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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동네북'이 아니다

〈기자의 눈〉"총리 사의 표명"이 언론의 자가발전?

여권의 이해찬 총리 유임론이 급기야는 "이해찬 총리가 사의 표명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으로까지 확대됐다. 이 총리가 사의 표명을 했다는 것은 언론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총리 거취 논란이 언론의 자가발전에 기인한 문제일까?

***'사의표명설', 처음엔 묵묵부답**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은 8일 "이 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적은 없다"며 "언론이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처럼 하는 것은 사실 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같은 발언에 대해 "평소 해 온 얘기, 사실을 전달한 것이지 총리 거취 문제와 관련된 기류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9일 "이 총리가 사표를 내야 해임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며 사의 표명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사퇴설'은 언론 작품"이라며 언론이 사실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1절 골프' 파문과 관련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지난 5일 총리가 이강진 수석을 통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청와대와 총리실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총리는 지난 4일 저녁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3.1절 골프' 파문과 관련해 "대통령이 순방을 다녀온 뒤 거취 문제를 협의드리겠다"고 보고했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해외 순방 다녀온 뒤에 봅시다"고 답했다는 것.

이어 이 총리는 5일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본인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14일까지 해외순방을 하기로 계획돼 있으므로 해외순방을 마친 후에 대통령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이강진 수석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수석은 "총리의 구술(口述)이 있었고 (나는)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할 입장이 아니다"면서 추가 설명을 자제했다.

청와대 측에서도 이 총리의 대국민 사과 발표 직후 "거취와 관련해선 지금 단계에서 뭐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이 알려지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으로 본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당과 나라의 기강을 확실히 바로잡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식의 직접적인 표현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총리가 직접 "본인의 거취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이에 대통령이 "순방 다녀온 뒤 보자"고 답했으며, 여당 의장이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으로 본다. 이 일을 계기로…"라고 '과거형'을 사용한 정황 전체를 '사의 표명'으로 받아들이는 게 확대 해석이었을까?

정말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게 아니라면 왜 당일 혹은 그 직후에는 이같은 해석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나?

***총리 거취 문제로 '정치 게임' 하나**

노 대통령이 부적절한 처사로 물의를 일으킨 총리에 대해 여론이나 정치권 요구와 상관 없이 '재신임'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총리 유임 결정이 한나라당의 해임 건의안 제출 등 거센 반발로 정치권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게 뻔하지만 어쨌든 인사권은 대통령 권한이기 때문이다.

또 노 대통령이 보기에 상황이 그다지 불리하게 전개되지도 않고 있는듯 하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의원직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 사퇴를 바라는 여론이 절반을 약간 넘는 53%선에 머물렀다. 또 125석인 한나라당이 총리 해임건의안 통과를 자신할 수도 없다. 한나라당에게는 지난해 6월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냈다가 부결된 전례가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과 여당 입장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 야당과 여당 일각의 요구에 밀려 이 총리를 해임한다면 급속히 '레임덕'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런저런 계산을 해 '승부사' 기질을 발휘할 수도 있다.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지만 '총리 거취'를 놓고 '정치적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게임'을 하자면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이 총리의 말 속에 사퇴라는 명시적 표현이 없었다고 해서 상황을 부인하며 반전시키려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무리한 사태 반전 시도는 '오락가락 행보' 낳을 뿐**

이처럼 꼼수를 찾다보니 10일 '3.1절 골프'에서 "100만원 내기 골프를 했다"는 새로운 진술이 나오는 등 상황이 다시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 총리가 이날 당초 참석하기로 돼 있던 '한국노총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돌연 불참을 결정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부적절한 골프회동에 대해 총리가 사실상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리는 겸허한 자세였다면 행사 1시간 전에 돌연 '불참' 결정을 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게 아니다"라며 섣부른 반전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위신을 구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10일 한나라당 엄호성 전략기획실장은 "정동영 의장 체제가 탄생했을 때 야당은 정 의장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길 기대했지만 이 총리의 골프 파문과 관련한 정 의장의 행태를 보면 야당과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며 "정 의장은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국정의 한 축으로서 당당한 역할을 담당해 달라"고 말했다.

***언론은 '동네북'이 아닌데…**

정치인들이 기존의 입장을 바꿀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수사(修辭)가 "언론이 잘못 전했다" "진의가 왜곡됐다"는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대개의 경우 언론도 그런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 가타부타 진위를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애교 정도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기자의 취재원의 관계로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입장에서 "아니, 분명히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정색하고 따지기도 '정리'상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이번 경우도 "언론이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니 그리 먼 번짓수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정황이 나와 있다.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까지 나서서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으로 본다"고 박아 말한 것을 '사퇴 결심' 내지 '사의 표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했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언론을 걸고 넘어가는 것은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차라리 지난 5일 대통령과 총리의 입장이 처음 발표될 때는 이 총리의 사의 표명을 노 대통령이 접수할지의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그 뒤 접수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해가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언론은 언제나 마음 내킬 때 두드려팰 수 있는 동네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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