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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네팔 민주화'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시아 인권 투어] <2> '세계의 지붕' 네팔 이야기

'세계의 지붕' 네팔에 드리운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태국과 부탄에 이어 필리핀, 스리랑카,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곳곳에서 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세계의 지붕' 네팔에서 그 열기가 강력하게 폭발했다. 네팔 의회가 국왕에 의해 해산된 지 4년 만인 지난 4월 28일 민주화를 갈망하며 실탄에 맞선 민중의 함성과 함께 복원되기에 이른 것이다.

복원의회는 9개항으로 구성된 선언을 통해 국왕의 군 통수권과 면책특권, 왕위 계승자 지명권을 박탈하는 등 국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이제 의회가 9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직접 통제하게 되고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남으로써, 지난 200여 년 동안 지속된 왕정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와 무력 분쟁을 벌여 오다 이번 국민적 민주화운동을 통해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마오주의 반군세력도 이 선언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 300여 명 민중의 생명을 대가로 민주헌법으로의 개정단계에까지 이르고도 지도부의 부패와 분열, 무능력으로 '미완의 민주화'에 그치고 만 네팔의 순탄하지 못한 근대사가 그랬듯이, 지금의 상황 역시 승리의 빛 이면에는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지금 네팔은 국왕의 퇴위와 의회의 복원이라는 1차적인 공동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7개 주요 정당연합체, 마오주의 반군, 그리고 민주화운동세력 간에 미래 네팔의 정치체제 구상을 둘러싼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일단 빛을 얻은 민주화가 그 동안 무력분쟁 속에서 유린당하고, 부패한 내각과 독재적인 왕정 간의 정권 다툼에서 탄압당해 온 민중의 인권 증진과 보호로 연결될 것인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더욱이 1990년 민주화운동 이후 등장해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이름을 떨친 정치 엘리트들이 이번 민주화운동을 통해 다시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민주화운동세력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 제헌의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 그림자를 더욱 짙게 한다. 네팔이 1990년과 같은 과오를 되풀이한다면, 이번 민중의 희생으로 이뤄진 민주화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엘리트 그룹에게 또 한 번 권력을 선물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의회가 복원되기까지

갸넨드라 국왕은 지난 2002년 반군과의 무력분쟁에서 나타난 정당의 무능력을 비난하며 내각을 해산하고 행정력을 장악한 뒤 전 총리를 다시 '허수아비 총리'로 임명했다. 2003년 반군과의 평화협상이 결렬되고 무력분쟁이 재개되면서 정부군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 속에서 한층 무장을 강화해 대응했다. 이러한 무력분쟁의 피해는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나타났다.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의 양대 세력에 의한 살해, 고문, 강간, 실종 등 온갖 종류의 인권 침해가 저질러지는 가운데, 헌법과 정당활동의 복원 등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안팎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 가냔드라 국왕의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데 대해 성난 네팔 사람들이 정부 관료의 차를 불태우고 있다. ⓒ EPA

그러나 갸넨드라 국왕은 오히려 내각이 반군의 무력저항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비난하면서 2005년 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를 아예 해산시킨 뒤 국왕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형식적이나마 네팔에 민주주의 체제를 가져왔던 1990년 헌법이 폐지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왕의 퇴진과 군주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거세졌다. 이와 함께 인권탄압에 대한 비난과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외부 압력이 강력해지자 국왕은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2006년 2월에 지방선거를 치르고 2007년 4월 이전에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하는 등 '민주주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왕의 친정체제를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는 연일 계속됐다. 또 야권은 선거를 보이콧하기로 했으며 마오주의자들은 선거를 방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갸넨드라 국왕은 허위적인 지방선거를 강행하기 위해 2006년 1월 20일 수도 카트만두에 다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까지 동원한 국왕의 '민주주의 로드맵'은 네팔과 이해관계가 얽힌 미국을 비롯해 인도·유럽연합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네팔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국왕의 민주주의 로드맵은 수 많은 민주 인사가 체포되고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사실상 군주제를 강화하고 갸넨드라 정권의 비민주적 정통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권과 마오주의 반군, 학생들과 일반시민들이 총 단결한 강력한 저항에 대해서 갸넨드라 국왕은 비상사태라는 명분 하에 실탄으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하고 심각한 폭력적 탄압을 자행했다. 잔혹한 탄압 속에서 군중의 분노는 억제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서게 되었고 사람들은 총파업을 벌였다. 19일간의 총파업에 국왕은 결국 권력 이양을 선언하며 민주화의 요구에 굴복함으로써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4년 여 간의 민중의 저항은 세계의 지붕에 민주주의의 봉화를 피워 올리게 됐다.
미완의 민주화 역사

192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6년 의회 설립
1948년 1차 헌법 제정
1951년 왕정 복원
1959년 2차 헌법제정 : 의회 민주주의 도입
1960년 헌법정지 : 의회와 내각을 해산
1962년 헌법개정 : 국왕의 통제권 하 평의회제도 도입 -> 민주화운동 촉발
1990년 민주화운동 정점 도달과 헌법개정 : 형식적 의회민주주의 도입. 국왕의 군사 최고지휘권 등 권력 유지.
1991년 총선 : 정당은 만연한 부정부패, 인권침해, 과거청산 등에 대해서 개혁 의지 박약. 이후 10여 차례의 정부해산과 왕정복원의 반복과 마오주의 반군과의 무력분쟁으로 정치적 불안정 지속

권위주의 정권과 무력 분쟁 속에 짓밟힌 인권

1996년 이후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 사이의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만 약 1만2000명 이상에 이르고, 2003년 8월 평화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만 3000여 명이 사망했다. 또 이 과정에서 수백만이 실종됐는데, 2003~2004년 동안 보고된 실종자 수의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였다. 또한 4만 여 명의 아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반군에 의해 납치돼 무력분쟁에 투입됐다.

갸넨드라 국왕이 등장한 이후 네팔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인권의 무덤'이라 불리는 비상사태 하에서 짓밟히고 신음했다. 민간인 마을에 대한 방화, 대량살상과 강간, 고문, 실종에 이르기까지 2005년 한 해 동안만 민간인을 포함해 1008명이 정부군에 의해 살해됐고 실종자의 수는 아직 정확한 파악조차 어렵다. 법원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군의 통제 하에 놓여 조정 당하고 있으며 언론은 철저한 통제 속에 외부의 접근이 금지됐다.

이처럼 민중의 인권은 마오주의 반군과의 무력분쟁과 그 분쟁을 빌미로 극도의 폭력적 권위를 내세운 정권에 의해 유린돼 왔다. 네팔의 무력분쟁은 마오주의 그룹의 소규모 정치적 저항이 기본권을 무시한 정부의 폭력적 진압과정에서 확산된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몇 차례의 평화 협상에도 결국 실패했다. 이는 부정부패로 얼룩지고 반민주적인 정권의 실패를 의미한다. 특히 갸넨드라 국왕의 등장 이후 빈번히 취해진 계엄령과 같은 비상조치는 겉으로는 마오주의 반군의 위협을 빌미로 내세우고 실제로는 실패한 정권의 개혁을 요구하는 민주화 세력과 인권운동가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불법적 인권탄압이 그 동안 무력분쟁의 정치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동안 계속된 총파업 민주화시위 동안에도 정부군에 의해 최소 14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천 명의 민중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민중의 희생은 다시 '국왕 퇴위와 의회 복원'이라는 승리의 빛 속에 가려지고 실탄에 맞선 수 많은 민주화운동세력은 소외된 채, 지난 10여 년 동안 민중의 인권을 탄압하고 방치해 온 정당과 마오주의 반군이 네팔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고 있다.
마오주의 반군
▲ 네팔의 마오주의 반군의 한 여성 대원의 모습. ⓒ EPA

마오주의자들은 원래 네팔 공산당의 일원으로 90년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으나, 1990년 헌법의 기초 과정에서 입헌군주제 대신에 공화정을 주장하면서 네팔 카스트의 상부계급으로 구성된 공산당과 결별하고 하부 카스트 계급을 주축으로 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게 됐다.

이들은 1995년 토지개혁·공화정 실시·인도와의 종속적 조약 폐지·사회주의적 경제개혁과 같은 '40개 요구사항'을 발표했으나, 정부는 이들을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보지 않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소탕작전을 벌이게 된다.

기본권을 무시한 네팔 정부의 초기 대응은 마오주의 그룹에 대한 지지 세력을 오히려 두텁게 하면서 애초의 소규모 저항을 전국적 규모의 저항으로 악화시켜 나갔다. 급기야 마오주의 그룹은 2001년 5월 서부 네팔에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반군 활동을 본격화했다.

9.11 사태가 발생하고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의 분위기 속에서 미국은 네팔 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네팔 정부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반군과 정부 간의 평화협상(2001년 11월)은 결렬됐고 대규모 민중 학살이라는 희생만을 가져왔다. 평화협상이 결렬된 후 네팔 총리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정을 중단했다. 그 뒤 정부와 반군은 평화협상과 결렬을 반복하면서 무력분쟁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인권과 평화의 빛으로

네팔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현 과도 정부에게 주어진 우선 과제는 지난 10여 년 간의 무력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제헌의회의 구성에서부터 헌법 개정, 그리고 총선을 치르기까지 철저하게 민주적 수순을 밟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치적 지향이 다양한 주요 7개 정당은 각각의 이해관계로 앞으로의 정치체제에 대해 명확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마오주의 반군이 지난달 잠정적으로 3개월의 휴전에 들어갔지만 이는 민주화의 추진을 전제로 한 제한적인 선언일 뿐이었다. 평화협상을 앞두고 반군은 몇 년 동안 구금되어 온 동료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반군의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마오주의 세금이라는 명목 하의 강탈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행히 7개 정당과 반군 모두 다가오는 평화협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지난 2001년과 2003년 평화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과도정부와 제헌의회 구성에 대한 반군의 요구를 현 내각과 의회가 수용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거시적으로는 평화협상의 성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 '세계의 지붕' 네팔이 모처럼 찾아온 '민주화의 기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빛을 볼 수 있을까? ⓒ EPA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붕'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게 느껴지는 것은 네팔의 민주화운동세력이 여전히 미약할 뿐 아니라 1990년대 의회민주주의의 실현에 실패하고 왕정복원을 수 차례 허용한 부패하고 무능한 당시의 지도부와 지금의 지도부가 같다는 데 있다. 90년 당시와 달라진 것은 마오주의 반군의 정치적 입지가 당시와는 달리 훨씬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네팔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 있어서, 특히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현 과도정부는 마오주의 반군을 흡수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민주화운동에서 공화정의 요구에까지 이른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고 대표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비록 민주화운동세력이 아직 미약하지만, 이들이 소외된 제헌의회는 1990년 미완의 민주화 역사가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있다.

지난달 아시아 전역에서 펼쳐진 시민사회의 연대 활동은 네팔 현지의 민주화운동에 승리의 빛을 더하였다. 이러한 연대는 비록 외부에 있지만, 이미 네팔 민주화운동세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네팔의 미래를 결정 짓는 역사적인 현 시점에서 아시아 시민사회의 관심과 참여는 다시 한번 네팔 민주화운동세력의 일부로서 세계지붕에 평화와 인권의 빛을 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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