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인제 후보의 사퇴 여부 고민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퇴 여하에 관계없이 이 후보는 사실상 경선을 포기했다. 지역 유세를 중단했고, 27일 오전 열릴 예정이던 경남지역 방송 토론도 불참을 통보했다.
이인제 후보가 당과 청와대에 획기적 요구를 내거는 '조건부 경선참여' 방침을 시사하고 있지만, 정가의 해석은 '사퇴를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노무현 후보는 즉각 조기 경선종료를 희망하고 나섰다. 26일 오후 마산회원지구당 대의원 간담회에서 "패자는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를 끌어안고 가야 한다"며 "억지로 경선을 질질 끌고 가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의 사퇴와 무관하게 자신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이다.
민주당 경선의 사실상 종료, 노무현 후보 확정. 향후 대선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민주당 추스르기' 첫 번째 과제**
당분간 정가의 모든 관심은 노무현 후보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 후보가 대선가도에서 치러야 할 첫 시험대다.
첫째 '민주당 추스르기'가 과제다. 이인제 후보의 최종결심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예단이 쉽지 않지만, 어쨌든 노 후보가 민주당 전체를 아우르고 대선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의 시험은 벌써 시작된 셈이다.
이인제 후보 측은 "당의 급진화, 좌경화를 우려하고 있다"는 언급까지 내놨다. 듣기에 따라선 노선에 따른 당의 분화도 전망해 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는 또 노 후보가 제기한 정계개편론과도 맞물려 있다. 노 후보는 26일 "경선 시작부터 후보 결정-정계개편-대선승리-중ㆍ대선거구제 제도개혁 구상을 깊이 해 왔다"며, "민주당이 깨지는 정계개편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깨지는 정계개편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층 상세하게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과연 민주당 전체가 그의 구상대로 따라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인제 후보의 거취와 맞물려 생각해 본다면 노 후보의 생각과 달리 당의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을 대선까지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는 숙제에 노 후보가 답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음모론'으로부터의 탈피, DJ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둘째 '음모론'으로부터의 탈피가 과제다. 갑작스런 노 후보의 부상에 이 후보는 '음모론'으로 대항했지만 오히려 역풍이 거세 이 후보가 손해 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 후보 역시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이인제 후보의 '조건부 경선참여'는 만약 사퇴하더라도 '음모론'을 정식으로 문제제기해서 노 후보와 DJ에게 흠집을 내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 후보에게 던져지는 '의혹의 시선'은 선거과정 내내 노 후보의 득표력을 위협하는 치명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노 후보 자신의 몫이다.
'음모론' 자체를 불식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그런 일 없다고 해도, 상대방에서 그런 의혹이 많다고 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 '음모론'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후보는 대선후보로서 현 정부와의 계승과 단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정공법을 통해 '음모론' 공방에서 벗어나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DJ 정부에 대한 평가, 향후 자신의 개혁 노선이 DJ 정부의 노선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발전파업 대처 문제, FX 사업 결정문제, 금강산 관광 정부 지원 문제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 등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노 후보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민의 판단, 즉 그의 득표력이 달라진다. 대선 승리 여부가 달린 것이다.
***정계개편 둘러싼 역풍은 벌써부터 시작됐다**
셋째 노 후보 스스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정계개편 구상의 현실화도 과제다.
26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총재직을 버리고 집단지도체제를 전격 수용했다. 비주류 요구를 1백% 수용, 당 내분을 일단락 짓고 대선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날 '사실상 노무현 후보 확정'이 이루어졌지만, 기대했던 한나라당의 동요는 오히려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급작스런 '노풍'의 부상으로 흔들리던 한나라당이 이젠 그의 구상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또한 당 바깥의 움직임도 과연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줄지 미지수다. 노 후보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부터 'DJ와 YS의 화해'를 강조했다. 26일에도 "87년 분열 이전 수준으로 민주세력을 복원해야 하며 양김씨에 대해서도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가 되면 YS를 찾아 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움직이는 듯하다. '노풍'이 급속하게 일자 상대적으로 YS의 주가가 올라갔다. 경남지역 민심의 급변과 관련 YS가 노무현과 이회창 중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3일 김혁규 경남지사의 출판기념회에 이회창 총재가 직접 참석했다. YS도 참석했다. 이를 전후해 YS가 경남지역 지분 등을 요구하며 이 총재를 압박했고, 상황이 다급해진 이 총재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분석이 정가에 나돌기 시작했다.
'노무현식 정계개편'이 아니라 정반대의 역풍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실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노 후보가 기대하는 영남지역 분할의 구도는 무산된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 내분은 정리되고, 그의 힘을 빌어 주가를 높인 YS와 이 총재 사이의 거래가 성사된다면 정작 노 후보는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어떻게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그의 말대로 지방선거 승리를 가져올 만한 '바람몰이'가 계속될 수 있을지, 노 후보에게 떠맡겨진 숙제다.
노 후보가 이 과제를 제대로 처리해 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후보 재평가를 받겠다"는 자신의 약속에 책임을 져야 한다.
대선정국은 또 한번 급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계개편론도 또 다시 부상할 것이다. 이인제 후보를 비롯, 여러 사람이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정치력 본격 시험대에**
이처럼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종료되고, 노무현 후보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곧바로 노 후보는 엄청난 안팎의 시련에 봉착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이인제 후보의 향후 태도 여하에 따라, 또 당과 청와대의 반응에 따라 민주당 경선 종료가 혼탁해지면 질수록 그에게 떠맡겨지는 숙제의 무게는 더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과 신당 추진세력들은 힘을 얻는다.
26일을 기점으로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에 올라 선 노무현. 노 후보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다.
그가 이 과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내느냐, 노 후보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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