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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권' 차원의 '은전' 받는 백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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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권' 차원의 '은전' 받는 백성들에게

<데스크 칼럼> 교통위반 481만명 구제조치에 붙여

정부가 갑자기 선물을 내놨다. 교통법규 위반자의 벌점을 없애주고, 운전면허 정지나 취소를 풀어주며, 음주운전 등으로 몇 년간 면허시험을 볼 수 없던 사람들은 당장 다시 면허를 딸 수 있게 해 준단다. 해당자만 무려 4백81만명이다.

정부는 9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정례국무회의에서 이와 같은 방침을 확정한 뒤 이근식 행정자치, 송정호 법무장관의 특별회견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이유인즉 "월드컵 4강 신화를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축제분위기를 고양하고, 운전면허 취소 등으로 생활에 애로를 겪고 있는 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며 국민대화합을 이루기 위해"라고 한다.

지난 98년 3월 '국민의 정부' 출범을 기념해 5백32만여명의 교통 벌점을 삭제하는 일종의 '대사면'을 단행한 이후 두 번째다. 재수 좋은(?) 상습 교통위반자는 두 번씩 혜택을 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재·보선용 선심', 정치권의 말 만들기**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첫 번째 논란은 이같은 조치가 8.8 재보선을 앞두고 취해졌다는 점에서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행정'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호사가들의 '말 만들기'인 듯하다. 우선 대통령 탈당으로 여당도 없는데 이번 조치가 도대체 어느 당을 위한 건지 불명확하다.

대충 짐작하듯이 민주당 찍으라는 얘기라 해도, 공사 구분 잘하고 요모조모 잘 따지는 요즘 유권자들이 이런 정도 선물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선거 때 "축구는 축구, 투표는 투표" 현상을 보았듯이 '선물은 선물'일 뿐일 게다.

정작 한나라당조차 아무런 반대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하긴 4백81만명이나 혜택을 보게 된다는 데 거기 대고 하지 말라고 했다간 오히려 한나라당 표 떨어지는 소리 들릴 테니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이처럼 정부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어느 당도 거기 반대하지 않으면 이건 아무런 정치쟁점이 아니다. 혹시 정부 조치에 감읍해서 눈물 흘리며 투표장에 나갈 극소수 몇몇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래서 누가 법을 지키랴**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우선 명분이 없다. 정부가 발표한 이유를 다시 한번 보자. "월드컵 4강 신화를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축제분위기를 고양하고, 운전면허 취소 등으로 생활에 애로를 겪고 있는 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며 국민대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다.

몇가지 말이 덧붙여졌지만 결국 월드컵 때문이란 얘기다. 정부 관계자도 정치적 고려가 전혀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이번 조치는 어디까지나 포스트월드컵 대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월드컵과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조치가 무슨 관계인가? 월드컵에 대비해 질서 잘 지키자고 앞장서 외쳐댔던 정부가 이젠 반대로 법규 위반자의 벌점을 없애준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것도 이 정부 들어 두 번째다. 이래선 도대체 누가 법을 지킬까? "법을 어겨도 나라에 경사만 있으면 금방 풀린다" "교통법규는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말이 튀어 나올 판이다.

***통치권 차원의 은전조치?**

송정호 법무장관의 말이 가관이다.

이러저러한 논란에 대해 송 장관은 "풀어줄 것에 대비해 위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단다. 정말 그럴까? 이게 한 나라의 법질서 준수를 책임지는 장관이 할 말인가?

송 장관은 한걸음 더 나갔다. "일종의 은전조치는 통치권 차원에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21세기 법치주의 국가에서 아직도 '통치권' '은전'이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할 뿐이다. 국어사전엔 '은전'을 "예전에, 나라에서 은혜를 베풀어 내리던 특전"이라고 했다. 분명 '예전에'가 들어 있다. 왕이 백성의 아픔을 헤아려 알아서 베푸는 혜택이 은전이다.

왕을 모시고 일 하는 법무장관을 둔 우리 국민은 행복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무려 4백81만명이나 혜택을 본다는데 그냥 눈 감고 넘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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