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는 불운한 감독이다. 지금 한창 극장가에서 상영중인 <사생결단>을 만든 최호 감독 얘기다. <사생결단>은 개봉 첫주 전국 약 8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첫주 성적만으로는 전국 3백만 관객은 너끈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극장가 <사생결단> 천하는 일주일만에 막을 내려야만 했다. 바로 다음 주에 개봉된 <미션 임파서블 3>가 전국 극장가를 싹쓸이 했기 때문이다. 개봉 둘째 주인 5월 초에 황금의 연휴 3일간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생결단>의 2주째 관객수인 150만명은 이 영화가 한풀 기세가 꺾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만 이런 우연이 있었으면 최호 감독에게 '불운'따위의 단어는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생결단>만이 아니었다. 2002년에 개봉됐던 그의 두번째 작품 <후아유>때는 일주일 후에 한일 월드컵이 열렸었다. 한일 월드컵 때를 기억한다면 <후아유>가 어떤 후폭풍을 맞았을지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데뷔작인 <바이준>때는? 최호 감독은 차라리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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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은, 관객수나 흥행성적을 떠나, 올 상반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생결단>을 지지하고 있다. 뒤늦게, 최호 감독의 인터뷰를 싣는 건 그 때문이다.
- <후아유>도 참 좋은 작품이었다. "근데 왜 그때, 영화를 혹평했나?"
- 그러지 않았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서 모든 사람이 다 미워졌던가 보군. 어쨌든 이번 영화는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스탭 모두들, 특히 배우들 덕이다. 노력한 만큼 여한이 없는 영화다. 무엇보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 극장가에서도 이런 영화가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 사람들이 이 영화의 어떤 점을 좋아했다고 생각하나? "글쎄…마약 얘기고 범죄 얘기여서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얘기 그 자체를 하는 것 같아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누구나 다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종종 뭐가 옳은 것이고 뭐가 나쁜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아지는 법이다. 인생의 진실은 선과 악의 경계를 왔다갔다한다는 것…그런 느낌을 받아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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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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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필름 누아르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태도다. 전작인 <바이준>이나 <후아유>를 보면 당신이 누아르 계열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많이들 그렇게들 얘기한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그래서 영화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나 누아르를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만들기가 만만치 않아서여서 그렇지."
- 맞다. 누아르는 시나리오 구축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건 전개와 거기에 얽히는 인물들의 행동들이 워낙 복잡하니까. "그래서 시나리오 작업이 오래 걸렸다. 더 생생하게, 더 리얼하게 현실을 모사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채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특히 인물들 대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실제 형사들은 어떻게 얘기하는가 등등. 시나리오 최종본이 나오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왜 마약 얘기이고 왜 IMF때인가. "특별히 마약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부산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데 부산은, 안 그런 것 같지만, 마약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은 동네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의 세기가 하나같이 장난이 아니다. 드라마로 만들면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으고 조사하다 보니 IMF때에 벌어졌던 몇몇 실제 사건을 접하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당시로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 근데 그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그때의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맞다. 어쩌면 IMF때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의 세계가 가장 적극적으로 관통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물고 물리는 관계들,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별한 악당이란 게 있을까 싶다. 모두들 생존을 위해 악을 쓰며 살아갈 뿐이다."
- 이 영화의 형사 도경장과 마약범 상도처럼.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부터 80년대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의 복고풍은 의도적인 것인가. "홍콩 누아르도 홍콩 누아르지만…일본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70년대 영화에 더 가깝게 서있는 영화다. <배틀 로얄>을 만들었던 그 긴지 감독이다. 긴지 감독은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인물들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사생결단>을 만들면서 긴지 영화에서 조금 베꼈다.(웃음) 사실 알고보면 <사생결단>에는 베낀 장면이 꽤 있다. 예컨대 도경장이 말하는 '회전목마' 운운하는 얘기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어떤 영화에 대한 오마쥬다. 영화광들이라면 자신의 영화 공력을 시험해보면 좋을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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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 ⓒ프레시안무비 |
- 배우 추자현이 유독 눈에 띈다. "황정민과 류승범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틈바구니에서도 돋보이는 연기를 했으니까 그럴 거다. 강단이 있는 배우다. 시나리오만으로도 강도높은 노출신이 많았는데 전혀 꺼려 하지 않았다. 영화 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었는데 오디션 과정에서 눈에 확 들어왔다."
- 김희라씨의 캐스팅이 다소 모험적이었던 건 아니었나? "왜? 조금 몸이 불편하시니까? 난 어렸을 때부터 김희라 선생의 영화를 보면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절 김 선생의 그 카리스마란... 아마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거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애초부터 김희라 선생을 염두에 뒀다. 물론 건강이 걱정되긴 했다. 근데 실제로는 어땠는지 아는가.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더니 조용히 날 한구석으로 데려가시더니 내 걱정은 말고 당신 일이나 잘하라고 하더라."
- 어쨌든 어려운 시기에 흥행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좀더 빨리빨리 영화를 찍어야겠다. 그간 4년은 너무 길었다. "다음 작품은…계획은 있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생각이 없다. 아직 <사생결단>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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