트만두 인근에서 열린 입헌군주제 폐지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 모습. ⓒ프레시안

이렇듯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군경에 불법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그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네팔군대에 인권보장을 위한 기구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 기구가 제대로 활동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군대 내 인권기구 담당자인 쿠마르 샤르마는 위와 같은 사실을 부인한다. 그는 네팔 군대가 인권법을 존중하고, 보안경찰에게 체포된 사람들의 명단을 모두 공개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팔 국가인권위원회의 수디프 파탁은 '현재 행방불명된 사람이 약 4000여 명에 달하나 정부가 발표한 명단은 겨우 300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미 석방됐거나 보안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명단만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군대 내에 불법 구금되어 고문을 받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정부와 보안경찰이 정말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네팔 정부는 많은 국제 인도주의 조약에 가입하고 협정도 체결했지만, 무력분쟁 과정에서 이러한 조약과 협정들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강제실종의 숨겨진 구조

네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이 체포되고 있다. 정의에 호소할 길도 없다. 게다가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은 체포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사복경찰이 여자아이를 불법 체포하여 격리한 채 강간하고 고문한 사건들이 밝혀지기는 하지만, 이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 중 일부에 불과하며, 법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건들이 밝혀지더라도, 피해자의 가족이 달릿(카스트 제도에서의 최하층민) 신분이라든지 또는 그의 가족들이 강제이주를 당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런 사건들 자체가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반인도적 범죄를 경험하고 있다. 아이들은 강간당하고, 가족들은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다. 네팔에는 정의를 담보할 법이 없다. 법원과 정의의 대변인들은 있으나마나다. 보고된 사건 중 아주 극소수만 보상이 이루어질 뿐이다. 희생자건, 변호사건, 가족이건, 마을 주민이건, 그 누구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사건'이라는 것이 쌓이고 있을 뿐이다. 군 장교들이 개별 사건을 심리하기는 한다. 그리고 국내 주재 해외언론의 기자들이 기사가 될 만한 것들을 뽑아내 글을 쓴다. 그러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국제앰네스티나 다른 단체들의 '항의서한(긴급 성명)'뿐이다.

특히, 왕정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분쟁이 발생(1996년)하면서 불법체포와 구금, 비자발적 실종이 만연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총 622건의 비자발적 실종이 발생했다고 한다(국내 인권단체들은 1996년 이후 총 1264건의 강제실종이 발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역에서는 마오이스트에 의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납치되고 있다.

1998년과 1999년에 진행된 대규모 경찰 진압 작전 때부터 강제실종 문제는 본격화됐는데,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 기간 중에 56건의 강제실종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1년 11월 선포된 비상계엄과 군 병력 재배치 작전이 진행되면서 실종사건은 급격히 증가했고, 2003년 8월 정부와 마오이스트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이 무산되면서 이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실종 사건은 네팔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특히 수도 카트만두와 네팔 중심의 랄리푸르, 다딩, 다누샤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보안병력이 위 지역들에서 막강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강제실종 문제를 다루는 인권단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보고되고 있는 실종의 원인은 불법구금이다. 군·경은 마오이스트 혐의가 인정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체포한 후 외부와 격리된 경찰서나 군 병영으로 데리고 가 불법 구금한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이 가려진 채 고문을 당하고, 체포 후 불법구금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협박을 당하고 있다. 군 병영에 사람을 구금하는 것은 '군대는 민간인을 체포할 수 없고 체포한 후 24시간 이내 관계기관에게 넘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군사법에 위반된다. '테러와 파괴적 행위 금지법(Terrorist and Distruptive Activities Act 2002)에서 네팔 군대에 체포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나, 구금할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사람들을 체포한 이후 가족들에게 통지도 하지 않고 있다. 실종된 사람들을 보면, 농부와 교사, 학생, 상업인, 언론인, 정치인, 청소년, 여성 그리고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보고된 강제 실종 사건을 보면, 한 달 이상, 많게는 1년 이상 불법 구금된 후 석방된 경우들이다. 네팔 군·경은 사실상의 면책 특권 하에 이와 같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2006년 6월 6일, 강제실종 희생자 가족들이 카트만두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실종된 사람들의 소재를 파악해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그들은 총리에게, 실종자의 소재를 알 권리는 그들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잃어버린 가족의 소재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카트만두에서만도 약 200여개의 강제실종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1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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