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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당선자에게 보내는 세가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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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당선자에게 보내는 세가지 제안

<데스크칼럼> 헌법준수ㆍ탕평인사ㆍ脫권위주의

"당선자가 숨만 쉬어도 기사다."

오늘 아침 만난 한 언론사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당선자. 그의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사감이 될 만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력이동, 새 권력의 창출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당선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이제 막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첫 활동을 시작한 단계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까지 시간은 없고 해야 할 일은 산적하기에 열흘이 꼭 짧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노 당선자는 열흘 사이에 많은 것을 보여줬다. 인수위 구성으로 인사의 첫 방향을 드러냈다. 민주당을 찾아 당정관계의 모형을 제시했다. 북핵문제, 정치개혁문제, 조흥은행문제 등 정책현안에 대한 기본시각을 밝혔다.

열흘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지켜보면서 몇 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3권분립의 기본대로 행정부-의회 관계 재정립 필요**

첫째 노 당선자는 당정 관계 혹은 여야 관계가 아닌 행정부-의회 관계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헌법정신, 3권분립이란 민주주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대통령은 집행권력을 갖는 행정부의 수반이다. 의회는 입법권력을 통해, 행정부에 대한 감시-견제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간 우리의 행정부-의회 관계는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로서 여당을 진두지휘했고, 여당은 항상 다수의석을 추구하면서 의회 전체를 '통법부'로 만들려 했다. 따라서 행정부-의회 관계는 사라지고, 여야 관계만 남았다. 대통령과 야당 총재가 만나는 소위 '영수회담'이 행정부-의회 관계를 대신하곤 했다.

이것은 헌법 위반이며, 3권분립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이 특정 정책을 지시하면 그것이 법률 제·개정 사안인지 아닌지조차 전혀 문제삼지 않고, 마치 그 정책이 금방 시행될 것처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풍토, 이 전체가 위헌이며 반(反)민주적 병폐다.

이제 노 당선자는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첫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란다. 집행권력을 쥔 행정부 수반으로서 입법권력을 가진 의회 전체를 존중하는 대통령 말이다. 여기서는 여당과 야당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당정분리 원칙 등은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이미 우리 정치권 전체가 합의한 바이다. 노 당선자도 약속했고, 실천하고 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당에게 국무총리를 맡겨 분권형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놓았다.

***국회와 야당당사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아직 확고한 의식이 부족한 듯하다. 노 당선자가 당선된 이후 민주당과 접촉한 것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당선자 사무실이 당사 안에 있으니 모든 일을 당사에서 처리한다. 당 행사 가운데 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했고,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선대위 당직자 연수에까지 참여했다. 이밖에 한화갑 대표와 따로 만났고, 선대위원 전원과 오찬회동, 김원기 정대철 조순형 정동영 의원 등과 따로 만찬을 가졌다. 공개된 일정만 이 정도니 비공개 일정까지 포함한다면 지난 열흘 동안 줄곧 민주당과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기간 야당 측과 접촉한 것은 낙선한 이회창 후보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은 것, 자민련 김종필 총재에게 '국정운영 협조'를 당부하는 전화를 건 것이 전부다.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승리했고, 아직 당선자 신분이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행정부-의회 관계를 최초로 바로잡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달라야 한다. 당선자 신분으로라도 의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찾았어야 옳다. 격에 안 맞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은 깨뜨려야 한다.

특히 노 당선자는 소수당 소속이다. 자신의 어떤 국정철학도 야당과의 협의 없이는 실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노 당선자의 집권 준비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집권 이후 청사진을 다수 야당과 협의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야당과의 협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인수위에 1백명의 실무진을 파견한다. 당 정책실무진 전체가 옮기는 꼴이다. 국민여론 수렴을 위해 '국민참여센터'까지 신설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야당과의 협의 얘기는 아직 한번도, 그 누구도 꺼낸 바 없다.

아직도 과거의 도식, 즉 정부와 여당간 관계를 뜻하는 '당정협조', 정부와 야당간 관계로 혼동되고 있는 '여야 관계', 이렇게 잘못된 이분법적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후보에서 당선자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부터 이미 의회를 떠난 행정부 인물이다. 자신이 뜻한 바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의회 전체를 공평히 상대해야 한다. 다수당을 더 많이, 아니 그렇게는 못한다면 적어도 소속당인 민주당과 똑같은 정도는 찾아야 한다.

이미 그렇게 하기에는 늦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라도 달라지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의회에 자주 나가고, 소속 당을 불문하고 관계되는 모든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을 직접 설득하면서 국정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편파시비 벗고, 인적 기반 확대할 길은 탕평인사뿐**

둘째 진정한 탕평인사를 펼쳐가기 바란다.

노 당선자가 보여준 인사는 아직 인수위 구성 뿐이다. 40-50대 개혁성향 학자가 절대 다수이며, 거의 모두 노 당선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고, 공약 작성에서부터 참여한 사람들로 짜여졌다.

'권력형'이 아닌 '실무형' 인수위이자, 취임을 위한 정책인수를 담당할 기구이기에 인수위원 면면만으로 노 당선자의 인사스타일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철저히 '아는 사람', '자기 사람' 위주로 짜여진 인수위 구성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물론 반론도 있다. 내각이라 할지라도 자기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 국정철학을 실천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하물며 인수위 단계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반론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노 당선자는 그렇게 상식적인 인사만으로는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지난 5년 지역감정은 약화되지 않았고, 그 주범은 편파인사라는 데 대다수가 동의한다. 또 노 당선자는 소수당 소속이며, 그 안에서도 독자적인 권력기반이 대단히 취약하다.

편파 내지 편중 시비를 다시 받지 말아야 하며, 부족한 인적 기반을 확대해 가야 한다.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타개해 갈 방안은 진정한 탕평인사 뿐이다.

***'내 사람' '남의 사람' 과감히 뛰어넘는 인재등용을**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DJ 정부는 JP와의 공조,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도전자의 존재로 인해 2중 3중으로 인재등용의 폭이 제한됐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민주당으로부터도 빚진 게 없으며, 정몽준도 스스로 떨어져 나갔고, 이회창의 정계은퇴로 벌써부터 걱정해야 할 도전자도 없다. 역대 그 누구보다 폭넓게 사람을 쓸 수 있는 상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고자 한다.

노 당선자 스스로가 여야를 뛰어넘는 정치개혁의 구상이 확고하다는 점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연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사람', '남의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철학과 성향, 능력면에서 합당하기만 한다면 비록 한나라당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감히 발탁해 중용하는 진정한 탕평인사를 기대한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노 당선자가 과감한 탕평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면 지역주의도, 기존의 대결일변도 여야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노 당선자가 후보 시절부터 여러차례 강조해 온 지역통합의 정치, 정책에 따른 정치권 재편의 첫 물꼬를 트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 해법을 내놓는 '지도자' 포기하라**

셋째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의 폭을 좁히고, 특히 탈권위주의, 반(反)부패에 집중하기를 기대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처럼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다. 대통령 자리가 뜻한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만능의 자리도 아니다. 의회의 견제를 받아야 하고, 특히 노 당선자는 다수 야당의 동의를 얻어내야만 한두 가지라도 개혁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취약한 처지다.

또한 진정한 탕평인사로 능력 있는 내각을 구성하고 나면 상당부분 그들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정책집행을 챙기고 관여한 결과 일을 제대로 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그렇다면 결국 대통령은 그 자신이 직접 실천해야 할 일이 많을 수 없다. 몇가지 핵심분야만을 직접 챙기고, 임기말까지 흔들림 없이 실천해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안착시켜 놓는 것이 중요하다.

노 당선자는 당선 이후 북핵문제와 대미관계, 경제정책 등에서는 안정감을 강조하는 행보를, 정치개혁 분야에 있어서는 과감한 개혁을 독려하는 행보를 펼쳐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매 사안마다 자신이 직접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방안을 내놓고 있다.

반미시위 자제 요구, 경제구조조정 기조 유지, 경기부양정책 불사용 방침, 조흥은행 매각 방침 확인, 군복무기간 단축의 조기 실현, 중대선거구제 논의 제기, 개헌론과 개헌시기 언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분야마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구상을 내놓다 보면 자칫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매 사안마다 대통령이 해법을 지시해서 실천하도록 하는 체제, 대통령이 '개혁 교사' 내지는 '지도자' 위치로 올라서는 체제의 함정 말이다.

***탈권위주의, 反부패 등 몇 대목에만 집중하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 정책사안에 대한 당선자의 방향제시가 자제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국정운영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그 시스템에 의해 정책이 집행되도록 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신 당선자는, 아니 취임후 대통령은 몇가지 특정분야, 특히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도 대통령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몇몇 분야에만 총력을 집중하길 기대한다.

우선 탈권위주의를 주문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 혼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권력을 벗어던지고 권위주의를 깨뜨릴 때 권력집중의 폐해는 저절로 극복된다. 권력분산, 상호견제와 감시,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 시작되는 단초가 바로 대통령 스스로의 과감한 탈권위주의다.

또한 반(反)부패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YS, DJ 두 정부의 말로는 권력부패에서 시작됐다. 국민이 간절히 정치개혁을 원하는 핵심이유도 바로 권력부패 근절 때문이다. 부패척결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혁신과 함께 이뤄질 큰 과제다. 하지만 대통령이 앞장서 스스로의 주변부터 철저히 감시하고 관리한다면 급진전을 이룰 수 있는 분야다.

***과감함·합리적 조정 안배하는 '현명한 대통령'**

노무현 당선자에게 바란다.

첫째 행정부-의회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서 처음으로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

둘째 '내 사람', '남의 사람'의 구분법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과감한 탕평인사를 기대한다.

셋째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줄이고, 특히 탈권위주의, 반(反)부패에 집중해주기를 당부한다.

노 당선자는 어찌 보면 역사상 가장 취약한 대통령으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임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과반수를 못 넘기는 득표를 했다. 소수당 소속이다. 정치권에 자신의 독자적 권력기반이 미약하다. 이 사회를 움직여 온 주류 집단 내에 이른바 '인맥'이 충분치 못하다. 바람 막을 '병풍'이 부족하단 뜻이다.

반대로 그의 당선은 가히 '정치혁명'이라 불리울 만큼 많은 변화를 상징한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변화, 더 많은 개혁을 원하는 국민적 여망이 뜨겁다.

이 여망에 떠밀려 가다보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 반대로 권력기반의 취약함을 탓하며 매사 신중해지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감하고 단호해야 할 대목과 신중하고 합리적이어야 할 대목을 엄격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는 철학과 이론을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단단한 철학과 이론적 기초에 입각해서 몇 가지만은 과감히 실천하고, 여타 분야는 합리적으로 조정해 가는 '현명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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