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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선관위에 고함

유시민의 시사카페 <2>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지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률로 금지한 곳이 아닌 한 어디든, 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보통 국민도 아니고, 명색이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선 경선주자인 노무현씨에게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사무실 안으로 '자기의 신체를 이동할 자유'가 없었다. 서울시 선관위 최병국 지도과장과 직원 50여 명이 빌딩 현관을 봉쇄한 채 앞을 막았기 때문이다. 2월 5일 백주대로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선관위는 '오마이뉴스'가 기획한 민주당 경선주자 7명의 특별 열린인터뷰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기관의 후보자 초청토론은 대통령 선거일전 1백20일 전부터 할 수 있다(선거법 제 82조 1항). 그런데 대선은 아직 3백일 넘게 남았다. MBC와 SBS 방송토론을 허용한 것은 그것을 언론의 공익적 취재보도 활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정기간행물법이나 방송법에 따른 언론기관이 아니다."

브라보, 선관위! 이보다 더 벽창호 같은 법률해석,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선관위의 법률해석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당사자인 '오마이뉴스'가 헌법소원을 냈으니,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것이다.

여기서 따져보려는 건 선량한 시민의 보행 자유를 일시적으로 박탈한 선관위의 행위가 도대체 어떤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는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오로지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는데(헌법 제37조 2항), 법률적 근거도 없이 그랬다면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물론 무작정 그랬을 리 없다. 중앙선관위 유지담 위원장은 대법관이고, 정수부 상임위원은 법제처장을 지냈으며, 한 사람을 제외한 여섯 명의 위원이 모두 전·현직 법원장과 검사장급 법조인들인데 어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근거가 있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4조 2항에 숨어 있는 '중지'라는 단어 하나가 그것이다. "각급 선관위 위원·직원은 직무수행 중에 선거법 위반 행위를 발견한 때에는 중지·경고 또는 시정명령을 하여야 하며", 바로 이거다.

그런데 우리의 선관위, 눈은 참 밝은데 머리는 나쁘다. 최소한 고등학교 수준의 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은 보통 지능의 소유자라면 이것이 잘못 쓴 문장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선거법 위반 행위를 발견하면 위법임을 '경고하고', 그 행위를 '중지하거나 바로잡으라고 명령'해야 한다는 말이다. 직접 나서서 물리적으로 '중지시키라'는 게 결코 아니다.

이것은 같은 법 조항의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위반행위가 선거의 공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것으로 인정되거나 중지·경고 또는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는 때에는 관할수사기관에 수사 의뢰 또는 고발할 수 있다." 선관위 직원들이 직접 폭력을 써서 위법행위를 중지시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고발을 하라는 것이 14조 2항의 입법 취지다.

'중지'라는 단어가 엉뚱한 위치에 들어간 건 순전히 국회의원과 입법 전문위원, 법제처 관료들의 부실한 국어 실력 탓이다. 입법 취지를 살리려면 "선거법 위반행위를 발견하면 위법임을 경고하고 중지 또는 시정명령을 하여야 하며"라고 써야 맞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이 단순한 '표기착오'를 무기 삼아 정치인의 신체 자유와 '오마이뉴스'의 언론자유를 폭력으로 훼손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를 짓밟은 '무식한 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오마이뉴스'는 특별 열린인터뷰를 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선관위는 이번에도 봉쇄를 예고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알아듣게 설명을 하는데도 귀머거리 행세만 하고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좀더 센 충고를 할 수밖에 없다. 법률적 권한도 없으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성인불량써클'을 '조폭'이라고 한다. 선관위 자체는 '불량써클'이 아니지만 이번에 한 짓은 '조폭'과 비슷하다.

'조폭적 선관위'와 민주공화국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간절히 당부드린다. 제발 책 좀 읽고, 문장 독해력 수준 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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