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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안은 70년대 동성애 사랑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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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안은 70년대 동성애 사랑으로 돌아갔을까

[김영진 대 오동진]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전문기자 오동진과 중견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개봉영화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매주 벌이는 사이버 영화논쟁. 이번 주는 올해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는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 도마에 올랐다.
오동진<브로크백 마운틴>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이안이 왜 <헐크>를 찍었는지 알게 됐다.
김영진왜?
오동진이안 자신이 '헐크' 같은 인물이니까. <라이드 위드 데블> 같은 미국 남북전쟁 서부극에서, <결혼피로연> 같은 소수 민족 커뮤니티의 동성애 영화에다, <와호장룡> 같은 무협액션 영화까지 도무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괴물 '헐크' 같은 존재니까.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김영진재밌군.
오동진게다가 이안은 아시안이잖아. 그래서 이안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음, 그렇지. 동시에 아버지의 질서를 거역하는 그런 존재들을 다루는 점에서도 작품들 모두가 <헐크>와 통하는 바가 있지.
오동진맞다. 근데 이번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가장 좋은 점은 두 남자의 동성애적 사랑을 새로운 시각, 다시 말하면 진정어린 시각으로 그렸다는, 그런 진부한 데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김영진그럼?
오동진그 사랑이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이지.
김영진맞다. 그게 마음을 울리지.
오동진많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일정하게 '시한'이 있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우리의 실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툭 끊어서 보여주는 셈이다. 이 영화처럼 20년 동안 상대(남자든, 여자든)의 사랑을 갈구하는 게 실제 삶에 더 가까운 거다.
김영진난 이안이 미국을 보여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오동진예를 들면?
김영진<아이스 스톰>이든, <라이드 위드 데블>이든, 이안이 그려내는 미국에서는 기존의 영화에서 봤던 그런 미국적 라이프 스타일이 없다. 어쩌면 이안이 그려내는 미국인들의 삶이야말로 진짜 미국인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동진역설적으로 그게 진짜 미국적 삶이고, 진짜 미국이라는 얘기이기도 하겠지.
김영진맞다. 이안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미국은 황량하다. 하지만 정말 대다수 미국인들은 저렇게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동진내게 흥미로운 건 이안이 그리고 있는 미국이 현재의 미국이 아니라는 거다. 남북전쟁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는 1970년대의 미국에서 '진짜'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지금 우리 혹은 미국이 겪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 때문에 지금 시대의 해답 역시 1970년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지금 1970년대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김영진그렇지만…
오동진그렇지만, 뭐?
김영진현재에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미국의 모습을 추측할 수는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폐쇄된 사회에서 사회적 규약에 꽁꽁 묶여서 낯선 것들을 경계하고 그걸 금지하면 가차없이 응징하는 그 지옥도 같은 풍경에서 현재의 미국이 떠오르지 않나?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오동진맞다. 그 지옥도의 풍경(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세돼 살해된 남자를 억지로 보여주는 장면)이 느껴진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영화가 <뮌헨>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영진왜?
오동진<뮌헨> 역시 1972년에 일어난 사건을 지금 이 시간으로 죽 당겨오고 있으니까.
김영진아하 그렇네.
오동진30여 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그 공백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좌초하고 실패해왔다는 것을 이들 작가들이 자꾸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이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지금을 더 치열하게 사는 작가들이니까 그럴 거다.
김영진그것도 그렇고 이 영화는 이안의 전작인 <아이스 스톰>에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그 아름답지만 살풍경한 것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이번에는 훨씬 전형적으로 두 남자의 사랑을 묘사하니까 대중적인 감동이 있다. 이안은 그것을 격한 감정적 움직임에 실어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을 묘사하는 이안의 냉정한 태도가 놀랍다.
오동진맞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아무리 작가지만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경험과 다양한 관계의 이야기를 이렇게 차분하게 묘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 에너지가 궁금하다. 신이 뒤에서 가르쳐 주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이안은 동성애자는 아닌 것 같던데, 애들도 있고 말이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동성애자의 심리를 잘 알까. <결혼피로연>에서도 그렇고. 물론 영화 속 주인공들도 이안처럼 결혼을 하긴 한다.
김영진어떤 인터뷰를 보니 게이라는 걸 단호하게 부정하던데.. 근데 두 남자의 첫 번째 이별 장면 기억나나? 산에서 이별 직전에 둘이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바로 그 장면.
오동진둘은 키스를 하든, 섹스를 하든, 거친 싸움처럼 시작한다. 근데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다. 사랑은, 접근하기 전에 일종의 싸움 같은 거다. 탐색전을 벌이고 서로를 정복하려 하는 등등. 때로는 동물적이기도 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몇 있다. 극 후반부에 잭(제이크 길렌할)이 떠나는 에니스(히스 레저)를 보는 장면 같은 거. 과거에 방목장에서 자기를 뒤에서 슬쩍 안고는(대사가 이렇다. "너는 어떻게 서서 잠을 자니?") 양을 보러 말을 타고 떠나는 뒷모습을 교차편집한 장면 말이다. 그 장면 정말 아름다웠다.
김영진그렇지. 그 장면뿐만 아니라 브로크백 산을 찍은 풍경과 인물은 너무 아름다웠다. 자연을 이용한 촬영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다.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사람과 사물과 풍경이 자연스레 섞이는 그런 경지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자신의 감정,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할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감정이자 상황이니까. 그들은 그저 그 사랑에 매혹된 만큼이나 사회적 징벌에 대해서도 공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오동진그 사회적 공포는 1970년대가 부여한 일종의 사회적 억압기제다. 스필버그의 <뮌헨>과 다시 한번 비교해보면, 이안이나 스필버그나 그래서 새로운 뭔가를 찾는다. 그건 바로 새로운 '가족'이다. 두 사람은 결국 '가족주의'가 세상을 구한다고 생각한다.
김영진아하.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족은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제도로 묘사되어 있다.
오동진음…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에니스가 마지막에 딸을 만나는 장면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 준다..
김영진난 히스 레저가 딸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서서히 망가지는 모습이 심금을 울리던데. 거처할 곳 하나 없이 트레일러에 살면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딸을 만나는 그 장면.
오동진나는 망가진다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점점 기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는 제도에 기대는 게 아니라 가족, 그 혈육의 정, 그 거부할 수 없는 순수한 심성에 말이다. 난 그 딸이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가 와주기를 갈망하면서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는 장면을 보면서 울었다. 그건 어떤 이데올로기 혹은 그 어떤 가치도 넘볼 수 없는 무정형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진나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때론 가정을 전쟁터로 묘사한다. 물론 딸자식에 대한 사랑과 의무 등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이 빽빽 소리내어 울거나 세탁기가 돌아가가는 소음, 혹은 아내와 티격태격하는 모습 등등이 가정을 전쟁터처럼 보이게 한다.
오동진그래도 에니스가 아내가 직장 나갈 때 실컷 싸우다가 돌아서서는 애들에게 그네 밀어줄까 하는 장면을 보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김영진이혼한 아내와 크리스마스에 대판 싸우고 에니스가 나올 때 두 딸이 나와 '바이, 바이' 하며 인사하는 장면은 정말 죽이더군. 잔인해.
오동진하지만 바로 그 '지긋지긋한' 사랑이 바로 그가 또 다른 남자와 20년의 사랑을 지속시켜주는 힘이기도 했다.
김영진흠…
오동진잭이 에니스의 뒤에서 20년 동안 널 기다렸다며 호소하는 장면도 그랬다. 그 어떤 남녀간의 러브 스토리보다도 진짜처럼 느껴졌다.
김영진맞다.
오동진세상은 복잡한 것이고, 인간사, 그 마음 속 흐름도 복잡한 거다.
김영진쉽지가 않지.
오동진일도양단의 도덕률이나 제도라고 하는 것이 결코 복잡한 인간의 관계를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느 쪽에 더 충실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하고.
김영진난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세상의 살풍경함이 인상 깊었다.
오동진맞다. 그 병치가 훌륭했다 정말.
김영진영화 말미에 에니스가 잭의 부모를 찾아가는 장면도 죽이더라. 그 부모들의 말 못하는 표정에 담긴 슬픔…
오동진그러면서도 냉혹해. 특히 아버지가 말이다.
김영진그렇지. 사회적인 틀에 완강히 들어서 있으면서도 아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모습이랄까…
오동진어쨌든 <브로크백 마운틴>은 가장 미국적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내재적이면서도 바깥의 시선으로 만든, 현재 미국의 아픈 삶을 기록한 현대영화의 걸작으로 남을 거라고 본다. 너무 진부한 정리 멘트다.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김영진난 이 영화가 미국을 그려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특히 이 영화에서 카우보이를 서부영화에서 이상화됐던 그런 신화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계급과 성적 억압, 그리고 사회적 금기의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런 인간의 모습으로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동진그리고 인간의 마음 속이 얼마나 외롭고 황량한 것인가, 외롭게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든 타인과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이 영화 때문에 한국 관객들도 이제는 남자들끼리의 섹스도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될 것 같다.
김영진잭과 에니스는 원래 게이였을까?
오동진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던데? 두 사람의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실제로 두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섹스를 하는 것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그냥 같이 늙어간다. 동반자처럼. 말 그대로 동반자처럼.
김영진동의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랑이 다 우정이 되는 건 아니다.
오동진그래도 우정은 사랑보다 오래 간다. 그 우정과 애정이 뒤범벅된 감정은 때론 상대방을 향해 때론 엄청난 질투하게 하고, 엄청나게 의심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도 늙어가는 에니스가 잭에게 그러지 않나. 나 몰래 딴짓 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그 딴짓이란 잭이 멕시코에 가서 남창을 사는 일이다.
김영진맞다. 그 장면. 하하.
오동진별점은 몇 개나 줄 건가?
김영진넷.
오동진난 다섯 개. 흠잡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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