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 파문으로 인해 열흘 앞으로 다가온 5.31 지방선거는 정상 궤도를 이탈한 흐름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사건이 정치후진국에서나 발생할 법한 정치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라는 점에서 여야는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평가를 일체 삼가고 있으나,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 등 적지 않은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정치테러"
사건의 파장은 일단 한나라당이 제기한 경찰의 사건 축소ㆍ은폐 의혹과 이에 따른 이택순 경찰청장 해임 요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21일 긴급의원총회에서 "현장 정황이나 범인이 경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경찰이 초동수사부터 방향을 잡는 것이 매우 불투명하고 뭔가 석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특히 "경찰이 어제 술에 만취 상태라서 조사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발표했는데 바로 그 시점에 우리 당 의원들이 서대문서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범인은 전혀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사건이 발생한 20일 밤 이택순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직후 초동수사 브리핑에서 "용의자 2명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21일 한진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중간수사 브리핑에서는 흉기를 휘두른 지 모 씨는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또한 이번 일을 '우발적 사건'이 아닌 "계획적인 정치테러"로 규정하고 정치공세화 할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중앙당 발표 내용 외에 섣불리 정부여당이 배후에 있는 듯한 예단과 언행을 자제할 것"을 각급 선대본부에 지시했으나, 정작 지도부의 발언 수위는 대단히 높았다.
이 대표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야당 대표에게 정치적 위협을 가하려는 테러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철저히 생명을 노린 정치테러였다"고 주장했다. 흉기를 휘두른 지 씨가 사전에 오세훈 후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과 장소 등을 확인한 뒤 범행에 사용한 문구용 칼을 구입했으며, 지난해 12월에도 한나라당 집회에서 난동을 부린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에 따라 김학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규명대책위를 구성해 당 차원의 자체조사 나서기로 했으며, 박 대표가 피습을 당하던 현장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이번 사건을 적극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허탈한 우리당…"손 쓸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지방선거 전망이 밝지 않았던 열린우리당은 엎친데 덮친 격이 됐다. 공식적으로는 검경합동수사 수용 방침을 밝히는 등 조속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일부 당직자들로부터는 박 대표 피습 용의자 등 현장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들에 대해 경멸 섞인 비난이 터져나왔다.
우리당은 일단 "경찰이 현장에서 난동을 부린 박 씨는 동창회 참석 후 만취 상태에서 현장에 우연히 참석해 소란행위를 했다고 2가지 사건(피습사건과 난동사건)을 분리해서 발표했다"면서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진력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흉기를 휘두른) 지 씨가 당원이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뭣하고 참 답답하다"면서 "일반 사람들은 우리당 당원이 같이 공격한 것으로 생각할 텐데 참 방도가 없다"고 토로했다.
우 대변인은 "이재오 대표가 조직적이고 배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지 씨를 우리가 조직적으로 파견했거나 박 씨가 난동을 부리도록 우리가 사주했다는 말이냐"면서 "정치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박 대표의 피습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선동정치"라고 반박했다.
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정치테러' 공세를 적극 무마하며 '우발적인 피습사건'으로 사건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열흘 앞두고 초대형 악재가 터진 데 따른 곤혹감은 일반 당직자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 당직자는 "이러다가 대전도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체념 섞인 전망을 했다. 대전은 우리당의 광역단체장 후보가 힘겨운 1위를 유지하고 있는 2곳 중 하나.
특히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당은 역전의 기대를 걸고 있는 충청권 광역 및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의 결집도가 높아질 것을 크게 경계하는 눈치다. 우리당 후보가 당선권에서는 멀어져 있으나 제주도지사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의 역전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도 나왔다.
서울 등 수도권 선거에 대해서도 우리당 관계자들은 "선거가 이렇게 되니까 손 쓸 방법이 없어졌다"고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 결집해 전국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의 굳히기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여야 불문하고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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