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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윤이상에 들이댄 '이중잣대'를 치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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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윤이상에 들이댄 '이중잣대'를 치워야"

[기자의 눈] 금강산에서 생각하는 '과거 청산'

"정치 이데올로기는 길게 보면 활엽수처럼 계절에 따라 무성하고, 착색되고, 낙엽이 지는 것이지만, 민족은 창공처럼 엄숙하고 영원한 것이다."

분단 시대에 무성했던 정치 이데올로기는 윤이상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어린 시절 죽마고우의 소식이 궁금해 찾아갔던 북녘 땅에서의 며칠은 그의 남은 삶을 고달프게 했다. 분단으로 자신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 시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그를 '동백림 간첩단의 두목'으로 착색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1995년 베를린에서 이승에서의 삶을 다할 때까지 고향땅을 밟지 못하게 만들었던 정치 이데올로기는 낙엽으로 떨어졌다.

한 때 간첩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남한에서 연주조차 기피됐던 그의 음악이 29일 이제는 어엿이 '창공처럼 영원한 민족'의 땅으로 자리 잡은 금강산에서 남과 북 연주자들에 의해 울려 퍼진 것. 그가 생전에 남북한 정부에게 공식 제안했던 휴전선에서의 '민족합동음악축전'의 꿈이 삶을 마감한 지 11년 만에 이뤄진 감격스런 날이었다.

'민족을 빛낸 세계적 음악가'인 동시에 '동백림 간첩단의 핵심 인물'

윤이상. 루이제 린저가 '상처받은 용'이라고 칭했던 그의 이름을 세계 음악계에서 모르는 이는 없다. 윤이상 음악회가 열린 금강산에서 만난 북녘 사람들도 하나같이 "윤이상 선생을 잘 안다"고 했다. 한 안내원은 "윤이상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요만한 어린 꼬마들도 다 안다"며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물어본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민족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 북녘 사람들의 윤이상에 대한 평가다. 더욱이 그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 윤이상 음악회'의 2부 사회를 맡았던 최정화 씨의 말처럼 "나라의 음악 예술 발전과 음악으로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 위업에 기여한 통일애국운동가"로 북한에서 칭송받고 있다.
▲ 29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 윤이상 음악회'에 나온 북한 윤이상 관현악단. ⓒ프레시안

그러나 남쪽에서 금강산을 찾아온 관광객들의 대다수는 '윤이상'하면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의 핵심 인물"이 떠오른다고 했다. 음악회를 보러 온 남한 사람들은 '음악가로서의 윤이상'에 대해서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 휴전선 이남에서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의 핵심 인물'로 더 유명했다.

물론 이같은 인식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박정희 정권에 있다. 1967년 베를린에서 정말 '난데 없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사경을 몇 차례 헤매며 차가운 시멘트 방에서 '동백림 간첩단의 두목'으로 탈바꿈되었던 사건은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윤이상'이라는 이름에 '주홍글씨'를 붙여줬다.

세월이 한참 지나 그의 음악이 고국에서 활발히 연구되기는 해도 연주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런 까닭이다. 더욱이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그를 기리는 '윤이상 공원을 조성 계획'에 대해 "빨갱이의 이름을 단 공원을 통영 땅에 만들 수 없다"며 반대하는 일마저도 있었다.

세월은 변했지만…"명예회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 동안 남한 사회도 많이 변했다. 살아 생전에 "더 직접적으로 민족을 위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술가의 직업과 음악을 버리고 그 길로 가겠다"고 얘기했던 윤이상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으며,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세계 음악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윤이상 평화재단'이 지난해 공식 출범했으며 이 재단의 노력으로 봄을 맞아 찬연하게 빛나는 금강산 한 자락에서 남과 북이 함께 그의 이름을 걸고 '용의 부활'을 꿈꾸는 음악회를 가졌으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

더욱이 지난 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는 동백림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묵인 하에 억지로 만들어진 조작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여사는 28일 금강산 호텔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한 기자단과 만나 "과거사를 바로 잡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이번 정부의 태도는 대단히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수자 여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윤이상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 ⓒ프레시안

어떤 이들은 동백림 사건이 이미 조작 사건으로 판명된 마당에 무슨 명예회복이 더 필요하냐고 묻기도 한다. 더욱이 지난 1월 국정원 진실위는 민관합동 조사위원들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윤이상의 경우 이미 판결문에서 간첩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의견이 나온 바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수자 여사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간첩의 두목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해놓고 재판에서 아니었다고 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가 판결에 관심이 있는가. 이미 신문에 대서특필된 순간 사람들에게 윤이상 선생은 유학생들을 진두지휘한 '간첩단 두목'일 뿐이다."

이수자 여사는 '윤이상의 명예회복'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남한 정부도 선생의 이름과 작품을 전세계에 써먹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명예회복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말하자면 윤이상에 대해 한국 정부와 사회는 왜 여전히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냐는 항변이었다.

과거사 청산 위해 정부 당국의 실천적 노력 절실

이수자 여사는 기자 간담회 도중 독도를 놓고 일본과 긴장이 높아지자 노무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발표한 특별담화의 내용을 언급했다.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과 청산, 주권의 상호 존중이라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노무현 정부에서 동백림 사건에 대한 청산은 외면하고 있다는 한맺힌 비판이었다. 이 대목에도 한국 정부의 이중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윤이상은 고국으로 납치돼 온 지 2년 만인 1969년 그를 아꼈던 독일 등의 노력으로 법적으로는 형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말 그대로 '형의 집행이 정지'된 것이었지 재판 결과가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상태로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숨졌다. 윤이상의 가슴에 붙은 주홍 글씨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떨어져나가고 있으나 그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여전히 '온전한 명예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까닭이다.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금강산을 찾았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축하 만찬에서 "윤이상은 분단으로 고통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라며 "분단은 아직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보다 실천적 관용과 화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윤이상 평화재단 1주년 기념식이 열린 신계사의 탑 앞에 "화해와 관용으로 하나가 됩시다. 2006년 4월 29일 통일부 장관 이종석"이라는 문구를 기와에 자필로 써넣기도 했다.

일본을 향해 '과거사의 올바른 청산과 사죄'를 목소리 높이고 있는 대통령과 분단 시대의 극복을 위해 '실천적 관용과 화해의 노력'을 강조하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혹시 득이 될 것 같은 사안에만 핏대를 세우고 불편하면 그럴듯한 둔사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남의 과거사는 얘기하면서 자신의 과거사는 여전히 '미제(未濟)'로 남겨두는 이중성에 이제는 우리 당국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용서와 화해의 전제 조건은 국제폭력의 주체인 당국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이수자 여사가 '소원'이라고 밝힌 "남편의 넋이라도 온전히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 땅 통영을 찾게 되는 날"이 과연 그의 생전에 올 수 있을까? 그것은 "과거사의 온전한 청산"을 소리 높여 외치는 우리 정부의 언행일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금강산 윤이상 음악회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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