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팀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여부가 23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기술위원회 내부에서는 경질론과 신중론이 맞서는 형국이지만 아무래도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쪽으로 무게추가 넘어간 상황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까지 10개월 남은 현 상황에서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중량감이 떨어지는 B급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길 수도 없어 축구협회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여 있다.
축구인들 가운데서는 축구협회가 눈앞에 보이는 독일 월드컵 성적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 축구에 체질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있는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측면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4강이란 선물을 안겨 준 히딩크 감독이나 지난 유로 2004에서 그리스를 우승으로 이끈 오토 레하겔 같이 부임 초기부터 강력한 선수 장악력으로 대표팀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감독이 지금 한국팀에게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히딩크 감독이 전방위적 압박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파워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강조했다면,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 부임 초기부터 수비에 역점을 두며 순식간에 이뤄지는 빠르고 정확한 속공에 매진했다.
레하겔 감독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과거에 유행했던 대인방어(man-mark)에 주목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복고풍의 고리타분한 레하겔 식 수비 축구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 선수들에게 절대 상대를 놓치지 않는 '찰거머리 수비'와 강한 태클을 주문했고 그의 이런 고집은 유로 2004에서의 대성공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때 분데스리가의 우승제조기로 불렸지만 고집스런 지도방식으로 독일 축구계에서 퇴출당한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에 와서 자신의 축구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발굴해 그리스 전사로 탈바꿈시킨 셈. 빠른 패스 게임을 통한 촌철살인의 속공 능력까지 겸비한 그리스 축구를 놓고 외신들은 "그리스 실용주의가 축구장에서 부활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레하겔 감독은 유로 2004에서 우승한 뒤 복고풍의 그리스 수비축구를 비난했던 축구계에 "승리하는 것이 현대적인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레하겔이 사용한 그리스의 전술이 한국 축구에 그대로 적용되긴 힘들다. 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한국 팀을 정확하게 진단해 초지일관의 자세로 팀 컬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레하겔 같은 감독을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 우리만의 빛깔을 축구인과 국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거둔 히딩크 감독의 성공신화는 약 2년 걸렸고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 축구 스타일을 완성하기까지 3년 가량의 시간을 소비했다. 독일 월드컵까지 한국 축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개월. 하지만 선수들이 모두 모여 훈련할 시간은 고작 1~2 개월뿐이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기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다.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든 유임되든 이번 기술위원회 회의가 늪에 빠진 한국 축구를 구해내고 궁극적으로 '한국식 축구'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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