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얼마 전 '칼바람'이 불었다. 마케팅에서 배급까지 주요 업무를 맡고 있던 간부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인사이동 과정에서 낙마한 사람들은 대부분 CJ 바깥으로 퇴출됐다. 남의 회사 내부의 '밥그릇'에 관계된 일인 만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적어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인사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었던 데에다 무엇보다 CJ의 변화는 영화업계 전체의 변화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고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그 인사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로 CJ의 새 수장이 된 김주성 사장(47)이다. 지난 해 말 CJ 입성 직후부터 김주성 사장은 회사 내부를 완벽하게 '흔들고' 또 완벽하게 '바꾸는' 일에 주력해 왔다. 이건 업계 1위 자리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요즘 CJ의 변화를 보고 있으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김 사장과 CJ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큰 그림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국내 영화계 최대 투자배급사의 새 CEO가 된 김주성 사장을 만났다. 마침 <투사부일체>가 570만 관객을 넘기며 국내 코미디영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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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대표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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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 내부의 얼마 전 인사를 보고 영화계 사람들 중 일부는 '노무현식'이라고 얘기한다. (웃음) "코드 인사라는 얘기인가. 재미있군. 하지만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냥 변화하는 환경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뽑았다고 보면 된다. 알다시피 국내 영화계에서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그걸 다루는 사람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왕왕 보인다. 예컨대 이런 거다. <왕의 남자>나 <투사부일체> 같은 경우는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는 영화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영화, 그러니까 상업적인 면에서나 작품적인 면에서나 애매하게 경계에 서 있는 영화들이 있다. 요즘엔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은데, 어쨌든 그럴 경우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각각의 케이스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매뉴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그냥 옛날 방식으로, 그러니까 <투사부일체> 처럼 되는 영화 방식으로만 일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건 지나치게 영화 안으로만 시각이 매몰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 인사에서 광고대행사에 있던 사람, 일반매체에 있던 사람, 다른 계열사에 있던 사람을 적극 영입한 것도 사업에 있어 보다 고른 시각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 <투사부일체>의 성공은 절묘한 배급 타이밍 덕 - <투사부일체>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겠다. 박스오피스 성적이 엄청나다. 예상했던 일인가. "예상했다고 하면 그건 좀 거짓말일 거다. 다만 배급 타이밍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은 든다. 원래는 설날 연휴 때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이걸 한 주 당겼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미 전단이다 뭐다 다 찍어놓고 개봉일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주일 먼저 개봉하는 게 연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생각이 적중했던 셈이다."
- 이 영화가 왜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왜 '이런' 영화가 잘된다고 생각하나,란 얘기처럼 들린다.(웃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난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CJ는 그 동안 지방영화보다는 서울영화 중심이었으니까. 음.. 이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러니까 서울과 지방을 차별화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보다 대중적이고 남녀노소가 쉽게 즐길만한 영화가 상대적으로 그만큼 적었다는 얘기다. <투사부일체>는 쉽고, 단순하고, 그래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의 흥행성적이 보여주는 얘기이기도 하다."
- <투사부일체> 개봉과정에서 CJ의 계열사인 CGV가 다른 배급사 작품인 <홀리데이>를 의도적으로 조기 종영했다는 오해를 샀다. "말 그대로 오해였다는 것, 이제는 다 알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CGV가 CJ 영화만을 건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CJ 작품들은 오히려 CGV로부터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시 다른 배급사들과 마찬가지로 CGV를 상대로 작품을 걸기 위해 치열하게 로비를 한다. CGV가 작품을 거는 기준은, CJ의 영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좋은 영화냐 아니냐 혹은 흥행이 될 영화냐 아니냐다. <홀리데이> 파문은 조기에 정리돼서 정말 다행이다."(프레시안무비 1월25일자 기사 '홀리데이 사태의 본질, 그 내막' 참조)
- 올해 CJ의 목표는 무엇인가? 수성인가 공격인가. "좋은 질문이다. 수성은 아니다. 공격은 공격인데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방식이 아니다. 이제 CJ는 국내시장에서의 경쟁관계는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적극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위해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향후 3~4년 후 혹은 그 이상이 되는 시점의 CJ를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도 한참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 우리의 목표는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튜디오를 준비하는 것이다."
- 아시아 최고의 스튜디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웃음) "그걸 말로 다하라고? 어쨌든 굉장히 정교하고 방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올해 안에 우리는 일본에 직배(직접배급)를 실시하려고 한다. 요 몇 해 동안 한류 때문에 한국영화가 일본시장에서 꽤나 잘 팔렸다는 얘기들을 들었을 텐데 그게 모두 MG계약(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출액 얼마 식의 단매로 판권을 넘기는 것 – 편집자)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일본 내 직배에 대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 쪽의 마케팅 비용이 워낙 엄청난 데에다 그걸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걸 우리가 직접 핸들링 할 생각이다. 일본쪽 파트너로는 <주온>이나 <링><착신아리> 등을 만들어 신흥 메이저로 떠오른 '가도가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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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대표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할리우드 진출, 이제 성과를 거둘 때 - CJ의 할리우드 진출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CJ가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CJ를 통해서 한국영화를 진출시키는 것이다. 맞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고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건 공개할 수 없는 일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드림웍스라는 할리우드쪽 파트너가 있는 만큼 그 쪽을 통해 무언 가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다만 그 방식으로는 홍콩이 오우삼 감독을 할리우드에 보냈듯이 감독을 진출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적인 정서나 이야기, 배우들이 들어간 영화를 공동제작하거나, 그런 영화를 만들도록 투자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순수하게 우리영화를 그쪽 시장에 배급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드림웍스의 배급라인을 타고 <태풍>을 미국 전역에 배급하는 일도 그런 큰 계획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드림웍스는 얼마 전 파라마운트로 인수됐다. 변화는 없나? "드림웍스의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 CJ는 종종 국내 시장을 지나치게 독점하려 한다는 비난을 산다. (웃음) "아마도 그건 업계를 주도하는 회사로서 일종의 '유명세'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얘기하는 '독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걸 과연 '독점적 현상'으로 봐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전체 영화시장의 구조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도양단 식으로 대기업이 영화사업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독점적'이라고 보는 것은 효율적이 않다. CJ는 그 동안 한국영화산업에 기여한 바가 컸다고 생각한다. 영화산업이 투명해진 것도 우리 같은 대기업 영화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꾸 독점,독점하는 것은 사업자들로 하여금 힘을 모으게 하는 데 있어 역효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독점 문제는 국내 영화산업의 구조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영화산업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영화 매출의 75% 이상이 극장에서 만들어지는 현실이다. 부가판권 시장이 너무나 미약한데 지난 1년은 해외 수출액보다 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영화사가 극장유통을 같이 가져가지 않으면 안정적인 사업을 벌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독점이라고 해서 비판을 하면 사업의 집중도를 높일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사업자들로 하여금 힘을 모으게 하는 게 지금 더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는 생각하기에 따라 달려 있다. 국내 영화산업을 지금보다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현안에 매달리기 보다는 좀더 중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지난해는 경쟁사인 쇼박스에 조금 밀린 감이 있다. 올해는 어떻게 전망하나? "밀리지는 않았고... 엎치락 뒤치락 한 면이 있다. 우리가 안타는 많았는데 장타나 홈런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마 확실한 선두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배급 편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매년 평균 13편 정도의 한국영화를 배급해 왔는데 올해는 스무 편 정도로 늘릴 생각이다."
- 기대하는 작품은? "시네마서비스와 공동개발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아무래도 기대가 된다. 강 감독은 6월 월드컵 시즌에 맞불 작전으로 개봉하겠다고 호언 할 정도니까. 우리가 극구 말리고 있긴 하지만.(웃음) 중국과 공동제작하고 있는 사극판타지 <중천>도 크게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마 연말쯤 개봉될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한편 한편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 영화계 구조변화에 주력한다는 것, 해외시장에서의 씨딩(seeding)에 노력한다는 것 등이다. 이 모든 것이 올해를 기점으로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개인적인 취향의 영화라면? "글쎄... 배급사 대표가 어떤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는 내 운명>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지금 막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도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영화를 꼽으라면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하지만 취향과 작품선정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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