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최대 패자(敗者)는 미국이다. 미국은 충격적인 4강 탈락으로 야구 종가의 자존심도 잃었고, 대회 진행 방식과 심판의 오심 문제 등 여러가지 면에서 세계 야구계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미국이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내세운 캐치 프레이즈는 '야구의 국제화'였다. 사상 최초로 각국의 프로야구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계 야구시장을 활성화해 미국의 상품인 메이저리그를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에 내다 팔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공정성을 외면한 채 힘의 논리를 앞세워 WBC 대회를 떡 주무르듯 하다보니 대회 기간을 전후해 다른 참가국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이 대회 참가국의 배당금 문제를 걸고 넘어지자 미국은 "일본이 불참해도 대회를 강행하겠다"고 맞불을 놓기도 했다.
미국은 쿠바와도 첨예한 대립을 해야 했다. 미국 재무부는 "경제제재 조치가 내려진 쿠바가 WBC에 참가해 배당금을 받는 것은 모순이다"라며 쿠바의 대회 참가를 불허했다. 내심 야구로 미국의 콧대를 꺾고 싶었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바보로 몰아세웠다. 카리브해의 이웃 나라인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이 정치적 이유로 쿠바의 대회 참가를 막으면 우리도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며 미국과 쿠바의 신경전을 더욱 뜨겁게 했다.
이같은 살얼음판은 WBC 대회가 시작된 뒤에도 계속됐다. 미국이 '막가파'식 대회운영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인 심판의 두 차례 오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결승점을 도둑 맞았다. 8회초 3대3 상황에서 일본은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좌익수가 공을 잡기 전에 일본 주자가 3루에서 먼저 발을 뗐다는 이유로 아웃이 선언됐던 것. 일본은 명백한 오심으로 미국에 패했다.
미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도 오심은 또 나왔다. 멕시코 선수가 친 공은 우익수 쪽 노란색 폴대를 맞고 경기장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공이 펜스를 맞고 나왔다"며 2루타를 선언했다. 멕시코 선수는 TV 화면에 (폴대에 맞아) 아직 노란색 흔적이 남아 있는 공을 보이며 무언의 항의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오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멕시코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오심에 울었던 일본은 멕시코의 승리로 기적적인 4강 진출을 이뤘다.
이해할 수 없기는 대진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WBC 대회에서도 처음에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관행'에 따라 2라운드의 각조 1,2위 팀들이 크로스로 맞붙는 지극히 정상적인 준결승 대진 방식이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같은 대진 방식의 변경을 위한 정상적인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대회 시작 뒤에야 각조 1,2위 팀들이 준경승을 치른다는, 기상천외한 준결승 대진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엿 장수 맘대로'의 행태였다.
이같은 '대진표 파행'의 속셈은 어렵지 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일본, 멕시코, 한국과 같은 1조에 속했던 미국이 2조에 포함된 중남미 야구 강국과의 준결승 대결을 피하기 위해 만든 코메디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이 만든 바로 이 '엉터리 대진표'에 한국이 희생양이 됐다. 이미 두 번이나 일본을 이겼지만 준결승에서 다시 일본과 경기를 펼쳐야 했던 부담감 탓인지,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고배를 마셨다.
미국이 4강에 탈락한 결정적 이유는 선수들의 의지 박약에서 찾을 수 있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은 채 상대 팀에 대한 정확한 분석도 없이 자만했던 미국은 경기력에서도 야구 팬들에게 실망감만을 안겨줬을 뿐이다.
19일(한국시간) 결승에 안착한 쿠바의 좌익수 프레데릭 세페다는 WBC를 통해 '잿밥'에만 관심을 가졌던 미국 야구계에 비수를 꽂았다. "쿠바는 혁명적인 팀이다. 야구는 선수의 몸값으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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