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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60년간 지켜온 "가갸거겨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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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60년간 지켜온 "가갸거겨고교"

[현장르포] 에다가와 조선학교

일본 도쿄(東京)시 고토(江東)구 에다가와(支川) 지역에 위치한 '도쿄 제2조선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도쿄도의 학교부지 반환 소송 제기로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

에다가와 지역은 일본 정부의 1940년 동경올림픽(중일전쟁으로 취소) 준비계획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은 도쿄의 재일교포 1000여 명이 흘러들어온 간척 지역이다. 당시 에다가와에는 쓰레기장과 소독장만 있는 황무지였으나 교포들이 정착해 땅을 일구고 학교를 세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도쿄도는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에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해 1990년까지 20년간 무료로 학교 부지를 임대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부임한 뒤인 2003년 도쿄도는 갑자기 1991년부터의 학교부지 임대료 4억 엔(약 40억 원) 지불 및 학교부지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한국에서는 지난 11일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 대책회의'가 결성됐고, 14일부터 사흘간 실태조사단이 일본의 현지를 방문했다. 에다가와에는 지금도 800여 명의 재일교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에다가와 조선학교에는 7명의 교원과 59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프레시안>은 에다가와 조선학교 현지 르포를 싣는다. <편집자>

▲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에다가와 학교 학생. ⓒ프레시안

"읽어요. 밟아요. 몫이야. 앉아요."

지난 15일 찾은 일본 도쿄(東京)시 고토(江東)구 에다가와 지역에 위치한 '도쿄 제2조선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

방학을 앞둔 2학년 교실에서는 한창 국어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10여 명 남짓의 아이들이 쉽지 않은 겹받침 단어들을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동행한 현원일 서울 문래중학교 국어 교사도 "결코 쉽지 않은 받침인데 틀리지 않고 쓰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아이들은 "했습니다", "아닙니다" 등 받침 발음도 정확하다.

일본에서 60년간 지켜온 우리말 민족교육

원래 '받아쓰기' 수업은 대부분 1학년 때 끝나도록 교육과정이 편성돼 있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일본어를 쓰며 자란 아이들이 어려움을 느껴 2학년 1학기까지로 한글 교육기간을 늘렸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2학년을 맡고 있는 윤명실 교사는 "초, 중, 고 조선학교는 도쿄 내 지역별로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만, 보육원은 도쿄에 2개밖에 없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본인 보육원에 다닌다"며 "사실상 초급학교 1학년 때 한글과 우리말을 처음 배우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59명의 아이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온 징용자의 후손들인 교포 4세·5세다. 일본에서 4세·5세가 지나도록 유창한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것은 '민족교육'에 대한 대단한 집념이자 큰 성과다.
▲ 에다가와 학교의 체육시간.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프레시안

당초 조선학교는 '국어강습소'에서 시작했다. 해방이 된 1945년 8월 15일, 일본 전역의 동포들은 침울한 일본인들과 달리 사방팔방으로 뛰어 나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알아야 한다'며 그 해 10월 곳곳에 '국어강습소'를 차렸다. 이것이 조선학교의 효시다. 그러나 그들은 60년이 지나도록 귀향하지 못하고 여전히 '민족교육'의 맥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조선학교는 우리말로 수업을 진행하고 생활할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교과서를 갖고 민족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총련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재일 교포들이 아이들을 일부러 조선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도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가 아닌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단에서도 학교를 운영하지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곳은 완전히 우리말로 운영되지도 않는다.

민단(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반대 운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재일교포 3세 김무기씨는 서툰 우리말로 "어릴 때 일본 학교를 다녀 한국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학교는 아이들의 요람이고 꿈인데, 조선학교에서 한국말뿐 아니라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교육이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한다"고 이 학교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 ⓒ프레시안

"일본 학교 가서 일장기 앞에 기립해 기미가요 부르는 것 상상도 못한다"


사실 일본 사회에서 '조센징'이라는 놀림 및 각종 차별을 받으며 살아 온 재일 조선인들에게는, 일장기 앞에서 기립해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게 하며,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일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학교에서는 그 대신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과 같은 우리의 역사 인물들을 배우며 민족 자긍심을 키운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통일 시대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통일 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이러한 민족교육의 영향은 재일 조선인들이 '고향'을 언급할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에게 '고향'과 '태어난 곳'은 엄연히 다르다. 태어난 곳이 어딘지 궁금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경남 김해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입니다"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태어난 곳이 어디냐'고 물을 때 비로소 '도쿄', '시모노세키' 등의 답을 들을 수 있지만, 어김없이 "고향은 경남 김해입니다"라는 식으로 한 마디를 덧붙인다.'일본에서 태어 났을 뿐 나는 조선 사람'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멸시와 차별 속에 60년간 일궈온 동포 사회 연결고리

조선학교는 재일교포 사회에서 일종의 '마을 회관' 역할을 한다. 아이들만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학교에 모여 마을이나 교포 사회의 일을 논의하는 것이다. 송현진 교장은 "마을에 많은 사람이 모일 공간이 없어 교실 2칸을 터 강당으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6학년짜리 딸을 둔 김숙희씨는 "아마 학교가 없어지면 동포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학교는 우리들의 할머니부터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학교를 위해 고철을 주워 모으고 김치를 만들어 팔아가며 배우고 가르친 곳"이라며 "조선학교는 지역 동포들에게 아주 큰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 ⓒ프레시안

조선학교에 다니는 '일본인들', "한국어 리듬감이 뛰어나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에는 재일 조선인만 한글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조선학교는 지난 5월부터 별도의 '조선어 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조선어 강좌'는 당초 도쿄도의 부당한 토지반환 소송에 연루된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결성된 지원연락회(支援連絡會)가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도울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현재 23명의 수강생이 2개의 학급으로 나뉘어 1주일에 1회 저녁 7시부터 8시 25분까지 한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초급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지 않아 한국말을 배울 기회가 없던 재일교포 아이들 3~4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인이다. 14일 저녁 강좌를 듣는 일본인들에게 한국말을 배우게 된 동기를 들어보았다.
▲ 에다가와 학교의 '조선어 강좌' 수업을 듣고 있는 일본인들. ⓒ프레시안

'조선어 강좌에서 한국말로 전화걸기를 배워 유일하게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이또 이즈미씨는 명랑한 표정으로 "유명한 한국 배우들을 인터뷰 하고 싶어서"라고 '조선어 강좌'를 듣게 된 동기를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던 대답이었다.

이케가키 다이쟌씨는 다소 색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이케가키씨는 "한국어의 음향이 일본말과는 달리 매우 부드럽고, 일본말에 없는 리듬감이 한국어에는 풍부하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이날 2개의 학급에서 조선어 강좌를 진행한 강사는 이 학교의 윤명실 교사와 한국인 유학생 구혜경 씨였다. 구 씨는 "언론인 친구를 통해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를 알게 돼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 씨의 학급에서 수업을 듣던 한 일본인 여성의 한국어 학습의 변은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이었다. 자신을 장애인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그는 "학생 중에 한국 아이가 있는데 한국어를 공부해서 그 아이 및 그 아이 엄마와 한국말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학교의 동료 교사가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연락회 활동을 하고 있어 이 강좌를 소개 받았다"며 "NHK에서 하는 한국어 강좌를 들으며 한국말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강의실에서 선생님에게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가 좋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구 씨를 붙들고 한참 동안 질문을 퍼부었다.

이 강좌를 진행중인 윤명실 교사는 "주로 인근에 사는 일본인들이 강좌를 듣지만 인터넷에서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며 "재일 조선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인들에게도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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