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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 공론장 역할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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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터넷 게시판, 공론장 역할 하고 있나?

소수가 여론주도, '민주적 공론장'과는 아직 멀어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제대로 공론화돼야 할 문제 대신 엉뚱한 쟁점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돼 왔다.

한동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에서 소위 '황빠'라고 불리는 이들이 보인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황빠'들은 중요한 쟁점은 외면한 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온갖 근거 없는 음모론에만 집착했다.

온라인 공간을 제대로 된 공론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졌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진행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적 체험'과 '공적 의제'를 매개하는 인터넷 게시판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5일 한국사회학회가 개최한 2006년 전기 사회학 대회에서 '공론장으로서 인터넷 게시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서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선술집이나 거실 텔레비전 앞에서 나누는 대화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논의 역시 생활 속에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형성되는 여론은 주로 공적 주제와 사적인 경험이 섞여 있을 때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인터넷 게시판이 민주적인 공론장 역할을 하기에 유리한 점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사적 체험과 사회의 공적 의제를 매개하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 교수가 살펴본 인터넷 게시판 문화의 현실은 이런 긍정적인 가능성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현실에만 주목해 인터넷 게시판을 외면해버리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민주적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소수가 여론을 주도하는 인터넷 게시판, '개방과 평등'은 요원

서 교수가 살펴본 인터넷 게시판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온라인 문화의 특징으로 알려진 '개방과 평등'의 미덕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소수의 참여자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서 교수가 네이버 게시판에서 진행된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분석한 것이다. 논의에 참여한 이들의 아이디가 점으로 표시되고, 상대의 글에 댓글을 단 경우에 아이디와 아이디가 화살표로 연결된다. 중심에 있는 그룹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집단이며, 이들이 논의의 방향을 이끌었다.
▲ 네이버 게시판에서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해 진행된 논의의 네트워크. ⓒ프레시안

서 교수는 이처럼 소수의 참여자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것을 막으려면 게시판에서 논의되는 주제가 다양하게 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게시판에서 다양한 쟁점이 뒤엉킨 채로 제기되면 다수의 소극적인 네티즌들은 참여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의 논의를 이끌어가는 소수의 적극적인 참여자들을 여러 유형으로 나눠 설명했다. 자신은 댓글을 쓰지 않지만 많은 댓글을 받는 카리스마 형, 반대로 댓글을 거의 받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글에 열심히 댓글을 다는 하이에나 형, 댓글을 적극적으로 주고받으며 여론을 이끄는 논의 주도형 등이 그것이다.
▲ ⓒ프레시안

카리스마 형과 하이에나 형, 논의주도 형이 골고루 분포한 사례로 황우석 사태 당시 천주교 정진석 대주교가 생명윤리를 이유로 인간 배아복제 연구를 비판했을 때 네이버에서 진행된 댓글 논쟁을 들 수 있다.

(황)은 인간 배아 복제 연구(황우석 연구) 지지 입장, (생)은 생명윤리 중시 입장

▲ ⓒ프레시안



"참여자 사이에 많은 글이 오가지만 생각의 교류는 잘 안 돼"

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 논의가 논의 참여자 간의 연결 정도에 비해 서로의 생각이 교류되는 정도는 약하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상호성의 밀도는 높지만 숙의성(deliberativeness)의 측면에서 볼 때는 대체로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이 제대로 된 공론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을 명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게시판 논의를 통해 무리하게 합의를 도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주장의 요점을 확인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한정지어야 불필요한 충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폐인'은 유한계급"…민주적 공론장 되기엔 한계 많아

그리고 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이 개방적인 공론의 장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하나는 디지털 정보격차다. 이는 컴퓨터 구매 비용 및 인터넷 접속 비용과 같은 경제적 측면과 그것을 활용할 기술적 지식의 유무에서 생기는 차이다.

또 하나는 교양의 수준과 인터넷 게시판에 통용되는 언어 숙달 정도의 차이에서 생기는 격차다. 서 교수는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디지털 폐인(인터넷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네티즌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속어)'의 경우 많은 시간을 인터넷 서핑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한 계급'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충분한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계층은 인터넷 게시판의 여론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런 격차가 시민사회를 파편화하고 개인 간의 유대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 교수는 역설적으로 이런 파편화에서 비롯되는 위기 역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민주적 공론장의 형성에서 해법을 찾았다. 인터넷의 확산을 통해 생성될 글로벌 시민사회가 새로운 유대를 낳은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서 교수의 작업이 인터넷을 통한 민주적 공론장의 형성이라는 이상에 다가서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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