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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켄바워에 '카이저'란 별명이 붙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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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켄바워에 '카이저'란 별명이 붙은 이유

[프레시안 스포츠]월드컵 홍보차 방한해 아드보카트호에 덕담

2006년 독일 월드컵 홍보를 위해 4일 방한한 프란츠 베켄바워 월드컵 조직위원장이 "한국은 좋은 감독을 영입했다. 내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롭게 출발하는 아드보카트호에 덕담을 전했다.

베켄바워는 명문 클럽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주로 차기 UEFA(유럽축구연맹) 회장에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등 축구선수와 감독 뿐 아니라 축구행정가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베켄바워는 항상 그의 이름 앞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카이저(황제)'란 별명답게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하는 주요 인사가 된 셈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은 베켄바워를 두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유니폼이 깨끗할 정도로 우아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며 그라운드에서 '카이저'다운 면모를 보여준 베켄바워를 극찬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베켄바워의 별명인 '카이저'는 그의 플레이를 두고 생겨난 게 아니다.

베켄바워의 별명은 괴짜 바바리아 황제인 루드비히 2세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후 베켄바워가 비엔나로 친선경기를 하기 위해 갔을 때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초상화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카이저'란 그의 별명은 언론을 통해 굳어졌다.

이미 독일 대표팀의 핵심 멤버였던 베켄바워는 '카이저'란 별명을 얻고 나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자신의 기량을 연마했다. 스타의식에 휩싸여 우쭐대다 '카이저'란 별명을 더럽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1974년 월드컵 우승을 획득한 베켄바워는 1990년 통독을 눈앞에 둔 독일에 감독으로서 월드컵 우승이란 선물을 안겨주며 '카이저'란 별명에 걸맞은 위업을 이뤘다. 감독과 선수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기록한 것은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 이후 베켄바워가 처음이었다.

베켄바워는 유년시절 아버지의 반대로 축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우체국에서 일을 하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베켄바워의 아버지는 "축구선수들은 저축을 할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너의 영웅 프리츠 발터를 봐라. 축구를 계속 하기엔 너무 늙었고 직장에서 일을 하기엔 배운 것이 없다. 이제 발터는 뭘 할 수 있겠냐"며 본격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려던 베켄바워에게 일침을 가했다. 아버지의 이같은 충고는 베켄바워가 다른 보통의 축구선수들과 달리 항상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베켄바워는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과 준결승에 격돌했던) 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강호들을 제압해주어 고마웠다. 2006년에는 우리가 한국을 돕겠다"는 말로 한국의 선전을 기원했다.

남다른 노력으로 '카이저'란 자신의 별명을 더욱 빛나게 해온 베켄바워는 한국에 '월드컵 4강팀'이란 자존심을 이어가려면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남은 8개월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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