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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계개편은 '민주대연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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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계개편은 '민주대연합론'

유시민의 시사카페 <8>

정계개편론과 음모론이 민주당 국민경선 중반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지난 일을 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돌출한 문제가 아니라 만만치 않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쟁점이기 때문이다.

유혈의 강을 건너 집권했던 전두환 정권은 집권 4년 만인 1985년 2.12총선에서 처음으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급조된 신민당은 전국 주요 도시에서 예기치 못한 돌풍을 일으켜 제1야당으로 떠오르면서 '관제 야당' 민한당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때 신민당의 총재는 이민우씨였지만 실질적인 지도자는 DJ와 YS였다.

양김이 손잡고 만든 신민당은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재야 민주화운동과 결합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은 신민당과 재야의 '민주대연합'이 만든 작품이었다. 국민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원군으로 삼고 전투적인 대학생 조직을 선봉으로 내세운 민주대연합의 위력 앞에 전두환의 철권통치도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러나 이 민주대연합은 6월의 승리가 몰고 온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YS와 DJ가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분열하면서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도 '김대중 비판적 지지' 세력과 '후보 단일화' 진영, 그리고 진보정당으로 갈라선 것이다. 이 역사적인 분열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독특한 경로를 밟게 된다.

1987년 12월 양김 분열의 틈을 파고든 노태우 후보의 승리는 전두환 일파가 만든 군사독재정권의 합법화를 의미한다. 여야 3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소수파 리더였던 김영삼씨는 후보 자리를 쟁취함으로써 1992년에 '3분의 1'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DJP연합이 승리한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연합의 다수파 수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3분의 2' 정권교체라 할 수 있다.

민주당 국민경선이 연일 '흥행대박'을 터뜨리고 노무현 후보가 민심의 대폭발을 일으키는 가운데 한나라당의 내분이 겹치면서 철옹성 같던 '이회창 대세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정당 지지도마저 역전되었다. 만약 이런 흐름이 연말까지 지속된다면 금년 12월에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완전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민주당 노무현 경선후보의 정계개편론은 1987년 양김의 분열로 무너졌던 민주대연합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후보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정책을 가진 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어 한나라당 민주계를 끌어안는 데 성공한다면, 정치지형은 양김과 재야 진보세력을 한 울타리에 묶었던 87년 6월항쟁 당시의 개혁연합과 이회창 총재를 후보로 내세운 옛 집권세력이 맞서는 형상이 되는 것이다. 자민련이나 '박근혜 신당'은 대세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게 된다.

민주당 이인제 경선후보는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무언가 큰 틀의 정계개편을 노리고 음모를 꾸며 '노무현 돌풍'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옳다면 '노무현 돌풍'은 DJ가 민주대연합의 성사를 위해 YS에게 화해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이인제 후보보다는 경남 출신 노무현 후보가 '화해의 전령사'로서는 더 좋은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른바 '박근혜 신당'이나 '3김연합 후보론'과는 전혀 맥이 닿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민주대연합'의 필요성을 가장 높이 주창해 왔던 인물은 김근태 의원이다. 하지만 DJ와 YS가 다시 손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성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양김 진영에서 이런 성격의 정계개편론을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요 이인제 후보 진영이 음모의 진원지로 지목한 세 측근인사들도 다르지 않다. 김한길 씨는 일전에 민주-자민-민국의 '신3당합당'을 추진한 적은 있지만 민주대연합의 복원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임동원 씨는 당내정치와는 무관한 인물이고, 박지원씨 역시 노무현 후보와는 별로 잘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이인제 후보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열세에 몰려버린 오늘의 상황이 매우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음모론이 힘을 가지려면 우선 그 음모를 통해 도달하려고 하는 정치적 목표와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만약 '노무현 돌풍'이 민주대연합의 복원을 목표로 조작한 것이라고 본다면 목표 그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누가 어떻게 그 돌풍을 조작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불리한 정황만을 근거로 제기할 경우, 음모론 그 자체가 불순한 음모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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