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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허탈한 '연정 폐기 선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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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허탈한 '연정 폐기 선언' 유감

<기자의 눈>"지지율 상승 기대 전에 자기반성부터"

이런 경우를 두고 농락당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말 여권 수뇌부 회의에 참석해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정론'이 석달여 만인 10일 여권 수뇌부의 공식 폐기선언으로 용도폐기됐다.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이 그토록 지침으로 삼고자 했던 독일 정치는 이날 '대연정'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해 극명하게 대비를 이뤘다.

기자는 그동안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주장이 갖는 각종 논리적,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펴왔지만 이날 "연정은 물 건너갔다"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선언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특히 "호시우행으로 뚜벅뚜벅 가겠다"는 문 의장 말에는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여권에서는 '대연정' 제안을 한나라당이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임기단축', '2선후퇴' 등의 발언에 가슴을 졸였던 국민들 입장에선 무책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연정 폐기했으니 지지율 저절로 상승할 것"?**

문 의장은 1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연정은 물건너갔다"며 "더 이상 연정 얘기가 나오는 것은 어렵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한나라당이 연정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단축하고 그만두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따라서 (연정론 제기로 하락했던 지지율도) 저절로 상승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또 "당분간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릴 수도 없고 정치쇼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호시우행으로 뚜벅뚜벅 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의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설'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이를 부인했지만 문 의장의 '연정 종료 선언'에 대해선 동의했다. 노 대통령이 이미 "당분간 정치적 논란이 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도 "연정이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 중"이라며 사실상 '연정 폐기 선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대연정' 전술적 실패 인정**

이처럼 여당 의장의 입을 통해 '연정 폐기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엔 '연정'이란 문제제기가 제기된 방식 자체가 실패였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6월말 <서울신문> 보도를 통해서다. 노 대통령이 대국민 편지를 통해 공론화하려던 계획이 처음부터 어그러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처음 이 사실이 알려지다 보니 초반에 청와대는 의제를 주도하기보다는 언론이 제기하는 각종 의혹에 해명하는 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연정' '내각제 개헌' 등 다소 충격적 주제가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런 전개과정을 실패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노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당분간 연정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내가 배가 고파 빵을 사게 돈 좀 주세요 해야 하는데, (그저) 돈 좀 주세요만 했다"며 문제제기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연정'은 꽃놀이패?**

물론 '연정'은 접었지만 '대안모색'마저 접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에게 '배가 고프다'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독일 대사관에서 보낸 '독일 총선 전후 정치분석'이란 보고서를 읽고 "감명 깊었다"며 A4 32장 분량의 장문의 보고서를 대학교수, 기자, 여야 의원 및 당직자 등 3만8800명에게 이메일로 보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일본 등 각국의 정치 지배구조와 경제 등을 화두로 새로운 대안모색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보고서 제출을 지시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이처럼 '연정'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진정성'이라는 점을 기자가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청와대 입장에서 '연정'은 크게 잃을 것 없는 '꽃놀이패'였다는 점에서 문 의장을 통한 '은근슬쩍 연정 폐기 선언'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전술로서의 대연정에 대해 "대연정 제안으로 대통령이 잃은 것은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뿐"이라며 '남는 장사'였다고 평가했다. 지지율이야 늘상 변하는 것이고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을 받으면 받는 대로 성과가 있고, 안 받으면 안 받는대로 '정치권 흔들기'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쥐고갈 수 있다는 계산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 관계자는 또 "노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계속하면서 연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깨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 것만으로도 상당한 소득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향후 '대연정'이 아닌 제2, 제3의 대안을 제시했을 경우 국민들이 좀더 쉽게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뒤늦게라도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포기한 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인정해주자. 또 새로운 모색을 위한 혼란은 불가피했다고 최대한 이해한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과 여론은 다른 것"이라며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여권에서 "연정이 폐기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절로 올라갈 것"이란 기대를 표명하는 것은 뻔뻔스럽게 느껴진다. "정치쇼를 할 수 없으니 호시우행하겠다"는 말에도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꽃놀이 패' 주장으로 대변되는 정치공학적 발상도 기왕의 '바보 노무현론'에 비추어 자기정체성에 대한 배반으로 해석될 여지가 대단히 크다.

여권은 '대연정'이란 전술이 왜 실패했는지,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국민들 마음을 왜 끝내 돌리지 못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뼈 아픈 반성과 그간 혼란스러웠던 정국에 대한 사과가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운운하기에 앞서야 하지 않을까.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남의 탓 하지 말고 여권이 먼저 최소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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