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장관과 황우석 교수는 서울대 72학번 동문이라고 한다. 정 전 장관은 13일 "나는 황우석 교수와 대학 동창생이고 친구이기도 하다. 황 교수와 가까운 친구들이 저와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월 초하룻날도 (황 교수에게) 전화해서 용기 잃지 말라고 위로했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우정'이다. 〈PD수첩〉의 1차 보도로 '황우석 의혹'이 공론화 됐을 때도 황 교수 연구실을 찾아 '격려'했고, 황 교수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요즘도 등 돌리지 않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변함없는 '우정'이다. 이렇게만 해석된다면 정 전 장관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터.
하지만 그의 '황우석 마케팅'을 기억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농락하는 건가 하는 느낌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왜일까.
***'친구' 뜻은 그 때 그 때 달라요?**
첫째, 정 전 장관의 말 속에는 '정치인' 정동영과 '황우석의 친구' 정동영을 구분해 순수한 관계로 봐달라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 그러나 '친구'라는 사적 관계가 얼마나 '정치화' 될 수 있는지는 불과 한 달 전 정 전 장관이 스스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해 12월 황 교수의 연구실을 격려 방문했을 때도 "'친구'로서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했다. '황우석 살리기'-'PD수첩 죽이기' 여론이 극에 달했던 당시 맥락에서 '친구'의 의미는 '국민적 영웅'과의 '친구'였다. 정치인에게 이만한 인적 자산이 또 어디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대권 주자들이 줄줄이 병문안을 가서 "황 교수는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박근혜)라느니, "황 교수를 비판하는 세력은 악인이고 격리시켜야 한다"(손학규)느니 온갖 레토릭을 썼지만, 감히 영웅과의 '친구'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어차피 당시 정치인들에겐 '황우석과 누가 친하냐' 경쟁이었던 고로, '오랜 친구'는 "황 교수는 앞서가는 사람이자 우리의 희망이므로 지킬 필요가 있다"는 한마디 외에 다른 호들갑은 필요가 없었다.
그런 정 전 장관이 이젠 황 교수와의 관계를 '순수한 친구'로 봐달라고 한다. 최근의 전화통화를 굳이 소개한 것도 곤경에 처한 친구에 대한 '바람막이'를 자처한 징표로 드러낸 듯하지만, 이젠 '덫'이 된 황 교수로부터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벗어나고픈 의도가 더 강하게 읽혔다.
***이제와 "이성을 되찾자"?**
둘째, 정 전 장관이 최근 황 교수에게 쏟아지는 비판론을 두고 "극단주의적 성향을 경계해야 한다"며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곤 하는데, 이제 차분하게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한 대목도 자가당착이다.
지난해 황우석 '넷카시즘'에 편승하고 이를 확산한 경로에는 숱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간 '극단주의적 성향'의 정치인들 중엔 정 전 장관도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랬던 정 전 장관에게 여론의 역편향을 지적할만한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정 전 장관의 "이성을 되찾자"는 호소는 '한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던 자신의 과거 행보에 대한 자성이 선행됐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더욱이 "황 교수가 머리 숙여 진지하게 사죄, 용서를 구한 만큼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선처'를 당부한 그의 말은 또 다른 '동정 여론'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
피츠버그대 이형기 교수는 〈프레시안〉 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진실은 여론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황 교수의 '사죄'(이 조차 진정성이 담겼는지 모를)에 앞서 서울대 조사위는 황 교수 논문이 '허위'임을 발표했다. 검찰 조사에선 또 어떤 새로운 '허위'가 나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 전 장관이 차라리 '오랜 친구'로서 황 교수의 '부실한 사죄'를 따끔하게 질책했으면 어땠을까? 한 때 자신의 '가벼운 처신'을 솔직하게 자성했으면 어땠을까? 서울대 조사위와 검찰 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하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뒤 "차분하게 이성을 찾자"고 했다면 사람들은 정 전 장관을 달리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삐딱선을 탄 '친구'에 대한 진정한 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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