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여균동 |
출연 최덕문, 이성민, 민정기
제작,배급 오리영화사 |
등급 12세 관람가
시간 100분 | 2005년 |
상영관 씨네큐브 여균동 감독의 신작 <비단구두>는 중층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중견의 노련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외형적 얼개는 일단 분단과 실향민의 문제다. 한 치매노인이 있고, 이 노인에게는 조폭두목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아들이 어느 날 만드는 영화마다 족족 망해 딱한 상황에 처해 있는 영화감독(최덕문)을 불러 자신의 아버지를 개마고원에 모시고 간 것 같은 상황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몰려 마지못해 일을 시작한 이 영화감독은 그러나, 스탭들을 동원해 세트를 만들고 배우들로 하여금 마치 북한에 온 것처럼 연기를 시키는 과정에서 점점 더 일에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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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구두 Silk Shoes ⓒ프레시안무비 |
여균동의 영화는 이 두 가지, 그러니까 분단을 뛰어 넘으려는 한 노인과 거짓현실의 환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영화감독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얽힌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의 이 두가지 설정은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 맥이 맞닿아 있다. 분단이 고착화된 이 땅의 현실은 결국 영화작가들을 억누르는 억압기제다. 계급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은 결국 상업영화가 아니면 영화를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치매에 걸려 있다는 것 역시 이 영화에서 주의해서 봐야 하는 부분이다. 치매의 의식 속에서 북에 남겨 둔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 노인은 역설적으로나마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 스스로 유일하게 분단을 극복한 인물일 수 있다. 진짜 치매는 무엇인가? 진짜 거짓말은 무엇인가? 분단의 상황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인정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진짜 치매에 걸려 있는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비단구두>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영화속 영화만들기의 각종 해프닝을 통해 경쾌하고 발랄한 보폭으로 재미있게 풀어 나갔다. 저예산 예술영화 같지만 나름대로 상업성이 강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상업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2년 가까이 배급사를 찾지 못해 창고에서 지내야 했다. 이 영화가 상업성이 없다는 극장가의 판단은 그러나,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영화를 위해 동원된 연기자들은 극단 차이무 단원들이다. 어쨌든 이번 개봉도 간신히 이루어져서인지 아쉽게도 단관개봉에 그치고 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일부에서는 <간 큰 가족>과 비교하곤 했지만 그보다는 여균동 감독 스스로 자신의 전작 <세상밖으로>와 <죽이는 영화>를 변증법적으로 합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리뷰는 2005년 8월 20일에 작성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임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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