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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월 하루는 맘껏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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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월 하루는 맘껏 놀아보자"

<데스크 칼럼> '월드컵 축제의 날'을 제안하며

마냥 즐거운 밤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18일 밤 12시. 기자는 집 근처인 서울 양천구 목동오거리에 서 있었다. 온통 붉은 물결, 태극기 퍼레이드였다. '대~한민국' 함성, '오 필승 코리아' '애국가' '아리랑'이 연속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언제 우리 국호인 대한민국을 이렇게 여러 번 크게 외쳐 보았던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많은 태극기의 물결을 보았던가. 우리가 언제 '내 편 네 편' 없이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마냥 좋아해 본 적이 있었던가. 글자 그대로 축제의 밤이었다.

***축제의 주인공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그 축제의 주인공은 40대인 기자가 아니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주축이고, 20대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조연이었다. 필자가 서 있던 지역의 특수성만은 아닌 듯 했다. 12시 30분경 집에 돌아와 TV에서 지켜 본 전국의 거리 표정, 그곳의 주인공은 분명 10대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밝고 건강했다. 주체 할 수 없을 만큼의 힘과 열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곳저곳 불쑥불쑥 오고가는 누구와도 쉽게 손잡고 휩쓸려 덩어리를 이루었다. 부러웠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런 응어리의 흔적도 없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소리 높여 부르는 그 당당함이었다.

기자도 따라 외치고 불렀다. 하지만 왠지 쑥스러웠고, 주눅 들었다. 한동안 있는 힘껏 목청을 높이지 못했다. 마음으론 너무 기쁘고 흐뭇한데, 머리는 그렇게 간단명료해지지가 않았고, 그래서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내 외침엔 뭔가 모를 주저함의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대한민국' '애국가' '아리랑' 앞에 당당한 젊음**

80년대 거리에서 '독재 타도'를 외쳐 보았다. 도서관 난간 위에 매달린 선배의 품에서 펼쳐진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도 불러 보았다. 그날 밤 술집에 모여 아리랑도 불러 보았다.

하지만 항상 눈물과 함께였다. 최루탄 때문인지, 분노와 서러움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매번 흐르고 있었다. 눈물 없이는 태극기도 애국가도 아리랑도 떠올려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란 우리 국호는 감히 제대로 외쳐 보지도 못했다.

기자의 선배 세대는 더 했다. 70년대 중반 민청학련사건 재판이 벌어진 법정에선 피고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느라 입을 틀어막았던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한다.

이처럼 40대 이상의 세대에게 우리 '대한민국'은, 우리 '태극기'와 '애국가'는 항상 뭔가 복잡한 기억과 함께 떠오른다. 반갑고 즐거운 대상이 아니라 비장함, 두려움, 슬픔이 한데 뒤섞인 미묘한 감정의 대상이었다. 당당하지 못하고 주눅 든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어젯밤 거리에 물결친 청소년, 젊은이들의 '대한민국' '태극기' '애국가'는 당당했다. 자랑스러움이었다. 기쁨과 축제의 상징이었다.

이제야 이 나라의 국호 국기 국가가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국민들 가슴 속에 당당하고 자랑스런 축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직 그처럼 마냥 당당해질 수 없었던 기자는 그래서 이날 축제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한켠에서 쳐다보는 구경꾼이었다.

***해마다 6월 하루를 축제의 날로 정하자**

해마다 6월중 하루를 '월드컵 축제의 날'로 만들자. 날짜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가 1승을 올린 4일도 좋고, 8강에 오른 18일도 좋다. 22일 4강에 오른다면 그날도 좋다. 그 다음이면 더욱 좋다. 아니 날짜를 못 박지 말고 몇째 주 토요일로 정해도 좋다.

그간 도대체 제대로 된 축제가 있기나 했나. 모두가 함께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있었던가. 우리가 같은 국민이란 사실 자체만으로 기뻤던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그런 반쪽 축제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누구든 앞장서 준비하고 이끌어서 억지로 즐길 것을 요청받는 그런 축제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제 내년부턴 6월중 하루는 맘껏 놀자.

혹자는 월드컵으로 모아진 국민적 열기를 국운융성의 계기로 삼자고도 한다. 정치도 경제도 축구처럼 잘하는 그런 계기로 만들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맘껏 놀지 못하는 법이다.

그냥 놀자. 아무 생각 없이 2002년 6월 우리 축구대표팀이 안겨줬던 기쁨을 다시 나누면서 마냥 즐거워보자. 해마다 하루만이라도 같은 국민, 한 공동체라는 그 자체만으로 함께 기뻐해 보자.

복잡한 프로그램도 필요 없다. 명승부 명장면들 모아 다시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자. '오 필승 코리아' '아리랑'도 부르자.

청소년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어린이와 어른들이 뒤에 서자. 젊은이들이 알아서 축제마당을 이끌어 가게 하자. 우리 국호 국기 국가를 너무도 당당하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그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자.

다 잊고 하루만큼은 정말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그런 축제의 날로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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