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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정권 탈환, 끔찍한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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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정권 탈환, 끔찍한 악몽"

유시민의 시사카페 <5>

"정형근 국정원장, 조갑제 통일부 장관, 김용갑 국방부 장관.... 이회창 대통령은 내각을 이렇게 짤 것이다."
이런 농담이 인터넷에 떠돈 적이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웃어넘겼는데 이제 보니 그럴 일이 아닌 듯하다.

2월 27일 김용갑 의원이 '보수출정식'이라는 멋진 이름 아래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후원회 풍경을 보면 분명 그렇다. 이 모임에는 한나라당과 자민련 국회의원 54명을 포함해 8백명의 보수인사들이 참석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제일 먼저 축사를 한 이회창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외로울 때나 힘들 때도 소신을 굽힐 줄 모르고 줄기차게 자기 확신을 전파하는 김 의원의 용기에 감복했다. 이 분이 가진 장점과 본질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확실한 신뢰다."

그런데 이 총재에게 '감동을 안겨준' 김용갑 의원이 뭐라고 했을까. "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난 4년 동안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었다. 대북관, 안보관이 위험수위까지 왔다. 이 좌파 정권이 한 번 더 연장하는 그런 불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총재는 또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총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따뜻한 보수고, 대한민국 지킴이다. 평소 존경하는 이철승씨도 오셨지만 일정 때문에 먼저 나가겠다."

그럼 이철승씨는 뭐라 했을까. "부시가 이북을 '악의 축'이라고 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악의 씨'라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현 정권의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라 한미동맹 때문이다. 부시가 우리나라를 왔다 간 뒤에도 반미 친북 부패정권이 활개를 치고 있다. 좌익은 흉악한 악이고, 사대주의자들이고, 민주주의도 없는 반동이다."

이런 사람들을 '평소 존경하고' 이런 사람들한테서 '감동을 받는' 이회창 총재가 자리를 뜬 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본격적으로 막가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사례만 추려보자.

"이 정권 들어와 간첩을 잡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간첩 잡는 기술자를 전부 쫓아냈다."(국회 부의장 김종하 의원)

"지금 좌경 세력이 어디까지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이 세균이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모르는데 팔자 좋게 늘어져 있다. 김정일의 꾀가 쥐 대가리다. 지난번 평양축전에 국가보안법 수배자를 보내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번에도 한 3백 명 가 있다. 이번에도 정신병 환자 많이 가 있을 것이다."(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장 박명환 의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대해 굳이 이성적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진 않겠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좌익 정권이고, 좌익은 흉악한 악이며 민주주의가 없는 반동"이라는 주장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나는 김대중 정부에 권한다. 이 분들께 자기의 주장이 진실임을 확신할 기회를 주기 위해 즉각 다음 몇 가지 조처를 취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 김용갑 의원 후원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거나 정치후원금을 낸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체포한다. 구속영장 청구를 비롯한 법적 절차는 신경 쓸 필요 없다.

둘째. 이 후원회가 체제를 전복하려는 국내외 우익세력의 배후조종에 따라 열렸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한다. 구금기간에는 제한이 없으며 수사에 필요할 경우 다양한 종류의 고문을 가한다. 죽으면 변사체로 만들어 내다버린다. 변호인과의 접촉도 철저하게 차단한다.

셋째. 신문방송에는 보도지침을 내려 이 사건과 관련된 일체의 보도를 봉쇄하며 최종수사결과 발표만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한다. 말을 듣지 않는 언론인은 잡아다 반쯤 죽여 놓는다.

넷째. 재판은 비공개로 열고 판사들로 하여금 전원 유죄를 선고하게 한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나는 자칭 보수의 주장에 전폭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보다 훨씬 확률이 높은 것은 이날 '보수출정식'에 모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서 그렇게 하는 경우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했던 지난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위 네 가지를 가차 없이 집행했다.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며,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과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 정말 끔찍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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