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제왕적 리더십'은 벗었지만 '정당정치 희화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제왕적 리더십'은 벗었지만 '정당정치 희화화'

[노무현정부 3주년 평가] "도덕성 과신…제도화 미비"

지난 18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는 현재 여권 전반의 무기력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였다. 정동영, 김근태 두 대권주자의 '빅 매치'는 당초 기대와 달리 국민적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고, 오히려 두 대권주자가 서로를 겨냥해 상채기만 낸 측면이 강했다.

이같은 '무기력한 거대 여당' 열린우리당의 현재 모습은 당정분리로 대표되는 소위 '노무현식 정치'가 크게 일조한 것이기도 하다.

이전 대통령들의 '제왕적 리더십'을 극복하기 위해 당정분리 등 '수평적 리더십'을 주요한 정치적 목표로 내걸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는 25일 집권 3년차를 맞는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을 평가하기 위해 던질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대통령 개인의 순수성.도덕성 과신…제도화 미비"**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서면서부터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약속하는 등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제시했다. 어쩌면 호남지역을 근거로 한 정당의 영남 출신 후보로서 당내 계보나 계파도 없이 대선에서 57만 표 차이로 힘겹게 승리한 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부터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또 한국정치를 30년 가까이 지배한 '3金(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시대'의 종언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은 시대적 대세이기도 했다.

'제왕적 리더십'을 극복하기 위해 노 대통령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려 하고 있다. 또 여당의 총재직을 겸하지 않고 여당 인사나 공천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당정분리, 또 책임총리 및 책임장관에게 일상적 국정운영을 맡기는 분권형 국정운영 등이 대표적인 조치들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는 과거엔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사인(私人)적 통치 방식이 강해 권력기관과 금권 등을 활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르는 방식이었던 반면 노 대통령이 이를 자제한 것은 인정해줘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분권형 국정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김 교수는 권력기관의 독립, 분권형 국정운영 등에 있어 이를 제도화 하려는 노력은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통치의 비민주적 요소를 대통령 본인의 의지에 의해 척결하려 했지만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하지는 못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 리더십 평가'라는 논문(<행정논총> 제43권 제2호)에서 "노 대통령은 제도와 절차에 따른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화 된 제도적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했으나 실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지에 기초를 둔 개인적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국가개조라는 자신의 이념적 순수성과 도덕적 정당성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명분에 집착했다"고 평가했다.

***원칙없는 당정분리 원칙…실상은 대통령 맘대로?**

당정분리 원칙은 이처럼 전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의존했고 지금도 그러한 측면이 강하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노 대통령은 스스로 일반당원이라고 하면서 '거리 두기'를 하려 하지만 실제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게 아니냐"고 되물으며 "개혁적 의미의 당정분리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포기하고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지금처럼 당과 청와대가 따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당정분리의 기본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재 집권 여당이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식으로 관여할 것이냐는 문제 등에 대한 합의가 없다"며 "제도적 장치가 없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제도적 틀 내지는 여권 내에서 조율된 룰이 없는 상태에서 당정분리는 지난 3년간 편의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강하다. 즉 여당의 의제 및 정책 방향 설정 등에 있어 대통령이 사실상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야당이 정치적 공세를 펴면서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고 나설 때는 당정분리를 내세워 이를 피해 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원격조종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손혁재 교수는 "지난 1.2 개각 파동 때 청와대는 당과 상의 없이 당 의장이던 정세균 의장을 산자부 장관으로 임명해 당에서 반발 여론이 일자 '대통령이 당에 개입하지 않으니 당도 대통령이 하는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인사문제에서 여당과 정부의 인력 풀(pool)이 하나인 마당에 긴밀한 협의는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정분리, 중립성 신화에 기반한 反정당정치적 발상"**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이 내세운 당정분리가 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반(反)정당정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당정분리는 말이 안 된다"며 "노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후보로 그 정당의 노선과 정책에 기반한 공약을 내걸고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여타 세력이 요구하는 것도 수렴해야겠지만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책을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구현시키는 게 정당정치의 기본"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제시한 당정분리는 어떤 측면에선 정당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반(反)정당정치적 발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권력의 중립성의 신화에 기반한 것"이라면서 "특히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도 자신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판(2005년)에서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은 정당"이라면서 노 대통령의 당정분리 원칙을 "반(反)정치의 정치관"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당과는 거리 유지…"위기동원의 정치"**

당정분리 원칙이 강조되다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여름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연정 제안과 같이 대통령이 여당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최근엔 대통령이 자신의 '탈당'을 여당의 반발을 잠재우는 카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 대통령은 당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노사모 등 '당 밖'의 지지 세력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했다.

함성득 교수는 "노 대통령은 정치적 갈등의 공식적 해결기관으로서 해결 속도가 느린 국회나 정당 등 제도적 기관을 경시하고 해결 속도가 빠른 노사모, 진보적 시민단체 등 자신의 정치적 외곽세력, 소위 '바람의 정치'에 크게 의존했다"며 "이렇게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제도적 기관을 경시하면서 대통령 개인의 신념이나 의지에 기초하는 개인적 리더십은 아이러니하게도 노 대통령이 그토록 벗고자 했던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근간"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경향은 "위기동원의 정치"라고 비판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유독 '대국민 직접 홍보'를 강조하는 것도 스스로 리더십의 근간을 정당, 의회 등 제도적 영역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력한 리더십이 곧 제왕적 리더십은 아니다"**

이렇게 당정분리 원칙이 정면으로 비판 받는 상황은 결국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정대화 교수는 "(대통령과 여권이) 정부 내의 권력행사 방식만을 놓고 '탈권위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권력의 문제를 굉장히 협소하게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예컨대 야당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의 권위가 완전히 엉망이 되고, 경제.사회적 측면, 특히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야당, 재벌, 노조, 시민단체 등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의 권위를 합리화하는 문제는 다 포기한 가운데 정부와의 관계만을 놓고 '탈권위주의'를 얘기하고 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최근 집권 4년차의 중요한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양극화 해소' 논의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를 '무능한 민주화 세력'으로 보는 불신이 팽배해 있는 마당에 어떤 '어젠다'를 내세워도 설득력을 갖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히려 이 시점에 대통령과 정권이 정치개혁의 토대로 제시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탈권위'와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도 모두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는 화두들에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정치개혁의 성공, 나아가 노무현 정부의 궁극적인 성패를 가늠하는 열쇠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