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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뮤지컬, 정치적으로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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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탈북자 뮤지컬, 정치적으로 휘둘린다

[특집] 〈요덕 스토리〉와 탈북자 출신 감독 정성산에 쏠리는 관심의 진실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은 여느 뮤지컬과는 달랐다. 프레스 리허설이 있던 3월 14일 저녁, 공연장인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국내 언론보다 CNN과 BBC, AFN, 로이터 등 외신들과 각 신문사 정치부 기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요덕 스토리>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중 한곳인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 수감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다룬 뮤지컬. 작가 겸 연출가인 정성산 감독 역시 바로 탈북자 출신이다. <요덕 스토리>가 여느 뮤지컬과 달리 연극외적인 관심이 집중됐던 건 그 때문이다. 문제는 정성산이 개인적 경험에 따른 진실성 여부를 떠나 그의 이번 이야기는 지나치게 보수언론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것. 북한 문제에 대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요덕 스토리>에 대한 논란, 이견이 생기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요덕 스토리>의 작가 겸 연출자 정성산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얘기한 대로 정성산 감독은 탈북자다. 원래는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이다. 그는 평양연극영화대학을 나왔고 러시아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를 나온 재원이었다. 하지만 남한 방송을 들었다는 죄목으로 황해도 사리원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인생이 급전직하 했으며 1995년 극적으로 탈출, 남한으로 넘어 온 그의 인생유전은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머리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과부촌'에서 호객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온갖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꿈을 꺾지 않았던 그는 동국대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영화에서 각색을 맡는 등 영화감독 데뷔를 꾸준히 준비해 왔다. 2004년에는 북한에는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 <빨간 산타들>의 촬영을 마쳤지만 제작비 문제로 후반작업을 못해 오다 올 6월 경에나 개봉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정성산은 왜 갑자기 영화에서 뮤지컬로 외도를 결심한 것일까? . 북한의 인권 실태를 다루다? <요덕 스토리>는 원래 정성산 감독이 사리원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수용소에서 돌에 맞아 사망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영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정 감독은 방향을 틀었다. 영화만큼 좋아하던 뮤지컬로 만들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투자자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투자사들이 난색을 표했다. 30개의 투자사에 기획서를 보냈으나 제작비 조달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에서도 압력이 들어왔다. 북한을 자극하는 내용이 문제가 된 것. "정부측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부분의 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정성산 감독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난관에 봉착할수록 이 작품을 반드시 무대에 올려 북한의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요덕 스토리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정성산 감독의 프로젝트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해외 단체들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결국 약 7억 원에 달하는 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제작비는 정성산과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작은 성원으로 마련됐다. 특히 노르웨이의 한 영화사에서는 1억5000만 원을 지원하는 한편 정성산이 <요덕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기로 했고, 미국의 인권단체인 '디펜스 포럼 재단'은 격려의 편지와 함께 200만 원의 제작비를 후원하기도 했다. 정성산 감독은 자신의 전세 보증금인 4000만 원을 빼서 투자했으며 자신의 신장을 담보로 2000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난산 끝에 뮤지컬 <요덕 스토리>는 지난 15일 첫 공연을 시작했다. 첫 날 첫 공연, 1000석이 넘는 좌석이 모두 매진되는 등 해외 언론뿐 아니라 국내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데도 일단은 성공한 듯이 보인다.
<요덕 스토리>는 어떤 내용? <요덕 스토리>의 배경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 북한에서 무용수로 각광받고 공훈배우 훈장까지 받은 노동당 중앙당 간부의 딸 강련화는 어느날 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쓰게 되면서 온 가족과 함께 요덕 수용소에 수감된다. 강련화는 수용소장 리명수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고 아버지 강만식은 공개 처형된다. 동생 강혁명은 옥수수를 훔쳐 먹은 죄로 손목이 잘리는 등 수용소에서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요덕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쥐까지 잡아 먹어야 하는 극심한 기아와 교도관들의 폭력에 시달리며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련화의 임신이 드러나자 리명수는 졸지에 수용소장에서 수감자 신분이 되고, 련화를 사랑하게 된 리명수는 임신한 련화를 탈출시키려다 자폭하고 만다.
장장 170분에 달하는 뮤지컬 <요덕 스토리>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는 1막과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되는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은 무시무시한 느낌을 강조하는 철책과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처형대, 채찍을 휘두르며 수감자들을 위협하는 교도관들의 공포스러운 발걸음, 붉은 빛이 감도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조명 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수용소의 공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루아침에 공훈배우에서 정치범으로 전락한 강련화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과 수용소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무대 위에서 형상화된다. 비교적 가벼운 정치범을 수용하는 요덕 수용소조차 저 정도라면, 무거운 정치범을 수용하는 수용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관객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러나 뮤지컬은 무겁게만 진행되지 않는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는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대를 담아낸다. 3개월 동안 맹연습한 결과, 배우들은 170분 간 흔들림 없는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요덕 스토리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2막은 련화와 리명수의 사건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다. 련화와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수용소장에서 수감자로 신분이 바뀐 리명수가 련화에게 용서를 구하고 련화를 탈출시키려는 장면은 <요덕 스토리>의 하이라이트. 수용소장 자리를 탐낸 중위의 음모에 휘말려 련화와 아이를 대신해 총살당하는 리태식에 대한 묘사는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남한물을 먹고 신의 존재를 알게 된 리태식이 련화와 아이를 대신해 죽는 장면과 강련화가 리명수를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정성산 감독은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수용소장마저도 북한 체제의 희생양일 뿐이라는 감독의 생각이 2막에서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 수용소 수감자 전원이 부르는 신에 대한 찬양의 노래는 감독이 <요덕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다. 아마도 '神만이 북한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뮤지컬을 본 일부 관객들은 정성산 감독이 북한사회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지나치게 동일시하고 일반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 정성산이 진정으로 탈북자 꼬리를 떼는 방법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완성도는 그 지점에서 흔들린다. 1막에서 묘사한 요덕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이 2막에서 수감자와 피수감자 사이에 서로 이해와 용서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흔들린다. 수용소장과 교도관들에게 핍박받던 수감자들이 순식간에 그들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마지막 장면은 현실성이 없어 보일뿐 아니라 극을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련화가 자신을 성폭행한 리명수를 용서하고 리명수와 화해하며, 리명수가 련화를 구하기 위해 자폭하고, 련화와 아이를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리태식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결국 신파 형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요덕 스토리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따라서 <요덕 스토리>에 대한 일부 보수언론들의 가치평가는 다소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국내 최초로, 아니 세계 최초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탄압의 실태를 그린 뮤지컬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요덕 스토리>의 성공 여부는 1차 공연이 막을 내리는 4월 2일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북한의 인권 실태를 다룬 첫번째 뮤지컬로 남을 것인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지는 남은 3주 동안 두고 볼 일이다. 정성산은 "작품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더 강하게 붙어 다닌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그가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일이다. 그가 요즘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성공하고 <빨간 산타들>의 개봉이 무사히 이루어지는 것.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탈북자 예술가'의 꼬리를 떼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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