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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장갑차 그리고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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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장갑차 그리고 대선

<데스크칼럼> '善惡 이분법'에 빠지진 말자

김두한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야인시대’가 선풍적인 인기다. 대중만화 같은 ‘신파적 영웅담’이기에 깊이 논의할 필요를 느끼진 않는다. 마침 시간 나면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런데 배울 점이 있다. 정정당당할 경우 적이라도 높이 존중하는 자세다.

일본 유도 최고수이자 경찰인 마루오까는 김두한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의형제를 맺자고 제안한다. 김두한 역시 흔쾌히 동조해 술 한잔에 형제가 된다.

야쿠자 두목 하야시는 자신의 부하가 간교한 술책으로 김두한을 궁지에 몰자 결투를 중단시킨다. 그리곤 김두한을 찾아가 자신이 졌다며 깨끗이 무릎을 꿇는다. 김두한 역시 하야시의 무사도 정신만은 분명히 인정한다.

말끝마다 ‘독립군 김좌진 장군의 아들’임을 강조하는 김두한이다. 그런데도 일본 경찰, 일본 야쿠자 두목을 인정하고 대접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일본인들 역시 김두한을 존중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위치와 논리적 입장 이전에 먼저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한마디로 정정당당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명쾌한 단 하나의 평가척도다. 그 척도에 맞으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드라마 속 세상이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분명한 진리와 철학이 있다.

***장갑차 운전병의 ‘가슴 아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장갑차가 그 여중생들을 재미삼아 데리고 놀았고, 바퀴에 깔린 학생들을 앞뒤로 여러번 고의로 짖이겼다”는 얘기였다.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 사무실에서 후배들에게 물었다. 분명히 그런 얘기가 떠돈다는 답이었다. 왜 그런 얘기가 나돌고, 누가 퍼뜨리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랬다면서”라며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했다.

엄청난 충격이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혈서를 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복잡하게 따지지 말자. 한미관계의 현주소, 반미운동과 반미정서의 역사적 흐름, 현재 대통령선거에 미치는 영향, 각자의 이념적 잣대와 평가기준 등등 이 문제는 사실 따져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따지지 말자. 이건 논리 이전에 인간에 대한 문제다.

그날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들이 고의로 학생들을 공격했고, 그것도 여러번 짖이겼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들을 보일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심 섞인 반(半)동조형, “터무니 없다”며 피식 웃고 마는 방조형, “도대체 그런 얘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누구냐”며 분개하는 형.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런 이야기가 떠 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무섭다. 우리사회가 인간에 대해 어떤 수준에서 대접하고 있는지, 그 허용척도의 폭이 소스라치게 두렵다.

이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노와 증오가 극도에 달해 그 상대방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긴 하다. 반드시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자들도 버젓이 우리 주변을 활보하며 끔찍한 범죄의 주인공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뉴스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기본 가치관이 이지러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이건 안된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상상하는 그 자체,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SOFA 개정 해야 하고, 평등한 한미관계 만들어야 하며, 이것을 위해 국민의 외침과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중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장갑차에 탔던 병사들, 그들의 ‘가슴 아픔’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힘이, 반미를 외치는 우리 국민의 힘이 거기까지 가 닿아야 한다.

***“다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대선 막판**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박빙의 승부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긴장의 도가 높아지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건 매번 그랬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봄부터 시작된 국민경선부터 시작해서 워낙 다이내믹한 변화가 벌어졌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게다가 1,2위를 다투는 후보들이 경력과 성향, 노선, 기반 등 모든 면에서 뚜렷이 대비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 점점 더 양쪽 모두 극단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정권교체’와 ‘새정치’가 격돌하더니 ‘안정’과 ‘혼란’이 부딪힌다. 공약 하나하나마다 충돌이다. 상대방이 내건 공약은 무조건 ‘허무맹랑하다’ ‘새빨간 거짓말이다’며 공격한다.

그 바탕에 너무도 뚜렷한 선.악의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큰 걱정이다.

이 후보는 노 후보가 불안하다고 한다. 혼란이 올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집권해야 안정적으로 나라를 끌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노 후보는 이 후보가 역사를 거꾸로 돌린다고 한다. 냉전과 독재의 과거회귀형이라 한다. 자신이 집권해야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사실은 같은 말이다. 변화는 불안을 동반하는 법이다. 안정은 변화에 비해 과거회귀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이 같은 얘기를 하면서도 사생결단이다. 나만 옳고 상대방은 절대 그르다는 단순명쾌한 이분법 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양김이 차례로 집권했다. 하지만 정치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나는 ‘선’(善)이요, 남은 ‘악’(惡)이라는 이분법 때문 아닌가?

지금 이-노 두 후보 역시 똑같은 선악 이분법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박빙의 접전이 지속되면서 온 국민에게 그러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만난 한 현역 의원에게서 “다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선거전을 직접 뛰고 있는 사람의 고백이었다.

“정신 좀 차려라”라고 말해 봐야 아무 소용 없을 듯하다. “선거는 사생결단의 전쟁이 아니라 축제여야 한다”고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 같다. 당선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러나 유권자들만이라도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을 벗어나자. 지금 양쪽이 주고받는 공방 모두 가만히 뜯어보면 서로 잘 논의해서 힘을 합쳐 이뤄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나만 되고, 상대방은 절대 안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경쟁이 지나쳐 증오가 되고, 증오가 쌓여 ‘인간’을 놓쳐 버릴까 두렵다. 이렇게 편을 갈라놔서야 선거 끝나고 어떻게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며칠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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