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은 한나라당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경선 자체가 엎치락 뒤치락 국민적 정치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한나라당엔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은 연일 정치 축제판인데, 한나라당은 눈꼴사나운 집안싸움 타령이다. 정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셈이다.
따라서 과연 누가 후보가 될 것인지를 떠나서 이번 민주당의 국민경선 자체가 민주당엔 엄청난 득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은 대선후보 경선도 잘해야 '들러리 경선'이 될 형편이고, 서울시장 후보 경선마저 '추대대회'가 될 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를 어떻게 만회할 것이냐, 이 점이 한나라당의 첫 번째 고민이다.
***민주당 경선, 한나라당 내분양상에 직접적 영향 미쳐**
이는 한나라당 내분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민주당 국민경선이 인기를 모으면 모을수록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또 그럴수록 비주류의 권력분점 요구엔 힘이 실린다.
결국 이 총재는 더더욱 궁지에 몰리고, 당권-대권 분리나 집단지도체제 등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내분수습책을 내놓느냐, 그래서 앞으로 각종 당내 경선의 모양새를 어느 정도로 만들어 내느냐가 큰 숙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인지 예측불허의 상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한나라당은 이인제 후보가 될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젠 이인제-노무현 중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인제-노무현 가운데 누가 후보가 되는 것을 더 원할까.
사실 이 문제는 한나라당으로서는 극비사항에 속한다.
민주당 경선이 한참 진행중인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속셈이 드러나 버리면 이는 경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인제-노무현 두 후보 모두 "한나라당은 나를 더 두려워 한다"며 나름의 논리로 본선경쟁력을 내세우고 있다. 둘 중 누구 얘기가 맞는지 상대방인 한나라당 나름의 평가가 있겠지만 이 역시 결코 밝히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더 버거운 상대'를 도와주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의 깊은 속내를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이 어떤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계산법의 중요 지점들만 따라가 보자.
***'지역구도 변화'에 대한 계산법**
첫째 지역구도의 변화이다. 이인제 후보라면 '호남+충청 대 영남'의 대결구도가 짜여진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라면 충청이 흔들릴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영남, 그중에서도 경남 역시 흔들릴 것이다. 충청표는 3백22만여표, 부산.경남표는 4백78만여표이다. 여기서 어느 쪽 흔들림이 더 클 것인지 득실 계산이 바쁜 대목이다.
일단 한나라당은 충청이 자기들에게 넘어오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 기대하는 눈치다. 영남의 흔들림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와, 지난 대선 당시 학습한 '이인제 효과' 때문에 크지 않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 문제는 정계개편과 직접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 고문은 17일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의 반(反)호남 지역주의를 해체하는 정계개편을 하겠다"고 했다. 또 "정책이 정계개편의 1차 기준이며 자민련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노 고문 역시 자신이 후보가 되면 충청과 영남이 흔들릴 것을 알고 있다. 이때 빠져 나가려는 충청을 붙잡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영남을 본격적으로 흔드는 일에 우선 매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후보가 될 때 박근혜 정몽준 등 또 다른 영남후보가 나오는 상황을 사전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러한 정계개편 구상이 성공할 것인지, 아니 성공 여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노 후보가 영남표를 어느 정도나 장악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판단내리기 어렵다.
이 문제는 또 한나라당 내분이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그래서 한나라당의 추가 이탈 폭이 얼마나 될 것인지와도 직결되어 있다. 아울러 박근혜 정몽준 김윤환 이수성 등등 신당 추진파의 향후 행보와도 곧바로 얽혀 있다.
어쨌든 이 대목, '호남+충청 대 영남'의 구도냐, 아니면 여기서 충청과 영남을 흔들어대는 변화냐의 문제가 한나라당 득실계산법의 첫 번째 관건이다.
***'대결구도의 성격'에 대한 계산법**
둘째 대결구도의 성격이다. 이인제-이회창 대결보다 노무현-이회창 대결구도가 이른바 '보혁대결'의 성격을 한층 더 강하게 띠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에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계산법이다.
이인제 후보 측은 "대선 본선이 보혁대결로 치닫게 되면 민주당의 필패구도로 전개될 것"이라며 "안정된 이미지와 전국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이 고문의 경쟁력이 우위"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무현 후보 측은 "민주당의 개혁적·비판적 지지를 확고히 할 수 있고, 최근 정치자금 논란이 가열되면서 깨끗한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개혁성향이 강한 노 고문에게 지지가 쏠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아니, 한나라당은 누구 말이 더 맞는다고 생각할까.
우선 양쪽의 주장 모두 과장되었다는 점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선거란, 특히 여야 양자대결 성격이 짙은 대통령선거의 경우 어차피 '중간 잡기' 싸움이다. 평소 극단적 보수-혁신의 주장을 펴던 후보도 선거 때에는 중간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양 극단의 유권자는 어차피 찍을 곳이 정해져 있다. 반면 가장 많은 표가 몰려 있는 중간지대는 유동적이며, 여기가 바로 승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 역시 이회창 후보는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기존의 보수 이미지에 덧붙여 '법과 원칙에 입각한 개혁'이라는 식의 이미지를 첨가하려 할 것이다. 이인제 후보 역시 '안정감 있는 개혁 지속' 식의 슬로건을 내놓게 될 것이다. 노무현 후보도 '포용과 융화' 식의 이미지를 가미한 전략을 짜게 마련이다. 또 '고졸' 노무현 후보 뿐 아니라 이인제 후보 역시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라는 '서민' 이미지를 강조할 것은 뻔하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이 미묘한 차이,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 속에서 한나라당 득실계산의 해답이 나온다.
또한 이 문제는 후보 개인의 성향도 중요한 변수지만, 선거일까지의 정국운영능력에 달린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선거일까지의 정국변화에 맞춰 얼마만큼 적절히 지지도로 연결시켜 내느냐의 능력, 점점 치열해질 상호공방 속에서 어떻게 자기를 지켜내고 상대방에 흠집을 내느냐의 능력이 더 중요한 관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한나라당이 바쁘다. 이인제 후보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이 끝난 단계라 할 수 있다. 어떤 구도로 어느 점을 공략할 것인지 준비된 사항이 많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새로이 전략전술을 준비해야 한다. 한나라당 기획팀은 열심히 그 보고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후보는 검증이 안 됐고, 대응준비도 부족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하지만 그만큼 또 노 후보 스스로에게 허점이 많을 수 있다. 여기서 한나라당의 계산이 분주히 오간다.
***'바람이냐 조직이냐'를 둘러싼 계산법**
셋째 '바람이냐 조직이냐'의 문제다. 이인제-이회창 구도는 벌써부터 '대세론'으로 자리잡아 상당부분 조직화되어 있다고 봐야 옳다. 반면 노무현-이회창 구도가 된다면 그건 지금 한참 불붙어 있는 '노무현 바람'이 경선 뿐 아니라 본선에까지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민주당의 '바람과 세몰이'식 선거행태가 한나라당에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계산이다.
그간 역대선거는 '여당의 조직'과 '야당의 바람'이 맞부딪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바람선거'에 익숙하지만 이젠 여당으로서 '여당 프리미엄'과 '조직선거'의 맛에도 길들여져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조직선거'에 익숙하지만 이젠 야당으로서 '정권탈환 바람몰이'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인제-이회창 구도는 서로 적당한 선에서 조직과 바람을 결합시키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어 왔다. 하지만 노무현-이회창 구도가 된다면 '개혁과 변화의 바람'과 '정권탈환의 바람'이 서로 맞부딪치는 양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어떤 구도가 유리한가, 여기가 한나라당 계산법의 세 번째 지점이다.
***한나라당 계산법의 해답, 여기에 대선결과 좌우**
지금은 민주당 경선이 한참 진행 중이고, 한나라당 내분도 정리가 안 됐으며, 또 정계개편 논의도 본격화되지 않았다. 경선 완료까지 한달 넘게 남았고 그 사이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 대선까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이인제-이회창 구도와 노무현-이회창 구도 중 어느 쪽을 선호할지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한마디로 '섣부른 일'이다.
다만 이인제-노무현의 각축양상을 지켜보는 한나라당이 어떤 지점에 주목해서 어떤 계산법을 동원하고 있는지 추정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바로 그 대목들이 민주당 경선의 향배를 가를 '본선경쟁력'의 해답이 있는 지점이며, 더 나아가 대선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들이기 때문이다.
이인제-노무현 각축양상 앞에서 지금 한나라당이 바쁘다. 하지만 한나라당만 바쁜 게 아니다. 민주당 선거인단들도 한나라당 계산법의 법칙들을 따라 지금 똑같은 계산에 분주할 것이다. 프레시안 독자들도 함께 주판알을 튕겨보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