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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새장 속에서 '시장'이라는 새가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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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계획'의 새장 속에서 '시장'이라는 새가 놀다"

'2006년 북한은 어디로?' 경제편〈10〉전문가 좌담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변하고 있다면,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7.1 경제개선조치를 비롯한 북한의 경제개혁 움직임 하나 하나를 둘러싸고 다양한 시각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변화가 결코 그런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 '2006년 북한은 어디로?' 경제편을 마무리하면서 마련된 전문가 좌담에 나온 인사들도 변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달 26일 본사 사무실에서 이뤄진 좌담에는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정광민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선임연구원, 유영구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7.1 조치의 내용과 그 이후 벌어지고 있는 북한에서의 변화 양상, 그리고 앞으로 북한 경제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전망에서 서로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논쟁을 벌였다.

권영경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탈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소련의 많은 지원을 받아 유지해 왔던 북한 경제가 소련이 사라짐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그러나 "당시의 고민은 체제 전반에 대한 변화 모색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7.1 조치 이후 북한의 시장화는 "생산요소, 최종 소비재, 수입 원자재 등 3면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사적 소유를 결코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는 없던 임대료와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이용권과 사용권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라며 변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또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계획경제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도 "이미 북한은 많은 부분에서 시장 기능을 도입해 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모조리 중앙집권적 명령 시스템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과거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얘기다. 그는 그런 면에서 7.1 조치에 대한 평가를 지금 내리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북중 경제협력의 강화에 대해서도 그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피력했다. 수치상으로 북중 교역은 늘어나고 있으나 그 숫자에는 중국의 무상지원도 상당한 양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의 시장 선점 등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정광민 박사는 다른 두 참석자와는 달리 북중간 경제협력의 강화가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시각을 펼쳤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40%에 달하는 수준으로 정상적인 관계를 벗어났다고 지적한 그는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북한이 중국 소비재의 시장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영구 이사장은 정 박사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북한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며 반박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를 뚫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고 있는 것일 뿐, 그렇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7.1 조치에 대해서도 "고난의 행군기에 급증했던 비공식적 경제활동의 결과를 일정 정도 추인하면서 제도화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다른 참석자들과 다소 다른 의견을 보였다.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전략의 모색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하게 벌어진 실질적인 변화를 뒤늦에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가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근거의 또 한 축으로 그는 아직까지 법제도의 측면에서 "개인의 생산수단 소유와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단계로 진전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개정된 형법에는 여전히 '비법적 상업활동'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으며 이에 대한 규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

정 박사는 또 북한의 개혁·개방의 역사는 20년이 넘었다며 "그러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면 경제 목표는 여전히 '먹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의 경제 정책에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그는 강조했다.

유영구 이사장은 현재 북한의 경제 변화의 양태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천윈(陳雲)이 내세운 '새장 경제 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장'이라는 새가 '계획'이라는 새장 안에서 놀고 있는 형국"이 바로 오늘 북한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시장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당분간 북한은 계획경제의 큰 틀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유 이사장의 의견은 권 교수와 일치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좌담의 전문이다. 좌담의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박인 : 남북관계가 중대기로에 있다고들 한다. <프레시안>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오늘 북한의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남한의 연구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을 넘어 일반 국민들도 제대로 알게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북한연구학회>와 공동으로 '2006년 북한은 어디로?'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로 북한 경제에 관해 9편의 전문가 글을 내보냈다. 오늘 이 자리는 9개의 글들이 개별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고자 마련했다.

최근 북한 경제가 변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번 좌담에서는 정말 북한 경제가 변하고 있는 것인지, 변하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변하고 있는 것인지를 우선 얘기해보자. 최근 5년 간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크게 세 가지로 짚어봤으면 한다. 우선 시장의 형성으로 대표되는 유통부문에서의 변화, 당·정·군 등 경제 관리 주체에서의의 변화, 그리고 주민생활의 변화 부분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중 경제교류 심화 문제와 남북경협도 짚어보자.

우리가 북한 경제 개혁에 관심을 갖는 데는 사실 소박한 이유도 있다. 북한 인민들이 배고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또 어찌 보면 다소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북한이 자력갱생을 해야 남한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7.1 조치, 적극적 변화전략인가? 현실적 변화의 추인인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단 북한 경제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2002년 7.1 경제개선조치가 북한의 본격적인 경제개혁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또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이같은 흐름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의 소지는 많은 것 같다. 일각에서는 7.1 조치는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2002년 7.1조치 이후 북한 경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

권영경 : 7.1 조치는 그 내용에서 보면 계획경제를 시장화·화폐화·분권화하는 북한식 경제개혁 조치였다. 경제학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데는 크게 보아 계획기구와 시장기구라는 두 가지 운용기구가 있다. 북한은 그동안 거의 100%에 가깝게 계획기구에 의해 경제가 운영돼 왔다. 그런데 7.1 조치로 시장조절기구를 도입함으로써 북한 경제에 여러 가지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개인경제의 활동 공간이 늘어나고 지방과 작은 경제단위를 중심으로 시장지향적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기초로 주민 생활 부분에서도 자신들이 가계 살림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광민 : 7.1 조치 이후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7.1 조치의 배경이 된 북한 경제의 변화가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1990년대는 북한이 소위 '고난의 행군기'라고 부르는 시기다. 그러나 사실상 이 시기는 '기근의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20만~30만, 최대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공식적인 배급 기능이 마비되면서 일반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필수품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이라는 것은 대단히 제한돼 있어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에 이 시기에 비공식적 시장이 족생하였던 것이다. 결국 쌀 가격을 기준으로 수 백 배의 가격인상을 단행했던 7.1 조치는 이미 일어났던 변화를 뒤늦게 추인했던 것일 뿐이다. 고난의 행군기에 급증했던 비공식적 경제활동이라는현실적 변화를 일정 정도 추인하면서 또 그것을 제도화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결국 7.1 조치는 북한이 이른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 집권적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수용하면서 나타난 것이지만, 비공식적인 여러 변화들을 모두 제도화해내지는 못했다. 특히 개인의 소유권과 영업 활동 등과 관련된 것은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영구 : 정 박사의 얘기는 장마당이나 농민시장과 같은 자연발생적인 시장과 중국의 동북3성에서 생필품이 밀려오는 등 많은 부분에서 북한 당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서 7.1 조치를 통해 시장 가격의 현실화를 하려고 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좀 다른 것 같다. 추인은 추인인데 또 한편으로 광범한 변화의 시작점이 아닐까? 특히 분권화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조선노동당에서 내각에 경제결정 권한을 많이 이양하고 내각 책임제를 강조하고 있다. 또 중앙 정부에서 쥐고 있던 부분들을 지방 단위로 이양하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공장과 기업소의 독립채산제를 강화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독립채산제 확대 조치에 대해 이미 1984년부터 실시한 조치라며 진부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는 기업의 자율성을 늘려간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그 해 정부가 할당한 생산량을 제외하고 남는 부분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업유보금 인정 및 성과급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2002년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간의 변화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으로 다소 부족함도 있다.
▲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 프레시안

권영경
: 1990년대 이후 탈냉전의 시대가 오면서 북한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체제를 이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우리식 사회주의'와 '자력갱생'으로 유지해 오던 북한 경제는 소련과 같은 중앙집권적 명령시스템에 의해 유지돼 왔다. 그리고 북한 경제는 자력갱생 경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소련과의 사회주의 우호성 교역, 즉 지원에 의해 유지돼 왔다. 구소련과의 경제관계가 북한의 총 재생산구조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까 연구해봤더니 약 30%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주요 기관 산업 중 110개 정도가 소련과의 경제협력 시스템 속에서 유지돼 온 것이다.

이 산업들의 유지를 위해 소련이 제공했던 혜택은 엄청났다. 단순히 원유 제공을 넘어 기술 협력과 산업 설비 대체, 원자재 제공 등의 역할을 소련이 했다. 그런 소련이 사라졌다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줬고 그 신호탄이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의 개설이었다. 북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고민은 체제 전반에 대한 변화 모색은 아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의 식량난 등 고난의 행군기는 자연스럽게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북한식 변화 전략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전 박사의 얘기처럼 이 시기에 당국이 손을 놓고 주민들이 스스로 살아가게 함으로써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등장했다. 이것이 너무 확산되다 보니 떠밀려서 개혁을 추진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변화 전략을 모색한 부분이 크다.

원자재·소비재·수입물자는 시장화, 노동·금융부문은 요원

박인규 : 7.1 조치의 특징으로 시장화와 분권화를 얘기했다. 이제는 실제로 만 4년이 지나는 동안 시장화와 분권화의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를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정 박사가 온주상인에 대한 글을 이번 기획에 쓰셨는데, 시장 형성이 실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정광민 : 북한에서는 전통적으로 농산물의 거래에만 국한된 시장을 허용해 왔고 공산품 거래는 수차에 걸쳐 봉쇄하려고 했다. 7.1 조치 이후에도 쌀 등의 매매를 금지하려 했다가 반발에 직면하면서 거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 7.1 조치를 하는 시점에서도 시장에 대한 입장이 명확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급격히 변한 게 2003년 내각 지시 24호나 27호 문건들이 나오면서부터다. 여기서 문제는 시장 활동의 주체는 누구이고 어떻게 확대됐는가, 유통과 생산이 어떻게 결합됐는가, 당국이 시장을 용인하면서 국가 재정의 정상화, 즉 국가 납입금 징수 등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는가이다.

협동단체나 국영기업소는 7.1조치 이전에도 시장활동과 관계를 맺어 왔었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상 개인의 경영권이 관철되는 변화가 나타났고 그야말로 비공식적인 소유권의 분화 과정이 광범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과연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 그것이 얼마나 구체화됐는지를 따진다면 아직까지 명시적으로 개인의 생산수단 소유와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단계로 진전되지는 못했다.

올해 있었던 11기 최고인민대표자회의에서는 국가 예산수입상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부동산 사용료 수입이 새롭게 언급됐고, 사회보험료 수입을 2배 이상으로 늘이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간 국영기업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재정 세입체계의 기능이 상당히 약화됐었는데 새로운 재원의 확보, 즉 시장 활동에 대한 과세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조세, 즉 세금과 관련한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을 두고 우리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이라고 말해 왔다. 이제 국가가 시장을 용인하면서 보조금을 철폐하고 사회보험, 의료, 주거 등 모든 부분에서 개인들의 부담은 늘어났다. 문제는 조세의 결정과 부담에 대한 시스템이 명확치 않아서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권영경 : 단순히 종합시장의 등장만을 시장화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간 북한경제는 중앙집권적인 명령경제체제였다. 중앙계획 당국이 각 공장의 생산능력과 여건을 파악해 필요한 원자재와 자본, 노동력을 조달해 주고 생산품도 모두 국가가 구매해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방식은 7.1 조치 이후 주요 산업에서나 유지하고 지방공장은 시장에 맡기는 식으로 풀어줬다. 지방공장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4,5급 기업소에서는 국가가 이제 과거 방식으로 역할을 못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필요한 원자재를 시장에서 조달해 생산하라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기업들은 이제 국가의 명령지표에 따라 생산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 계획을 세우고 시장의 동향도 파악하고 원자재도 조달하고 심지어 기업운영에 필요한 자본도 조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게 바로 생산요소 부문에서의 시장화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 10월 3일 담화문에서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 즉 기업간 원자재교류시장을 내오라고 언급했던 데서 나타난다. 김 위원장의 그 언급에 의해 생산 부문에 있어서의 시장적 조절기능이 도입됐다. 그 다음해 7.1조치가 나왔는데, 그 성공을 위해서는 생산물판매시장이 반드시 허용돼야 했다. 7.1 조치의 핵심은 독립채산제다. 기업들은 경영목표로 수익을 내 이윤 일부는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생산물판매시장이 허용돼야 한다. 그에 따라 종합시장이라는 소비시장을 불가피하게 도입했다.

다음으로 북한이 도입한 시장은 수입물자교류시장이다. 공장이나 기업소의 생산을 정상화하자니 북한 내부시장에는 원자재가 부족하다. 부족한 원자재들은 결국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중국과 합영 형태로 작년 6월부터 전국 5개 도시에 수입물자교류시장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는 현재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이라는 생산요소시장, 종합시장이라는 소비재시장, 해외원자재들을 구매할 수 있는 수입물자교류시장 등 3대시장이 존재하게 됐다. 이는 북한의 시장화가 생산요소, 최종 소비재, 수입원자재 등 3면으로 전개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봤을 때 마지막으로 필요한 시장은 노동·금융시장인데 북한 경제개혁 성격으로 볼 때 아직까지 허용되지 않고 있다.
▲ 유영구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 프레시안

유영구
: 원자재 조달과 관련해 예전에는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물자공급위원회가 계획을 수립해 원자재 공급 체계를 일관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돌아가니까 공장 기업소에서는 물자조달원이라는 직제를 만들어 원자재를 가져와야 할 공장에서 직접 할당을 받아 왔다. 전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물자조달원들의 활동은 북한 경제의 활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였는데 권 박사 말대로 원자재 시장을 도입하고, 국가 물자공급위원회를 포기하고, 계획당국은 국가 1급 기업소 같은 곳에 대해서만 개입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정말 중대한 변화다. 이제 생필품이나 원자재, 중간재를 종합시장이나 수입물자시장에서 사야 하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과거 북한에는 주문공급제로 공산품을 판매하는 국영상점, 8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퍼졌던 직매점(수매점), 장마당이나 농민시장 같은 자연발생적 시장 이렇게 3가지 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도심에서는 종합시장으로 통합되면서 판매주체인 상인들이 등장하고 장세를 내고 활동하는 경제주체가 나타났다. 10일장 형태의 지방 농민시장도 상설장화 됐고 장세를 낸다. 결국 전국적으로 어떤 시장이건 장세를 받는 형태로 다 바뀌면서 소비시장으로서의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

권영경 : 시장이 확산되고 일반화한 것이다. 예전에는 돈이 있어도 원하는 재화를 어디 가서 살 수 없었지만 이제는 돈만 있으며 살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건 엄청난 변화다.

유영구 : 적어도 2000년까지 북한의 경제는 그야말로 '부족의 경제'였다. 따라서 물자를 하나 갖고 있으면 가격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물자 중심의 경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에서 생필품이 상당히 광범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지방 산업공장에서 만드는 생필품이 실제로 종류가 늘어나고 질도 과거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정광민 : 구매력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게 일반적인 상황인지, 아니면 특수한 부분에서만 향상된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데 북한 주민 전체에게 일반화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노동자 평균임금인 2000-3000원을 받는데, 쌀 1킬로그램이 1300원 하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직업 외에 다른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과연 높은 구매력을 모두가 향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상품의 질이 향상됐다는데, 북한 자체의 산업집적을 바탕으로 북한의 생산 시설과 기술에 의한 것은 아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상품의 유입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유영구 : 구매력 향상이나 시장 활성화는 분명한데 실제 빈부격차,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지적해야 한다. 실제 소비층은 소수일 것이다. 그 소수는 결국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상인)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나 당 관료 등 일정하게 혜택을 보는 계층이 생필품을 받아 되팔면서 구매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건 90년대 자연발생적인 시장에서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권영경 : 하지만 단순히 일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주동포로 북한 전지역을 여행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해주 종합시장, 평양 통일거리종합시장 외에 다른 거리를 가봐도 상당한 정도의 가전제품이 전시되고 판매도 꽤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국경지대 주민들에게는 최근 비디오, DVD 구입이 유행이어서 20여 가구 중 1가구는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만 나머지 50% 중 20-30% 가까이는 구매력 있는 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외부에서는 북한에서 어떻게 돈벌이가 가능한가라고 묻지만 북한에 들어가는 중국상인들도 요즘 장사가 꽤 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 경제에서 암시장이 90년대 초반부터 엄청나게 성장했고, 그 영역에서 성장한 계층들의 구매력은 상당히 커졌고, 소비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유영구 : 지방간 편차도 고려해야할 것 같다. 도시 지역과 국경 지역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돼 있고 국경이 아니더라도 북부 대도시(청진, 함흥)도 활성화됐다. 그러나 내륙으로 들어오거나 양강도와 자강도의 일부 지역, 강원도 북부 쪽에서는 좀 떨어진다고 한다.

권영경 : 계층적으로 말하자면 고난의 행군에서 가장 타격 입은 계층이 도시 근로자들이었다. 식량생산의 주요 계층이고 대체식량의 조달이 유리한 농민계층에 비해 도시 근로자들이 기아에 의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런데 7.1 조치 이후에는 역전이 됐다. 오히려 도시근로자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변했다. 소비시장이 도시 중심으로 활성화되면서 시장을 근거지로 해서 2-3가지의 직업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고 부를 축적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7.1 조치의 타격을 받은 또 다른 계층으로는 국가 체제와 관련된 당·정 관료, 사무원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로 생활비, 즉 월급만 받아 생활해야 하는 계층들인데 교환경제와의 접근도가 떨어져 최근에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광민 : 기근 시기 가장 피해를 본 층은 지방 공업도시 노동자였다. 그러나 7.1 조치 이후 지방도시 근로자가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탄광 같은 전략 부분 노동자들이 7.1 조치에 의해서 상당히 차등적인 임금인상을 적용받았는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일반 근로자들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과거 없던 '임대료'도 생겨…이용권과 사용권에 대한 인정"

유영구 : 개인 소유에 대한 법제화는 아직 안 이뤄지고 있다. 1990년대 이뤄졌던 민법 개정에서는 생산 수단의 개인적 소유 부분은 부정하고 있으며 몇 가지 부분에서 낮은 수준의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는 흐름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경제 구조로 보면 생산 수단의 사유화는 불가능하며 임대 형식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재정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임대료 수입이나 보험료 등이 늘어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정광민 : 이미 잠재적으로 여러 가지 법제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어떤 식으로 법제도화 됐는지는 상당히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최근 개정한 형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개정된 형법에는 여전히 '비법적 상업활동'이라는 표현이 존재한다. '비법적'이라고 하지만 그 규정이 대단히 모호하며 재정당국은 비공식적인 시장활동에 대해서도 그에 상당하는 세금의 납부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재정 구조를 살펴보면 시장에서의 조세 수입이 점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헌법에서는 여전히 '세금 없는 나라'라고 규정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조세에 대한 인식이 거의 형성돼 있지 않아서 징세강화로 인해 새로운 딜레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경영이나 서비스 활동에 대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법적으로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비법적 상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형법에서 다양하게 규정돼 있다. 형법에 의해 규제하려 한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경제관계를 벗어나는 행위들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의 반영인 셈이다.

권영경 : 시장경제 기능을 도입하고 일부 개인의 경제활동을 허용해주면 개체 경제 공간이 생겨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부분을 공짜로 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조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고 재정개혁과 금융개혁이 반드시 필요해진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가장 미진한 부분이 재정개혁과 금융개혁 부문이다.

북한은 7.1 조치 이후 사실 '세금'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지만 개인 경제 활동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로서의 성격을 가진 '국가 납부금'이라는 것을 서비스 부문 경제단위에 새롭게 부과하고 있다. 국영기업소에 대해서는 '국가 기업 이득금'이라는 것을 걷고 있고 협동 농장과 개인 농장에는 '토지 사용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 밖의 국가 기관에 대한 사용요금도 다 받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북한이 지금 과도기적 단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결코 사적 소유를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변화가 없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없었던 임대료와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이용권과 사용권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이런 것들이 오랫동안 정착되다 보니 사유권화돼 거래되고 있다. 북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부분을 지나치게 두려워해 스스로 재정위기에 빠지게 하는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경제 활동은 점점 커져 가는데 사실상 아직 사용권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그와 관련된 세원 개발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영구 : 결국 임대료 형태의 세금제가 정착되고 나서 각종 거래행위에 대한 거래세 형태로까지 확대되어야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된다는 것 아니냐.

권영경 : 국가의 재정을 위해서는 수 십 가지의 세원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북한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하에서의 조세 형태를 시장조절 기능의 도입에 의해 새롭게 바꾸면서 아직 새로운 조세를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다. 조세의 종류가 5-6가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중국만 하더라도 1980년대 중반이 이미 이개세(利改稅)개혁이라는 조세 개혁을 통해 다양한 세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북한은 7.1 조치를 중국을 벤치마킹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아직 미진한 것은 아마도 이같은 개혁을 담당할 경제 관료가 부족하고 중국보다 체계적인 구도 속에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 북한경제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20-30% 정도"

박인규 : 지금까지 시장화·분권화에 대해 얘기해봤다. 시장화 자체를 분권화로 볼 수도 있겠다. 일반적으로 시장화라고 하면 단순히 시장이 많이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가격형성이나 자원배분 측면에서 시장의 조절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분권화의 측면에서 현재 시장이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 경제 전체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봐도 되는 것인가?

유영구 : 생필품의 유통공간으로서의 시장은 주민의 경제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북한이 최근 3개년 계획을 얘기하면서 계획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점을 어떻게 볼지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장과 계획의 삼투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 공장 기업소에는 시장 요소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북한 경제 전체에서 시장 요소의 비중은 30% 이하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의 군수산업체계, 즉 제2경제 부문과 일반 민간경제체계가 매우 깊숙하게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계획과 시장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과 계획의 삼투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인들의 옷이나 식량 등 소비 물자의 생산을 포함하는 군수품 생산은 북한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부분은 결코 계획경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권영경 : 중국의 사례를 얘기해보자. 1980년대 초반 경에 중국이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결합형태로 개혁을 추진했을 때, 이 단계를 '사회주의적 상품경제' 단계라고 불렀다. 당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공간이 농산물가격을 예로 들어 볼 경우 7:3 정도 비율로 존재했었는데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 5:5가 됐고, 1990년대에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의 70% 이상이 시장적 조절에 의해 유통되는 체계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중국과 비교해서 북한의 시장경제 비율을 측정하는 것은 좀 곤란한 측면이 있다. 7.1 조치 이후 북한은 오히려 선군시대의 경제건설 노선을 강조하고 있고 올해 들어서는 특히 국방산업을 선차로 놓고 농업과 경공업의 동시적 발전을 추구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얘기는 결국 국방산업 유지에 필요한 중공업은 계획경제 시스템 속에서 유지하고 나머지 주민 생활과 관련된 경공업·서비스·유통분야를 시장경제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평가하면 북한 경제의 시장경제 비중은 30%도 과하고 20% 정도 수준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정광민 : 사실 이같은 변화가 시장화이냐 계획시스템의 강화이냐는 오래된 논쟁이다. 북한에서 시장화라는 것은 소비재의 유통영역에서 현저한 현상인데 국가가 계획을 강조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계획 외의 생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북한 경제 시스템을 하나의 국민 경제로 보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내각 산하의 인민 경제, 시장과 관련된 영역, 당 산하의 경제, 군이 주도하는 경제 등이 각기 따로 돌아가고 있다. 이른바 '4중 경제 시스템'인 것이다. 북한의 '선군 시대 경제노선'이란 국방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방침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명백하게 재천명됐다. 북한의 국방 경제는 내각의 인민경제와는 분리돼 존재하고 있다.

유영구 :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노선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덩샤오핑(鄧小平)과 천윈(陳雲)이 경제노선을 놓고 맞붙었을 때 천윈이 내세운 것이 새장(鳥籠) 경제 이론이었다. 이는 '계획이라는 새장 안에서 시장이라는 새를 자유롭게 놀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천윈의 새장 경제 이론이 패배하고 시장사회주의로 급속히 나아갔으나 오늘 북한은 이 새장경제론에 상당히 가깝다.

앞서 7:3이라는 비율을 얘기했지만 사실 그것은 상징적인 얘기고 실제로는 시장이라는 새가 계획이라는 새장 안에서 놀고 있는 형국이다. 계획 중에서도 다중성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당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중요하게 보는 몇 가지 산업, 혹은 김일성 주석이 중시하는 산업에 물자가 우선적으로 배치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할 것이며 이런 현상은 시장경제적인 설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7.1조치 성패 단정 일러…당분간 계획경제 틀 안 벗어날것"

박인규 : 일각에서는 7.1 조치가 이미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있고 임시변통적 성격의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북한이 대담한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의 경제 개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북한 경제의 진로와 전망을 좀 짚어보자.

유영구 :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대체로 개혁개방으로 더욱 이동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 기대의 한 축은 7.1 조치보다 좀 진전된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 한 축은 개성, 금강산, 나진·선봉의 꼭지점 형태의 특구가 좀 더 늘어나고 강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같은 기대를 낳게 한 원인이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이다. 7.1 조치는 이미 진행된 변화를 현실화시킨 것이지만 여기서 더 개선조치는 내놓는다면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가 문제다. 결국 정세가 중요한 변수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변화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중국이 북한에 30억 달러를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외형적으로는 딱히 드러나는 것은 없다.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성과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올해 가을 쯤 경제정책 변화의 시그널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권영경 : 북한은 지금 과도기적 단계에 놓여 있다. 과도기적 단계를 놓고 성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은 많은 부분에서 시장 기능을 도입해 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모조리 중앙집권적 명령 시스템으로 경제 시스템을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북한은 오히려 7.1 조치를 더 확대하는 조치로써 2004년 1월 경제관리를 좀 더 분권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예를 들어 국영기업소의 관리에 있어서 7.1 조치에서는 기업이 얻은 이윤을 자체적으로 융통할 수 있는 권한을 줬지만 당시는 상한선이 있었다. 그런데 2004년 1월 그 상한선을 폐지했다.

대외경제 관련 조치들도 부단히 뜯어고치고 있다. 중국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간 북한에 투자한 외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전량 수출하도록 하고 국내시장에 접근을 금지해 왔는데 이것을 허용해줬다고 한다. 물론 북한이 7.1 조치를 더욱 확산하는 이런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관리하는 개혁을 분명히 의도하고 있다. 계획경제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계 내에서 시장화, 분권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도 북한 내각은 1월 26일 내각 전원회의에서 '경제관리를 혁명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을 표명하면서 모든 경제 정책은 내각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경제 일꾼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에 보다 진전된 경제개선 조치가 올해 4~5월 중 나올 것이라는 설이 난무했었는데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은 것을 보면 북한은 현재 내부 논쟁 중이 아닌가 생각된다. 7.1 조치 개혁을 하더라도 국방공업을 선차로 놓은 가운데 한다고 밝혔는데 중공업과 국방공업간의 관계 그리고 나머지 인민경제와의 관계 등 문제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북미간 관계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대외관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유영구 이사장은 가을쯤이라고 얘기했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고 북한 스스로 여러 환경들이 호전됐다고 판단하면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정광민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경제학 박사. ⓒ 프레시안

정광민
: 북한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시점을 1984년 합영법 제정으로 본다면 그 역사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먹는 문제가 주공전선으로 남아 있다. 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재 부족도 해결하지 못했다. 물론 그간에 있었던 변화의 유의미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 당장 이 단계에서 7.1 조치의 성공이나 실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석탄 등 선행부분을 중시해야 한다고 수십 년간 이야기 했는데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에 대한 의문이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면 경제 목표는 같고 여전히 '먹는 문제'가 문제로 남아 있다.

왜 이런가. 국내 시스템 개혁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국제관계에 착안해야 한다. 중국은 이미 70년대에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했다. 베트남 역시 2001년 무역협정을 맺으며 미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됐다. 베트남은 2004년 대미 무역 흑자가 39억 달러였다. 중국은 더 컸다. 이건 동아시아 사회주의 체제 이행에서는 역시 미국이 수출상품 시장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동아시아 사회주의 체제 이행에서 미국의 역할을 간과해서도 안 되고, 지금 같은 경색 국면이 지속돼서도 안 된다. 최근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미국과의 관계가 전면화, 정상화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북미 경제관계의 책임은 북한에만 있지 않다. 북한도 사회주의 체제 붕괴 후에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가기 위해 대단히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과연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 경제 시스템의 전환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했나에 대해 북한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는 문제가 주공전선으로 남아 있다면 무엇인가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미국·일본과의 경제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사활적인 과제라고 본다.

유영구 : 북한 경제는 국민경제의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내수경제의 토대가 매우 취약하고 원자재 부족도 심각해 대외 경제교류가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개혁개방 정책이 나온다면 경제특구나 개방 지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고, 결국 미국·일본의 대북 정책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 내부적으로 토론이 마무리됐을 것이다.

북중경제협력의 강화…중국의 '싹쓸이'인가, 일시적 현상인가

박인규 :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은 북중 경제관계, 즉 북한경제의 대중 예속 문제다. 바른FTA 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라는 곳에서는 심지어 북한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고 있기 때문에 남북경협을 통해 그걸 견제해야 하고 따라서 남북경협에 대한 미국의 양해를 얻기 위해 한미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까지 하는 등 북중 경제 밀착에 대한 우려의 말들이 많다.

권영경 : 북중관계에 대해서는 심각히 우려하는 시각과 과민반응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시각이 있다. 우선은 왜 북중 경제관계가 밀착됐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북중 경제 밀착화의 계기는 2004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이 중국을 방문한 후부터다. 그 이전까지 중국의 대북 정책은 중국의 경제발전 정책과 균형이 맞지 않아 '포용정책'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이후 포용정책으로 나아가면서 양국 경제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졌고 그러면서 중국의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북한 진출을 적극 허용했다. 또 대북 경제 투자나 교역을 총괄하는 기구까지 내각에 개설했다. 이는 한 마디로 북중간 관계가 새롭게 전략적 협력관계로 정립됨에 따른 것으로 본다.

북중 교역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2004년 북중 교역액은 13.8억불, 2005년 15.9억불로 조금 늘어났다. 그러나 수치는 늘어났지만 북한의 대중 수출은 줄었고 수입이 늘어난 거다. 이에 대해 북한의 시장화가 확대되고 주민들의 소비욕구가 분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산 소비재가 쏟아지며 나타나는 수입증대로 현상으로도 이야기 하지만, 북중 교역 관계는 밝혀지지 않은 게 너무나 많다. 그 수치에는 무상지원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따라서 북중 경제관계를 중국의 시장 선점, 지하자원 싹쓸이 같은 논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종합시장의 공산품 80%가 중국제라는 사실을 우려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전략과 정책은 중미간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종속이니 예속 같은 선정적인 표현은 지나치지 않은가 생각된다. 북미간 관계가 개선되고 북일간 관계도 정상화되면 언제든지 북중간 경제관계는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광민 : 북한의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거의 40%다. 이건 한 국가의 대외경제관계라는 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다. 더구나 무역관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북한은 주로 식량이나 에너지원, 그리고 기계류 등을 수입한다. 반대로 북한의 수출품은 수산물 같은 1차 상품 중심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무역이다. 이런 관계가 지속된다면 선정적인 표현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평양 제일백화점의 점포 1000개를 중국 온주상인에게 분양한다고 한다. 온주상인은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유통 네트워크를 갖고 있을 텐데, 이들이 결국 중국 상품을 유통을 통해 공급하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 소비재의 시장으로 변화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유영구 : 정 박사처럼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나는 견해를 달리한다. 북한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다. 광산개발과 대안유리공장 등 몇 개 부문에 중국이 진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소비시장 상품의 80%가 중국산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소비재 상품에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동인으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우호물자를 공급받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필품 외에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와있지 않다.

또 북한도 경제적으로 대외적인 출구를 가져야 하는데, 미국의 봉쇄로 뚫고 갈 여지가 별로 없어서 결국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와의 교류 확대 등을 꾀하기 위해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북한의 대외 경제 접촉면을 늘여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정광민 : 그런 생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같이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이행과 성장은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 시장의 확대 등 국제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이런 중요한 국제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북중 경제 밀착이 심화되고 장기화된다면, 자칫 중국의 변경경제와 유사한 형태로 포섭될 수 있다.

북한의 경제개혁 촉진 위한 남한의 역할은 무엇일까?

박인규 : 결국 북한이 처하고 있는 외교상의 고립을 풀어야 한다는 건데 그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끝으로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련해 남북경협이나 남한의 역할은 어떤 게 있을지 제안을 한다면?

유영구 : 간단히 말해 북한의 경제성장 잠재력을 키워주는 교류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은 1958년부터 10여년간 연간 20% 이상의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경험도 있기 때문에 지금도 고속성장에 대한 잠재력을 믿는 것 같다. 다만 정보기술혁명 시대인 지금 어떻게 고속성장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정보기술혁명은 속도와 다양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북한 당국으로서는 주민들에게 정보기술혁명 시대에 걸맞는 수준으로 정보를 개방해야 하는 것이 껄끄러운 일이다. 이게 북한의 성장잠재력에 방해가 되는 요소다.

또 성장잠재력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철도, 도로, 항만, 물류창고 등 산업인프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 분단 상황 때문에 안보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로 대신 철도를 발전시켰다거나 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끝으로 남한은 수출주도형 산업은 물론 정보기술산업, 생명공학, 환경산업, 관광산업 같은 부문에서 북한이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권영경 : 경협은 남과 북이 모두 원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북한식 개혁개방에는 성격과 방향이 분명 있다. 이걸 무시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북경협을 끌어갈 방법은 현재로서 없다. 북한식 개혁개방의 성격과 방향을 전제한 속에서 어떻게 하든 북한식 개혁개방이 성공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 경제와 산업경쟁력이 회복되는 방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북경제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방향이 모색이 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5대 경협을 제기하고 있는데, 남북 당국자간 공감대를 만들어서 북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같이 수립해 남북경협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경제성장 5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성장을 해 왔던 경험도 있고 이에 따라 남북경협기금을 쓴다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당장 외화벌이가 급선무라서 외화 가득 산업을 고려하는 경협파트가 있어야 한다. 또 북한의 초토화된 산업생산력을 회복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현재 논의되는 5대 산업 협력 부분이다. 또 장기적으로 몇십년 후에 이뤄질 통일을 생각했을 때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하고 나아가 동북아 경제협력 구도 속에서 필요한 경협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남북이 같이 북한 5개년 경제계획을 만든다는 게 현재로서는 어렵지만, 언젠가 북한도 충분히 호응할 거라고 본다.

정광민 : 역시 북한은 생산의 사회적 기반, 인프라 정비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개발지원의 체제가 잘 갖춰져야 한다. 남북경협이 주로 긴급한 식량 지원 중심인데, 인프라 개발에 대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둘째, 남북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통합적인 기업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자본이 84년부터 북한에 들어갔는데 성공한 게 많지 않다. 지금 당장 남북경협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질적인 기업관리 시스템을 융합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박인규 :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련해 권 박사와 유 이사장은 북한 지도부의 주체적인 의지를 강조한 반면 정 박사는 기존의 현실적 변화에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북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정치·외교적 고립과 관련해서도 그걸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아직은 약간씩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앞으로 북한경제의 현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개선방향과 관련해 더 많은 토론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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