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8일 밤 10시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신년특별연설을 가졌다.
통상 신년기자회견 형태로 진행됐던 대통령 신년연설이 청와대 외부의 장소에서 정부 부처 각료, 일반국민 등 230여 명의 청중 앞에서 TV연설 형태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 연설은 소위 '황금시간대'인 밤 10시부터 40분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3사를 통해 동시 생중계됐다.
한때 주식거래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란 루머까지 돌아 이날 주가가 떨어지는 등 그야말로 떠들썩했던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양극화 해결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2005년 신년연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작년 신년연설과 비슷한 내용의 2006년 신년연설**
노 대통령의 이번 신년연설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이 실패한 뒤 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인 오는 2월 25일께 '미래구상'을 내놓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예고했고, 이 '미래구상'의 내용이 신년연설에 일정 정도 반영될 것이라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가 이번에 처음으로 신년연설과 기자회견을 분리하기로 해 신년연설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자아냈다.
청와대의 이같은 방침은 이제껏 신년기자회견이 현안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고 이 내용 위주로 보도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에 대한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년연설을 TV로 생중계하는 것도 언론 보도를 거치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히겠다는 노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막상 이날 오후 6시께 노 대통령 신년 연설문이 청와대 기자실에 배포됐을 때 기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깜짝 놀랄만한 내용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예고됐었지만 양극화에 대한 인식이나 해소 방안, 언론과 야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까지 노 대통령의 기존 문제의식에서 더 발전된 내용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신년연설에서 그래프와 도표까지 동원하면서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려 했다. 그러나 "경제는 호전되고 있지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중소기업의 육성,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전면 개방, 문화.관광.레저 등 서비스 산업의 육성 등이 필요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해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결단이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사회안전망이 확충돼야 한다"는 이날 신년연설의 요지는 2005년 신년연설에서 이미 제시된 내용이었다.
이러다보니 일부 기자들은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노 대통령의 '평이한' 신년연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한 김영주 경제정책수석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참여정부가 얼마나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왜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 알리는 게 주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도 "이번 연설은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것"이라며 기존의 신년기자회견과는 다른 것임을 강조했다.
***"방송3사 생중계…시청자들의 시청권 무시한 처사"**
한편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방송 3사를 통해 동시에 생중계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은 18일 성명을 통해 "올해 처음 시도되는 대통령의 TV신년특별연설은 그 기획에서부터, 제안, 편성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방송 연설계획을 발표하고 방송 3사가 이를 그대로 수용한 것 자체가 방송인들이 온갖 희생과 투쟁 끝에 쟁취한 편집, 편성권의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방송 3사가 황금시간대에 동시 생방송을 결정하게 된 것은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또 "대통령의 회견 내용은 방송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대통령의 회견 내용은 확대 재생산되는 이슈"라며 "대통령의 신년특별연설을 꼭 지상파 방송 3사가 동시 생중계를 해서 동 시간대의 시청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권리를 막을 이유가 있냐"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대통령의 권리와 의무만큼이나 언론과 방송의 책무 또한 막중하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며, 시청자들의 시청주권 또한 방송의 본질적 가치라는 점을 청와대와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신년연설을 TV 생방송을 하겠다고 밝히고 각 방송사에 요청을 하고 협의를 한 과정은 있다"며 "그 후 각 방송사들이 시차를 두고 요청에 응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지 방송 3사 동시 생방송을 미리 정해놓고 청와대가 밀어붙인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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