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본격적인 판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응원 열기로 가득하던 광장은 휑하기만 하다. 서울 광화문 거리에 있는 온갖 월드컵 상징 조형물들은 이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2006년 월드컵을 놓아줄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 어차피 월드컵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 월드컵이 남긴 것을 차분히 돌아보려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월드컵 기간 내내 월드컵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발언하고, 그것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에 나섰던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모두 이제까지 월드컵에 대해 제기돼 온 비판에 동의했다. 하지만 월드컵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어떤 이는 좌담 도중 월드컵에 대한 화려한 배경지식을 풀어놓았다. 또 어떤 이는 축구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편 어떤 이는 '축구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관심도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상업적인 월드컵에 대해 문제제기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지반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그들. 그들이 풀어놓은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글로 옮겼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 실린 좌담 전문이다.<편집자>
월드컵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
용석 : 어렸을 때부터 월드컵을 정말 좋아했어요. 1998년 월드컵 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만날 거리에서 뛰어놀았어요.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완전히 무관심했고, 올해에는 문화연대와 함께 월드컵에 문제제기하는 캠페인을 했어요.
완 : 나도 월드컵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1990년 월드컵도 거의 다 봤어요.
용석 : 그 때가 언제였지?
완 : 초등학생 때였죠. 1986년 월드컵도 기억나요. 원래는 유로2000을 좋아했는데 당시엔 할 일이 없어서 모든 경기를 다 보며 전력분석표까지 그렸죠…. 하하하. 2002년 월드컵 때엔 군대에 갈까 말까 하던 중이었는데 티셔츠 장사를 했어요. ("돈 좀 벌었다면서요?") 허허. 그때는 지금처럼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사회 분위기가 달라서였을 수도 있고….
그런데 올해에는 적극적으로 월드컵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어요. '월드컵 기간 집나간 이성을 찾습니다'와 같은 캠페인 스티커도 붙이고 각 방송국의 월드컵 '도배' 방송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조직하기도 했죠.
꽃맘 : 2002년까지는 월드컵이라는 게 내 사고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붉은악마가 '난리를 치면서'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죠. 그 이전까지는 여성들이 월드컵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고 봐요.
재훈 : 축구를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어요. 태국 킹스컵, 박정희가 만든 한국의 박스컵 등 간혹 새벽에 축구를 하기도 했는데 그 때부터 잠을 안자고 볼 정도로 축구를 아주 좋아했어요.
경내 :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당시 국제민주연대에 있으면서 축구공 꿰매는 아동노동 관련 캠페인도 하지 않았어요?
재훈 : 그러면서 밤에는 월드컵 보고…. '이중적 자아' 외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꽃맘 :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한 번 해봤어요. 여자와 남자가 짝지어서 손잡고 하는 짝축구.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손에 이끌려서…. 진짜 재미 없었어요.
경내 : 난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두 번 해봤어요. 대학시절 농활 가서 마을 청년들과 축구를 했었는데 재미있었어요. 내 기억 속에 축구는 항상 북한과의 경기, 일본과의 경기처럼 국위 선양, 국력을 과시하는 장으로서의 경기들로만 드문드문 채워져 있어요.
재훈 : 3년 동안 조기축구를 했어요. 축구라는 운동 자체에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는 11명이 다 같이 하는데 발이 맞는다 싶은 순간이 있어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패스를 잘 해서 골로 연결되고 그러면 희열 같은 게 느껴지죠.
그런데 그 때 같이 축구를 했던 동네 형님들은 붉은악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었어요. "그거 다 미디어가 조장하는 거 아니냐, 우리는 아무도 안 알아줄 때도 축구장을 지켰다…." 이런 거죠.
완 :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자라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축구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죠. 2002년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했잖아요. 그런데 여성들은 축구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퇴행적으로 김남일의 터프한 모습 같은 것들에 더 열광한 거죠.
'무서운 월드컵', 실체를 파고들다
완 : 월드컵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세계화의 대표적 표상과도 같은 월드컵을 즐기는 과정에서 자본의 세계화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죠.
용석 : 맞아요. 월드컵은 자본의 세계화 양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모든 나라의 우수한 선수들은 다 유럽 구단에 가서 뛰어야 하고 잘 하는 나라도 다 유럽 국가들이고 다른 운동에 비해 유독 백인이 더 활약하는 것도 사실이고…. 월드컵은 특히 유럽-백인 중심적인 면이 있죠.
완 : 월드컵이 1998년 이후에 급팽창하게 된 이유는 그때부터 미국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 것 같아요.
경내 : 원래 월드컵이 유럽, 남미 중심인데 그야말로 '월드'컵이 되기 위해서 지역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고 다음 월드컵도 아프리카에서 하잖아요. 축구와 함께 자본이 전세계적 시장을 개척하면서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월드컵은 세계화의 한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속에서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철저히 공명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흡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상품과 월드컵을 조금 더 다르게 보게 만드는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재훈 :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월드컵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은 축구와는 별개의 것이라는 반론을 펴기도 하죠.
월드컵에서 두드러지는 성 차별, 백인 중심주의, 기독교 중심주의, 서구 중심의 세계관 등에 대해 세상이 원래 다 그렇다는 거예요. 축구가 그런 것들을 조장하고 더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세계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축구에 반영되는 것일 뿐이라는 식이죠.
용석 :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월드컵은 특히 심한 것 같아요. 효과적으로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퍼뜨리잖아요.
축구 잘 하는 나라들, 하나같이 진짜 나쁜 나라들 아니에요? 하지만 보는 순간에는 나쁘다는 게 잊혀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정부를 그렇게 싫어하다가도 축구경기를 볼 때엔 또 한국에 열광하게 되죠.
견제해야 할 국가가 친숙하고 착한 모습으로 다가와요. 굉장히 효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들에 대해 잊게 만들어요. 오히려 그것을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시키고 있죠. 그래서 월드컵이 무서워요.
꽃맘 : 국가라는 건 그 자체가 남성적이고 축구도 그렇고, 축구와 국가가 표상하는 것도 남성이에요. 남성으로 표상되는 축구에 여성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월드컵의 태생이나 이런 것들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 국가주의, 애국주의 등 남성적인 모습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반대하는 거예요.
어느 스포츠는 안 그렇겠냐마는 축구가 더 심하죠. 지금도 '어떻게 이 대화에 끼어들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축구나 월드컵 그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거죠.
경내 : 월드컵은 국가주의를 연습시키는 장이기도 하고 그 힘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월드컵은 단지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가 아니라 실제로는 4년 내내 준비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아닐까요.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기간을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좀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월드컵에 대해 발언하면 찍힌다?
경내 : 월드컵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단지 해석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고민이 돼요.
완 :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이 월드컵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월드컵이란 게 한국 사회에서 큰 규정력을 갖고 있는데도 왜 사회단체들은 대응을 하지 않는지, 그걸 분석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모두가 월드컵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건 아니래도.
재훈 : 한국에서는 전체주의가 가장 큰 문제 아닐까 싶어요. 월드컵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도 관심을 가질 것을 조장하고, 다른 목소리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고, 24시간 내내 미디어에서는 월드컵 이야기만 하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월드컵에 빠져들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한 대안을 내놓고 각자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완 : 월드컵이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상업자본의 마케팅 장이다…. 이런 것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모범적이고 추상적인 답을 내놓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 않을까요.
개인은 수없이 많은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원칙들만 갖고서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른 한편으로 운동단체들 역시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히기를 원하지 않는 곳도 있어서 입장 내놓기를 어려워 하고….
꽃맘 : 월드컵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지 실천적인 방법이 안 보여요. 어떠한 실천이 가능할까?
용석 : '월드컵은 이것이다'라고 하나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월드컵은 누구에겐 국가주의의 첨병이고 누구에겐 축제의 장이고 또 누군가에겐 거대한 시장일 수 있는데…. 월드컵에 대해 거대하게만 생각하기보다는 월드컵을 자기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거리응원과 붉은악마, 그 이면의 진실
경내 :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월드컵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아직까지 합의된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속에서 헷갈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 지금까지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요?
완 : '2002년을 살아서 건너오지 못한 운동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현상'을 지지하면서 '살아 건너오지 못한' 거죠. 문화연대 내에도 살아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화의 기점인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부족했기 때문에 붕 떠버린 것 같아요. 좀 더 세분화되고 자기 관점에 기반한 논쟁이 필요해요.
재훈 : 월드컵과 여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여성들 자체가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리응원을 보면 실제로 상당수가 여성들이죠. 제 어머니도 호나우지뉴 팬인데 호나우지뉴를 보며 "쟤 이빨 정말 귀엽지 않냐"는 식의 농담도 하세요. 하하하.
축구는 전쟁과 가장 유사한 형태인데 여성들이 어떻게 이런 영역에 대해 열광하고 젖어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져볼 만하겠죠.
꽃맘 : 여성들이 축구나 스포츠 전반에 대해서 접근하기 힘든 조건들이 있었죠. 사회화 과정도 그렇고….
2002년 이후 온 국민이 열광하는 상황에서 여성들도 열광하게 되었지만 여성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르게 봐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방송국에서는 응원할 때 예쁜 여자들만 앞에 내세워서 잘 보이게 하죠. 일종의 '섹스심벌'처럼.
오히려 여성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방식은 뭘까…. 이런 게 개발되어야 한다고 봐요.
완 : 실제로 이번 프랑스전 끝난 뒤 붉은악마들의 심각한 공격성이 드러나기도 했죠. 당시 서울 일부에서 '차 강간놀이'라는 게 유행했는데, 선동하는 사람이 '저 차 잡아라'라고 하면 군중들이 차 위에 올라가고 흔들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는 거죠. 또 성추행, 성폭력 사건도 많이 발생했고…. '훌리건과 붉은악마는 다르다'고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다른 게 없잖아요?
경내 : 2002년 당시 한신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김종엽 씨의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2002년에는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에게 도덕적 계몽이 끊임없이 이뤄지기도 했고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주최국 시민이 갖춰야 할 자세를 외부에 보여주는 게 시급했기 때문에 흔히 응원문화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이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었다는 거죠.
이제는 4년 만에 거리응원이 '아시아의 프라이드'가 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틈새들이 열리면서 일상에 존재했던 폭력성이 응원공간에서도 좀더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앞으로는 더 커지겠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조차 월드컵에 맞춰서 태극기 그리기 시키고 꼭지점 댄스 연습시키고 그러면서 어린이들에게 국가주의 학습이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교육과정에 대한 개입이 필요해요.
꽃맘 : 붉은악마들의 응원문화에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욕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할 수도, 여행을 할 수도, 외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거리응원이 억눌린 욕망의 분출구가 된 거죠.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속에 응원문화가 있었죠.
경내 : 맞아요. 하지만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뛰어나온 것이 남성과 동일한 욕구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성에게 거리는 위험한 곳, 사회적 성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스쳐지나가는 공간에 불과했었죠. 그런데 그 거리로 여성들이 나오는 건 하나의 시민으로서 시민성(시민됨의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열광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여성들이 실제 축구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재미'라는 것에 길들여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탄탄한 근육질의 남성들이 초스피드하게 치고 빠지는 경기가 주는 마력 같은 것…. 최고의 운동 엘리트들의 재간에 빠져들게 되고 거기에 몰입하게 되는 거죠.
그게 감성으로는 재미지만, 그 재미 속에 강요되고 정당화되는 질서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해요. 단지 국가주의,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더 능력있는 사람들을 뽑아다가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니까요.
더 많은 엘리트선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축구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식의 성과주의적인 욕망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 역시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용석 : 그런 성과주의적인 욕망은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이 축제같고 즐겁다면 무언가 하나에 그렇게 열광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재훈 : 축제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 있는 곳일수록 축제의 의미가 있죠.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처럼 말이죠.
축제가 일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잠시나마 일상의 문제들을 잊고 한번쯤은 즐기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겠죠. 그것을 월드컵이 제공해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문화연대의 이번 '월드컵 반대 캠페인' 활동이 정치적으로는 맞지만, 놀 때 너무 이성적으로 놀면 재미없지 않아요?
실제로 축제를 할 때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데 재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고 봐요. 너무나 엄격한 도덕적, 계몽적 잣대를 갖고 현상을 정답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래도 2002년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고 보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내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월드컵 반대운동'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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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 "월드컵에 이런 면도 있다", "월드컵 때문에 이런 사안들이 묻힌다" 등처럼 월드컵의 이면에 있는 것들에 대한 반대를 넘어 월드컵 자체에 대한 반대 운동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육식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고 채식이라는 실천을 통해 대량사육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재훈 : 나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옳은 것만 남은 무균실과 같은 사회를 바라지는 않아요. 월드컵과 축구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만 월드컵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갈등을 했죠. 축구를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까 축구를 이대로 봐도 될지….
완 : '월드컵 반대'와 같은 슬로건만으론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입장에 대해 물어봐요. 너는 월드컵에 반대하는 것이냐…. 반대냐 아니냐 하는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면을 알려내고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슬로건과 같은 입장으로써 조직되는 게 아니라 월드컵의 다양한 측면을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과의 일치를 통해 동의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용석 : 정치적인 구호로 월드컵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완 : 2006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영국의 경우는 공중파 방송 편성 비율을 경우에 따라 정부가 통제하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선 거의 하루 종일 월드컵 방송을 했는데 영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옥외광고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공공장소에서 광고를 안볼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거니까. 이런 요구를 담은 운동을 추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재훈 : 다음 월드컵 때는 거리응원뿐 아니라 월드컵을 둘러싼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월드컵에 반대하는 사람들,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아동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될 수 있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열리면 좋겠네요.
경내 : 소수자들은 월드컵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겠어요. 응원과정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그나마 올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응원 속에 온 국민이 하나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설득력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용석 : '월드컵과 병역거부'와 같은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네요.
경내 : 그러한 문제들이 사회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제기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다음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좌담 정리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박석진)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0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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