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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권력은 누구에게 봉사하나"

<기자의 눈> 청와대 정책실장의 '엉뚱한 주장'

노무현 정부의 요직에는 교수 출신이 많다. 특히 학계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는 교수들이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운용에 결정적 기여를 해 왔다.

핵심 참모들의 출발점이 정치적, 정책적 이해관계와 비교적 거리가 먼 지식인이었다는 점은 노무현 정부의 자랑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차별성'에 대한 자부심은 현 정부의 문제점 중 하나로도 작용하고 있다. 자신들만이 '선하고 공정한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자만심'은 때로는 스스로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민초 대변할 사람이 지방의원 돼야"**

이같은 오류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설된 자신의 블로그 '동반성장'에 올린 '소장수 의원님'이란 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글은 자신이 지난 2002년에 쓴 <김병준 교수의 지방자치 살리기>라는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글에서 김 실장은 "동네 쌀장수, 소장수 등 민초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지방의회 의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우리 지방의회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민초나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적고,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반(半)재벌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1년에 선출된 광역의원들의 재산분포는 우리 지방의회가 얼마나 심각한 보수 및 중상층 지향의 '시스템 바이어스', 즉 체제편향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당시의 화폐가치로 시도의원 856명 중 100억 원 이상의 재산가가 23명, 50억 원에서 100억 원 사이가 67명, 10억 원에서 50억 사이가 302명, 5억 원 이상 10억 원 이하가 124명 등이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들이 민초의 입장에서 집행기관을 견제하고 민초의 입장에서 조례를 제정했을지, 민초의 삶이 어떠한지 관심이나 있었을지 의구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민초를 위한 권력을 만들고 싶으면 민초와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권력의 축 가까이 가도록 해야 한다"며 "이들을 우습게 보고, 이들이 권력의 축 가까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정책은 이해관계의 산물…권력, 오로지 권력 쥔 자들을 위해 쓰여"**

김 실장은 특히 동네 쌀장수, 소장수가 지방의회 의원이 돼야 하는 이유로 "정부의 결정은 상당 부분 이해관계와 권력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못하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알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예산삭감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스토크먼(David Stockman)의 예를 들었다. 그는 "1981년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은 연방정부 예산 삭감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이 임무를 30대의 하원의원 스토크먼에게 맡겼다"며 "그는 '명분이 약한 요구(weak claims)'는 제외하되 '명분이 강한 요구(strong claims)'는 어떤 경우에도 보호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결과는 얽히고 설킨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결국 'weak claim'이 아니라 'weak client'의 'claim', 즉 힘없는 사람들의 몫이 날아가버렸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결정적으로 "권력은 누구를 위해서도 봉사하지 않는다. 권력은 오로지 그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해 쓰인다. 권력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덕과 윤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김 실장이 10.26 재보선일에 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에 대해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4월 재보선에 이어 이날 대구 동을 등 네 지역에서의 재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완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김 실장의 글은 현 정부 임기 내 마지막 선거인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춰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압승이 점쳐지는 가운데 "지방선거에서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16석 중 11석, 광역의원 609석 중 431석을 얻었다.

***현 정부도 권력을 그렇게 운용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소장수'를 언급하며 대의 민주주의의 기초인 '대표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김 실장의 주장은 옳다.

정부정책의 결정과정이나 권력의 속성에 대한 주장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화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가 "권력은 오로지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해 쓰인다"고 단언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은 그가 행정학과 교수로 있던 2002년에 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요약하면서 이 대목을 발췌했다. 여전히 유효하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한나라당을 겨냥해 이런 주장을 한 것일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현재 권부의 핵심에 있는 자신을 겨냥한 발언이 돼 버렸다.

김 실장은 "현 정부의 권력자들도 자신의 권력을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쓰냐"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지식인들이 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혹시나 자신이 치켜든 칼날에 자기 자신이 베일까 조심하는 일이다. 자신이 내뱉은 말 또는 자신이 제기한 논리가 과연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되는 것인지 아닌지 분명히 자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김 실장에게 한 가지 더 물을 게 있다. 혹시 2002년에는 권력이란 그렇게 천박한 것이라고 허무주의적으로 생각했지만 2005년 현재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만약 지금의 권력은 과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뭐냐고.

이번엔 김 실장으로부터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앞뒤가 맞는 답변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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