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이 지난 7일 「다빈치 코드」의 표절논란과 관련된 재판에서 작가 댄 브라운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브라운과 출판사 랜덤 하우스, 그리고 영화사 소니 픽쳐스는 이날 평결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원고인 「성혈과 성배」의 저자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리가 이겼다면 5월 중순으로 예정돼있는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 빈치 코드>의 개봉 스케줄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던 소니 픽쳐스는 특히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기독교 교단 측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영화의 전세계 개봉에 맞춰 재판결과를 기다리며 한동안 미뤄놓았던 대응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기독교 교단에서는 <다빈치 코드> 상영 기간동안 예수 결혼설과 기독교 역사 속의 여성의 역할 등과 관련된 논쟁이 전세계적으로 불붙을 것으로 보고 다양한 강연회와 저서, DVD, TV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총반격을 가할 태세다. 일부 외신들은 <다빈치코드>가 올해 초 이슬람권을 분노케 했던 '무하마드(마호메트) 만평'과 유사한 파문을 기독계에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 한국 교단, 영화상영 반대 움직임 더 세 이같은 상황은 한국에서는 좀 더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최근 오는 5월 19일 전국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영화가 "신성을 모독하고 기독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교리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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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한기총은 현재 '다빈치코드 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난 7일 <다빈치 코드>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민형사상 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총이 영화 <다빈치 코드>에 대해 이처럼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속에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프랑스 메로빙거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는 가설이 나오고 있기 때문. 곧 역사적 사실은 물론 무엇보다 예수의 신성을 왜곡했다는 것이 이들이 영화의 상영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다. 한기총은 또 전 세계 기독교 단체들에게도 협조서신을 발송하여 자신들의 상영 반대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기총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영화계와 문화계는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2004년 개봉됐던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경우 영화내용이 반 유대적이라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교계의 적극적인 관람 분위기로 전국 250만 정도의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그린 <마더 테레사> 같은 영화 역시 기독교계와 가톨릭계의 '보이지 않는' 후원이 있었던 작품. 따라서 종교적 입장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영화상영을 지원하고 혹은 반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집단이기주의'의 모습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한결같은 중론이다. 영화는 영화로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개방사회가 가져가야 할 올바른 태도라는 것.
. 영화 개봉으로 소설 내용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돼 기독교 교단의 입장에서는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이 영화 하나만이 아니다. 영화 개봉에 맞춰 소설 「다빈치 코드」가 드디어 페이퍼백으로 미국에서 출간된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6000만 부가 팔려나간 이 소설이 저가 보급판의 출간을 계기로 다시 한번 거센 바람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권위있는 기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1700년 전인 기원 300년쯤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유다 복음」의 영문번역본을 최근 공개하는 동시에, TV 특집 다큐멘터리 방송과 전시회까지 마련하고 있어 정통 기독교 교단은 더욱더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다 복음」은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기존 성서와 달리, 유다가 예수의 부탁을 받고 기독교 사상의 핵심인 부활을 현실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신자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다야말로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따랐으며 기독교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유일한 제자가 되는 셈이다. 기독교계는 「유다 복음」의 공개에 대해 "이미 외경(外經)으로 판명난 것을 가지고 이제 와서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무시하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단에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박해와 홀로코스트까지 겪어야 했던 원죄로부터 드디어 해방될 수 있게 됐다"며 반색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를 계기로 기독교 역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 「유다 복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기독교 역사에 또다른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유대인들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것에 비춰볼 때, 영화계가 반대로 「유다 복음」을 기초로 예수의 죽음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를 제작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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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미국 스크랜턴대학 신학과의 에릭 플러머 교수는 최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빈치 코드」를 계기로 신자이건 비신자이건간에 기독교의 보다 깊은 진실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면서 "영화 개봉과 함께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 분명한 이런 욕구를 교단이 어떻게 잘 대응해서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근 자신이 「다빈치 코드」를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비신자는 물론 신자 청중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는 것. 플러머 교수는 <다빈치 코드>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와 소설 속에서 예수결혼설과 예수 직계가족 생존설 등과 관련해 제시되는 각종 사례와 증거들에 관해 교단이 '역사적 정확성'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즉, 영화를 계기로 기독교 역사 자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교단이 선교의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플러머 교수는 종교학자들이 최근 「다빈치 코드」의 허구를 파헤치는 저서들을 경쟁적으로 내고 있는 것과 달리, 곧 「다빈치 코드」가 불러일으킨 대중적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저서를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미국 가톨릭주교회는 영화 개봉에 대비해 웹사이트(www.jesusdecoded.com)를 만들었으며, 영화 상영기간 중 <지저스 디코디드>란 다큐멘터리를 NBC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할 예정이다. 소설에서 기독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하는 극단적 가톨릭 조직으로 등장하는 오푸스데이 측은 홈페이지(www.opusdei.org)에 게재한 성명에서 "우리는 논쟁할 마음도 없으며 어떤 보이콧이나 그와 비슷한 행동도 없을 것"이라면서 "소니 영화사가 문화에 관해 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아울러 그 자신의 존경스런 평판을 영예롭게 지키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가톨릭교단뿐만 아니라 미국 개신교단도 빌리 그래이엄 목사 등이 참여해 다빈치코드 바람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가하면 소니는 다빈치코드 토론사이트(www.thedavincidialogue.com)를 통해 토론유도와 동시에 홍보효과까지 올리고 있다. 한편 표절논란을 훌훌 벗어던지게 된 댄 브라운은 새 소설로 비밀결사단체인 프리메이슨과 템플기사단을 소재로 한 「솔로몬의 열쇠」를 곧 출간할 예정이어서, 영화계의 판권확보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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