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 <시리아나>, <오만과 편견> 의미있는 성적

[박스오피스] 4월7일~4월9일 전국박스오피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현재 전국 극장가에 걸려 있는 영화가 모두 22편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는 10편이 채 되지 않는다. 상업성이 적은 작품이라든가, 지금 한창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작품들은 어느 '구석'에서 상영되는지 찾기가 힘이 든다. 예컨대 일본영화인 <나나>나 <스윙 걸즈> 같은 영화 혹은 <브이 포 벤데타>나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비록 10위권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현재까지 전국 5개관에서 장장 6주간 러닝되며 33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브라보. <브로크백 마운틴>의 성공은 우리 극장문화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지난 주말은 예상대로 이른 바 '엽기 멜로'라 불리는 <달콤, 살벌한 연인>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전국 54만명 수준. 하지만 스크린 수가 전국 300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만한 수치는 아니다. 아마도 이건, 영화 탓이라기 보다는 새로 개봉되는 영화가 무려 10편이나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엔 개봉되는 영화가 너무 많다. 관객들이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와 10위의 성적을 기록한 영화들이 눈에 띈다. 2위는 다중시점이라는 독특한 얘기 구조를 가진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이 차지했다. 다중시점이란, 영화 속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증언이 하나같이 다른 것을 말한다. 아이들 관객으로서는 다소 헷갈릴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부모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오랜만에 극장에 걸렸다는 점에 덥석 이 영화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작품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으니 입소문이 좋게 좋게 퍼져나갔을 것이고 첫주 개봉에 단박 35만 가까운 관객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들어 가장 '대박'을 터뜨린 애니메이션이 됐다. 10위를 차지한 <시리아나>는, 당초에는 영화가 너무 무겁고 진지하고 또 어려운 내용이어서 사람들이 고개를 휙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관객들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 영화는 개봉 2주째를 맞아 확실히 종영의 분위기, 그러니까 끝물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국 누계 관객수가 11만을 넘겼다는 것이 경이롭다. 적어도 11만명의 관객에게만큼은 지금의 세상이 어떤 폭탄 같은 문제를 안고 사는지가 전달됐다. 그 11만명이 언젠가는 22만명이 될 것이고, 110만명이 될 것이다. 영화가 하는 일 가운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것도 있다. <시리아나>는 바로 그런 영화다.

오만과 편견 ⓒ프레시안무비

아, 흥행성적이 경이로운 영화는 한편 더 있다. 지난 주말 흥행 4위를 기록한, 개봉 3주째의 <오만과 편견>이다. <오만과 편견>이 7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을 것이라고 확신한 유일한 사람은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UIP의 대표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배급의 선수답게, UIP의 대표는 <오만과 편견> 같은 문예영화가 이 엄혹한 상업주의 시대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이번 주는, 그리고 요즘의 박스오피스는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런 날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