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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8천억원'은 정부에 헌납한 정치자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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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8천억원'은 정부에 헌납한 정치자금인가

〈기자의 눈〉노대통령-삼성, 짜고 치는 '고스톱'?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삼성의 사회환원기금 8000억 원의 처리 과정에 정부가 나설 것을 지시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를 듣고 '삼성공화국'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이 내놓겠다는 돈이 사상 최대 규모일지라도 일개 기업의 사회환원기금의 '뒷처리'에 정부가 일조하라는 지시를 대통령이 내리니 이것이야말로 '삼성공화국'이란 징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대통령, 8000억 원 용도 가이드라인 제시**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청와대 정책실과 국무총리가 삼성의 사회환원기금의 처리 절차를 협의해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의 출연금이 관리 주체 등이 뚜렷이 없어 표류되고 있는데 누구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소모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이 밝힌 이유다.

노 대통령은 또 "빈곤의 세습과 교육 기회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 소외계층과 저소득 계층에 대한 지원에 사용되는 방향이라면 우리 사회 분위기와도 자연스럽게 맞을 것"이라며 이 돈의 용도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어쩌면 집권 4년 차를 맞아 '양극화 해소'라는 새 화두를 제시한 노 대통령에게 8000억 원이란 돈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새 화두를 제시했지만 정작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은 '증세-감세 논란'에 휘말리면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돈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쓰인다면 삼성의 출연금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8000억 원은 단순히 8000억 원에 그치는 돈이 아닌 것이다.

***노대통령 지시 떨어지자마자 삼성 "적극 협조" 입장 발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재벌의 사회 환원이란 의미가 있는 돈일지라도 이는 분명 일개 기업의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기업의 출연금 처리에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복들이 나서라고 지시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처사다. 이 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논란이 일지라도 이는 삼성의 책임일 뿐이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켜켜이 쌓여 있다.

또 앞뒤 정황을 보건대 노 대통령은 이미 삼성과 사전 조율이 끝난 상태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노 대통령의 지시는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 안건과 연관된 게 아니었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회의 말미에 사전에 미리 준비된 메모를 보면서 이 같은 지시를 내렸고, 참모진들은 별다른 이견 없이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지시하자 삼성그룹은 이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의 결정에 따라 기금이 충실히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발이 이렇게 착착 맞을 수가 없다.

***대통령 지시는 삼성 둘러싼 논란 잠재우기 위한 것?**

더욱이 삼성이 8000억 원을 선뜻 내놓은 저의가 무엇인가를 놓고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지시는 '부적절'한 단계를 훌쩍 넘어선다.

시민단체들은 삼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거 안기부의 X파일 공개로 노출된 불법 대선자금 수수사건과 관련한 국회의 특검 실시 요구,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 등으로 수세에 몰리자 물타기용으로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민주당 김종인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들도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 지배구조의 본질적 문제는 피하면서 돈으로 여론의 질타를 무마하려 한다"며 의혹 제기에 가세했다. 이들 의원들은 "삼성은 과거에도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됐을 때 장학재단 설립 등을 얘기했다"며 과거 수법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보라고 지시한 것은 진행 중인 논란을 덮자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삼성의 발표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만들어준 것에 더욱 눈길이 간다. 혹시라도 현재 제기된 삼성의 문제들이 해명되지 않고 또다시 덮어진다면 삼성의 8000억 원은 거액의 정치자금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이 꼭 밀실에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자신의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해명하지 않고 선심 쓰듯 내놓은 이 돈의 용처가 대통령은 그렇게 궁금하고 안타까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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